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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Jul 24. 2018

징계위원회

군생활 이야기

영창


군대에 안 가본 사람들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영창은 내무부조리, 폭언, 욕설, 집단 따돌림, 근무지 이탈, 권력남용, 하극상, 근무태만 등등 여러 가지가 사유로 가는데, 군대에서 규정을 어겼을 경우 부대 내에서 강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을 때 영창을 보내곤 한다. 

그렇다면 영창은 어떻게 가게 될까? 아래 사진처럼 헌병대에서 와서 잡아갈까?


탈영이 아닌 이상, 저렇게 헌병대에서 와서 잡아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

영창을 가는데도 절차가 있으며 보통은 해당 부대에서 절차에 따라 처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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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아침.

아침에 출근해서 정작과에 들렀는데 작전과장님이랑 포대장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표정이 심각해 보인다.


"안녕하십니까" 


정작과장님과 포대장님은 나를 잠깐 보시고 간단히 손으로만 인사를 받고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뭔 일 있나 싶었지만 차마 물어보기가 뭐해서 지원과로 들어갔다. 그런데 잠시 후 포대장님이 지원과로 들어오시더니 나에게 여러 장의 종이를 건넸다. 진술서라고 적혀있는 종이에는 병사들의 이름과 어젯밤 있었던 일들이 적혀 있었다. 


"이거 읽어보고 징계위원회 준비해."


"아... 네 알겠습니다."


징계위원회는 말만 들어봤지 실제로 해보는 건 처음이었다. 아직 경험이 없기에 자세한 절차는 인사행정관이 출근하면 물어보기로 하고 일단 내용을 읽어봤다. 생각보다 심각한 사안이었다. 

대략 내용을 보면 대대에서 대장 노릇 하는 한 명이 있었는데 그 인원이 어젯밤 취침시간에 후임들이 있는 생활관에 들어가 침실에 누워있는 후임 한 명에게 장난이라는 명목 하에 다리를 벌리고 성교행위를 흉내 냈다고 한다. 이에 수치심을 느껴 후임은 한 밤 중에 포대장에게 전화하여 그 사실을 알렸고 아침 일찍부터 진술서를 받은 것이다. 


"그게 뭡니까?"


진술서를 보고 있는데 어느새 인사행정관이 출근해서 물었다.


"아... 저희 징계위원회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에? 뭔 일 있었습니까?"


설명하기 복잡하여 말없이 진술서를 건넸고 인사행정관은 쭉 읽어보더니 혀를 차면서 말했다.


"이거 완전 미친놈이네."


우리는 다른 사안들은 제쳐두고 우선적으로 징계위원회를 준비를 했다. 

군대에서도 잘못을 했다고 바로 징계를 하는 것이 아닌 행정적인 절차가 필요하다. 

징계위원회에 앞서 사건 경위서를 작성하여 지휘관에게 징계위원회를 개최하겠다는 서명을 받은 후, 출석통지서를 발부하고 3일 이후에 징계위원회를 할 수 있다. 이는 가해자의 인권존중 차원으로 징계위원회에 앞서 본인한테 유리한 증거를 준비하거나 하다못해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 같은 경우엔 가해자 본인도 시인을 했고 유리한 증거라고 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이 기간 동안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지만 절차는 절차이기에 반드시 지켜야만 했다.

컴퓨터 폴더에서 예전에 징계위원회를 했던 양식을 찾아냈다. 예전에 사건들을 처리할 때 썼던 기록들이 그대로 있었다. 문서를 하나하나 넘겨보는데 거기서 예상치 못한 이름이 발견됐다. 같은 지원과 소속인 전문하사의 이름이었다.


"어? 박하사 일병 때 징계받았었습니까?"

 

"아 그거 저 아닙니다."


"미친ㅋㅋㅋ 뭐가 아니야. 너 맞잖아." 


인사행정관이 박하사의 오리발을 차단했다.


"아 행정관님 그게 언제 적 건데 아직도 갖고 있습니까?"


"와 박하사 근무태만이 이때부터 시작이었네요."


"인사장교님, 뭐가 그때부터 시작입니까? 그리고 저 그때 정말 억울했습니다. 사수가 또라이여서 저까지 같이 걸린 겁니다."


"구라 치지 마. 당직사령 오는 것도 모르고 같이 떠들었다매."


"아니. 사수가 계속 말 시키는데 어떡합니까? 인사장교님. 그 파일 좀 지워주십시오."


"네ㅋㅋ 이번만 참고하고 지우겠습니다."


물론 그 파일은 계속 지우지 않았다.


아무튼 양정기준에 따라 징계서류를 작성하고 대대장님의 서명을 받았다. 징계위원회는 지휘관 서명을 받은 날 포함 3일 후인 월요일에 열리게 됐다. 그래서 가해자를 격리시키면서 누군가 주말 내내 붙어 있어야만 했다. 이를 포대장님이 했지만 나 역시 징계위원회를 준비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주말 출근은 불가피해 보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부대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병사들 사이에서도 선임들 그룹과 후임들 그룹의 온도차는 분명히 드러났다. 후임들 그룹은 가해자가 평소에도 심한 장난을 많이 쳤는데 이번 건 너무 심했으니 징계를 받는 게 당연하다는 반응이었고 선임들 그룹은 선임을 찌른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당연히 두 그룹 사이에 미묘한 갈등도 있었다. 다행히 주말 내내 포대장님이 부대에 있어서인지 별 일 없이 주말을 넘겼다.



월요일 아침. 


아침 결산이 끝나자마자 징계위원회가 개최됐다. 

나는 간사로, 인사행정관은 서기를 참가했다.(서기 역할은 병사도 할 수 있다) 징계위원회는 3인 이상으로 구성돼야 하므로 위원장은 정작과장님이 맡고 지원과장, 통신장교, 주임원사, 군수 보급관이 참석했다. 징계권자는 지휘관이지만 지휘관은 객관적인 판단이 힘들다 하여 징계위원회에 참석할 수 없어 보통 참모들로 구성된다. 그래서 지휘관은 사건만 조사하고 판결은 위원회가 한다.(경우에 따라서 징계위원회의 결정에 지휘관의 의견이 반영되기도 한다.)

징계위원회는 징계양정기준에 징계 수위에 대한 명시가 애매할 경우(징계양정기준에 "근신~휴가제한" 같이 표시된 경우) 징계 수위를 결정하고, 영창, 휴가제한, 근신 등 분명하게 명시돼있는 경우엔 영창 며칠, 휴가제한 며칠 등 날짜를 결정한다. 


(한 번 판결할 때 영창은 최대 15일이고 휴가제한은 최대 5일이다)


징계위원회가 소집되면 간사가 징계위원회 개최를 알리고 징계위원장이 진행을 하는데 전체적인 진행은 시나리오를 따라간다.(시나리오에는 징계위원회를 진행하는데 빠지지 말아야 할 항목들이 쓰여있으며 보통 간사가 준비한다.)

가해자에게 징계사실에 대한 혐의를 물어보고 인정하면 징계위원회에 참석한 간부들이 혐의에 대한 이유나 기타 진술서에서 나오지 않은 것들에 대한 질문을 한다. 그리고 피해자의 진술도 받아 피해자의 피해사실에 대한 확인을 거친다. 거기에 목격자가 있다면 목격자에게 좀 더 객관적인 정황을 묻기도 한다


여기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선처를 바랄 경우 그 의견을 반영하기도 한다. 또한 가해자가 혐의에 대한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하는 기미가 보이면 징계 수위를 감면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그러한 의견들을 받아들이지 않기도 하고 이러한 악성사고에 대해서는 반성한다고 징계 수위가 감면되긴 힘들다.


피해자, 가해자, 혹은 목격자의 진술이 끝나고 나면 징계혐의에 대한 징계양정기준을 설명한다. 징계양정기준은 위법행위에 대해 군에서 정해놓은 징계 수위이며 같은 행위라도 사안이 경미하냐, 중대 하냐에 따라 징계 수위도 달라지기도 한다.(중대한 경우는 위법행위의 반복, 피해 규모가 큰 경우, 사회적 물의을 일으킨 경우 등등에 해당하며 이 또한 규정에서 정하고 있다.) 


이 사건의 경우 경미하고 중대 하냐를 따질 필요도 없는 악성사고라서 무조건 영창이었다. 다만 영창이 며칠이냐는 징계위원회에서 결정을 한 것이다. 


징계위원회의 투표 결과에 따라 형량이 정해지는데 과반수가 넘는 표가 나오면 그 표에 따라 형량이 정해지지만 과반수가 넘는 표가 없을 경우, 위원회 인원이 홀수이면 가장 무거운 형량에서 중간에 해당하는 표, 짝수이면 과반수가 넘어가는 다음에 해당하는 표에 따라 형량이 정해진다.

예로 들면 5명이 참석해서 영창 15일, 영창 10일, 영창 5일, 영창 3일, 영창 3일이 나왔다고 하면 가장 무거운 형량에서 3번째에 해당하는 영창 10일로 형량이 정해지고, 4명이 참석해서 영창 10일, 영창 10일, 영창 5일, 영창 3일이 나왔다면 영창 5일로 형량이 결정되는 것이다.   


다행히 투표 결과는 이러한 복잡한 과정을 거칠 것 없이 과반수가 최대치인 영창 15일로 투표하여 영창 15일로 결정되었다.


징계위원회가 끝나면 징계위원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고 지휘관에게 징계 결과를 보고 한다. 이때 지휘관이 정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 형량을 줄이기도 하고 늘리기도 하는데 보통은 징계위원회 결과에 따른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바로 영창이 가는 것이 아니라 징계에 대한 적법성 심사를 거쳐야 한다. 징계위원회 결과가 영창 이상이 나올 경우, 법무부에서 적법성 심사를 거치는데 군법무관이 가해자와 면담을 하면서 행정적인 절차나 징계 결과가 적법한지를 따진다. (여기서 감형되는 경우도 많다.)


적법성 심사가 끝나면 징계가 확정되어 영창으로 가는데 영창이라고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영창에 자리가 없는 경우 대기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우리 사단 같은 경우 영창이 따로 없어 인근 상비사단의 영창에 들어가야 해서 자리가 없어서 여기저기 알아보는 경우도 있었다. 


다행히 이번 건은 징계 수위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경우라 영창에 미리 자리를 확인했고 바로 보낼 수 있었다. 영창에서 끝난 게 아니라 병영 부조리로 영창을 간 경우 갔다 오면 다른 부대로 강제전출을 보낸다. 


그렇게 그 가해자는 영창 15일을 간 뒤 다른 부대로 보내지면서 이 사건이 끝난 줄 알았다. 


다른 부대라고 하지만 같은 연대에 다른 대대로 보내졌고 우리 연대는 한 건물에 붙어 있었기에 이는 나중에 또 다른 사건으로 발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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