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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Sep 21. 2018

군대의 여름

군대상식

지독히도 무더웠던 올해 여름.

밤에 아무리 헐벗어도 더웠고 에어컨 없이는 잠 못 이뤘던 여름.

그래도 그 덕분(?)에 모기가 없었던 올해 여름이 가고 어느새 반팔을 입고 나가면 쌀쌀해진 날씨를 보며 정말 여름이 갔구나 싶다.


그러고 보면 군대에 있을 때, 올해만큼은 아니지만 한 여름 무더운 날에 훈련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래도 지금은 살만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때는 숙소에 에어컨도 없이 어떻게 버텼나 싶다. 그러면서 군대의 여름은 이랬지 하는 생각에 몇 글자 적어본다.




1. 에어컨은 케바케(Case by case)

요즘 군대가 좋아져서 웬만한 곳에는 에어컨이 다 있을 것 같지만 정말 열악한 부대는 아무리 더워도 컨테이너에 선풍기 하나 달랑 주어지고 버티라고 한다. 아니 에어컨이 주어져도 고장 나거나 하면 바로바로 조치되지 않아 있으나 마나 한 경우도 있다.

이렇게 에어컨이 없으면 밤에 더워서 잠을 못 자는 경우가 태반이고 경계근무 갔다 오면 샤워를 안 하면 잠들 수가 없다. 상급부대에서부터 당직근무자들이 군장을 풀고 근무를 서게 허용해주기도 하고 근무 중에 샤워를 권장하기도 한다.(단 당직근무자 둘 중 하나는 정위치해야 한다.)

간부들 숙소도 마찬가지다. 에어컨이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는데 없는 경우가 더 많다. 부대에 요청해봤자 달아 주지 않기 때문에 보통 사비로 해결한다.


2. 덥다고 전쟁 안 하는 거 아니다

부대가 신식 건물이라 에어컨도 잘 나온다 하더라도 낮에 야외에서 일과는 진행되고 경계근무를 나가며 훈련도 한다. 물론 혹서기에는 되도록이면 무리한 활동은 자제하지만 가끔 "이렇게 더운데 훈련을 잡았다고?"라는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분명 그런 말을 하면 돌아오는 말은 이럴 것이다.

"덥다고 전쟁 안 하냐?"

불만은 가득하지만 뭐 훈련 잡는 사람이라고 좋아서 잡았겠는가. 도저히 일정이 안 나와 열사병에 노출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불가피하게 잡았을 것이다. 대신 여름에 훈련하게 되면 낮에 너무 더워 아무것도 못 하고 심지어 평가관들도 잘 돌아다니지 않는 이도 저도 아닌 훈련이 된다.

  

3. 복장이 바뀐다.

군대에선 전투복을 입어야 한다고 하지만 반드시 전투복만 입는 것은 아니다. 전투복은 하계용이라 해도 덥기 때문에 보통 혹서기로 들어서면 상의를 반팔 체육복으로 대체한다. 대신 바지와 신발은 전투복, 전투화를 착용한다. 체육복을 입는다고 해서 막 알록달록한 체육복을 입어도 되는 건 아니고 보통 군장 점 같은 데서 파는 디지털 반팔티나 검은색 아미티를 입는다. (참고로 여군이 있는 부대는 민소매 셔츠를 입고 돌아다니면 안 된다. 민소매 셔츠는 성군기 위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보통 여름엔 위에 있는 두 가지 티셔츠를 입는다.


4. 일과시간이 바뀌기도 한다

군대의 기본 일과 시간은 9시부터 17시 30분까지다. 하지만 너무 더워서 낮에 도저히 무언가 할 날씨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 융통성이 발휘된다. 가장 더운 시간인 12~15시까지는 오침이나 개인정비를 취하기도 하고 아예 일과를 새벽에 시작해서 낮과 밤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5.  음식에 민감해진다

기본적으로 군대는 단체가 같은 곳에서 조리한 음식을 먹다보니 조리 후 즉시 섭취하는게 아니라 돌아가면서 배식을 받아 조리 후에 벌레가 들어가는 경우도 많고(식당 뒤편에 짬통이 있다보니 식당에 파리가 많다!) 자칫하다 관리 소홀로 식중독이 발생하면 전투력 피해가 막심하다. 전투력 피해도 피해지만 상급부대에서는 원인 분석을 해야 돼서 감사가 나오는 등 후폭풍 때문에 부대가 쑥대밭이 될 것이다. 그래서 매일 식중독 지수를 체크하고 일정 시간 실온에 노출된 음식은 상했던 안 상했던 그냥 버린다. 당직사관들도 병사들이 행여나 관물대에 음식물을 쟁여둘 것을 염려해 내무검사를 더 빡세게 한다.



6. 끝나지 않는 예초

웬만한 부대들은 도심지와 떨어져 있고 산을 끼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사람이 잘 다니지 않기 때문에 주변 곳곳에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란다. 그러다 보니 울타리 주변으로 무성하게 자라 경계근무에 방해가 되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자라다 보니 부대가 잡초밭이 되는 건 한순간이다.  

그래서 부대에선 예초병을 뽑아놓고 예초를 하는데 예초기를 돌려본 사람은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것이다. 일단 예초기 자체가 무겁고 안 그래도 더운데 예초기 열 때문에 더 더워진다. 게다가 안전장비를 착용해도 돌이 튀기도 하고 줄 예초기를 사용하면 풀이 줄에 엉겨 붙어 예초기가 안 돌아가 그거 또 제거하고 다시 돌리다 보면 풀이 또 엉겨 붙고 등등 짜증 나는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더 짜증 나는 건 며칠 동안 예초를 하면서 부대 한 바퀴를 돌고 나서 시작점으로 오면 그 자리에 잡초가 또 자라나 있다.


예초가 정말 고된 일이기에 예초병들에겐 여름이 끝나면 포상휴가가 주어지긴 하지만 과연 그걸로 충분히 보상이 됐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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