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이야기
"신고합니다. 소위 이산규 등 2명은 20XX년 2월 28일 부로 소위에서 중위로 진급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2월의 마지막 날.
뭔가 허전해 보이는 한 개의 다이아가 두 개로 늘어났다.
임관한 지 어느새 1년. 자대 배치 받은 지는 약 8개월의 시간이 지나도 아직 미숙하고 서툴지만 징계기록이 없는 한 대부분이 소위에서 중위로 진급을 한다.
그날 하루 동안 옷깃에 오버로크친 계급장이 아닌 약식 계급장을 달고 다니는데 보는 선배들마다 그 계급장을 세게 눌러댔다.(계급장을 고정시키는 나사 같은 게 있는데 누르면 아프다)
그리고 선배들은 말했다
"ㅋㅋㅋ 중위 달면 좋을 것 같지? 이제 헬게이트 시작이다."
그동안 '소위'라는 보호막 아래 실수를 해도 '소위니까 그럴 수 있다'라고 넘겨짚었지만 이제는 '중위'니까 실수를 해도 용납이 안 된다는 것이다. 병사들이 이등병일 때는 실수를 해도 어느 정도 용납이 된다는 이치와 비슷하다. 뭐 맞는 말 같긴 하지만 그때 당시 그 말에 많은 의문이 들었다.
"내가 언제 실수했다고 봐준 적이 있었나?"
소위니까 잘 모를 수도 있다고 넘어간 시기도 있긴 하지만 그 시기가 소위 때 전부를 말하진 않는다.
길어야 3개월 정도? 사람마다 그 기간이 다르게 적용되긴 하지만 나의 소위 생활은 욕먹고 야근하고 욕먹고 야근하고의 반복이었다. 직장에서도 신입사원이라고 다 봐주는 것이 아니듯 나 역시 모르면 모른다고 욕먹고 서툴면 서툴다고 욕먹었다. 모르면 그냥 친절히 알려줄 법도 한데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진급을 했다고 바로 노련해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실수하고 여전히 미숙하다. 노련해지는 것은 한순간이 아니라 어느새 보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다.
중위를 달고 나면 그래도 좋은 점이 있다.
월급이 3만 원 정도 올랐다는 거?
막 중위를 달긴 했지만 계급장에 호봉까지 적혀 있는 것은 아니니 소위라고 무시당할 일이 없다. 소위면 장교들은 물론이고 부사관, 심지어는 병사들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중위는 군생활 2~4년 차이기 때문에 계급만으로 무시당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중위를 달면서 두려웠던 건 앞으로 실수하면 욕먹는 게 아니라(이미 먹고 있었으니까) 바로 진급 회식이다. 진급을 축하한다고 회식을 하는 좋은 자리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진급을 핑계로 뜯어먹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물론 진급심사에 들어가서 진급을 하게 되면 기꺼이 기분 좋게 한턱 낼 수도 있다. 사실 진급이라는 게 내가 잘해서 한 것 같지만 주변 사람들이 그만큼 받쳐주지 않으면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위에서 중위는 다르다. 그냥 숨만 쉬어도 올라가는 계급이다. 물론 축하는 받아야겠지만 과연 이것이 한턱 쏠일이냐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이 든다. 게다가 그냥 뜯어먹는 게 아니라 거하게 뜯어먹으려 한다. 진급 전에 선배들이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해주면서 겁을 줬다.
자기는 1차뿐만 아니라 2차에 3차로 좋은데(?) 까지 갔다며 그때 100만 원 가까이 쓴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와 동기의 표정이 굳으니까 걱정 말라며 우리는 1차에서 끝낸다고 했는데 자기는 1차만 50만 원을 썼다고 하니 이게 다행인 건지 싶었다.
진급 회식은 장어집에서 했다. 보통 회식을 하면 부대 회관이나 삼겹살, 돼지갈비집을 많이 가는데 우리가 사는 것이다 보니 더 비 싼 곳으로 갔다. 물론 축하를 받고 맛있게 먹었지만 먹으면서도 나와 동기는 과연 얼마나 나올까 벌벌 떨었다. 회식이 끝나고 계산대에 들어섰는데 다행히 50만 원 정도 나와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각각 25만 원씩 정도로 끝났구나 하며 동기와 웃으며 집에 갔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25만 원도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소위에서 중위로 진급하면 월급이 3만 원 정도 오르는데 월급 인상 대비 많은 금액이다. 그래서 후배들한테는 절대 그렇게 얻어먹지 말자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