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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Sep 23. 2018

군대에서의 추석

군대상식

민족의 대명절이라는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추석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시골 할머니 댁에 가서 오랜만에 친척들도 만나고 전도 부치고 차례 지내는 것이었다. 티비에서도 그런 이미지를 많이 보여줬지만 요새는 차례를 안 지내는 집도 많고 연휴라 여행 계획을 세우는 사람도 많아 각자 생각하는 이미지는 다를 것이다. 군대에서의 이미지도 약간 다르다. 추석이라도 부대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명절이지만 그 기분을 못 낸다. 그래서 군에서는 명절마다 그 기분을 내보고자 많은 것들을 시도한다. 하지만 장병들에게 추석에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으면 대부분 이렇게 대답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다."


군대에서의 명절은 쉬는 날이지만 쉬는 날이 아니다. 군대의 높으신 분들은 연휴 때 가만히 앉아서 쉬는 것보다 활동적인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추석 당일 아침엔 지휘관 동석 식사를 한다. 지휘관들이 부대에 나와 병사들과 같이 식사를 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간부들은 따로 먹기에 그래도 명절이니까 같이 식사를 하면서 병사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라는 것인데 괜히 병사들만 불편해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식사를 하고 차례상 준비가 끝나면 부대원들이 다 같이 합동차례를 지낸다. 이때 차례상은 부대별로 돌아가면서 준비하는데(대대급 부대를 예로 들자면 설날에 1, 2중대가 준비를 했다면 추석 때는 3, 본부중대가 준비한다. 준비는 보통 부사관들이 한다.) 다목적실 같은 큰 장소에서 차례상을 차려놓고 중대나 대대별로 돌아가면서 절을 한다.(기독교나 천주교는 절을 안 해도 된다) 합동차례가 끝나면 음식을 나눠 먹는데 이걸 먹으려고 차례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친구들도 많다. 


바닥에 모포를 깔아놓고 전투화 벗고 올라가서 단체로 절을 한다(사진출처 : 강원일보) 


뭐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명절 분위기도 내고 좋다. 그래도 명절이니까 명절 음식 먹으면서 마무리 하면 좋겠지만....


문제는 추석 당일을 제외한 나머지 날들이다. 추석 연휴를 맞이해 온갖 단체 활동들이 기다리고 있다. 축구 농구 족구 탁구 등등 각종 구기 종목으로 리그 같은 것을 개최하기도 하고 단체 윷놀이나 게임대회 같은 것도 하기도 한다. 하고 싶은 사람만 하면 좋겠지만 명절에 소외된 사람 없이 다 같이 함께하라는 취지라 강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하다 보면 재밌기도 하다. 부대원들끼리 웃고 떠들면서 즐길 때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이놈의 체육활동만 끌려 다니다 연휴가 다 가버린다.  


간부들이라고 쉬는 것도 아니다. 저런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게 되면 기본적으로 통제 간부가 한 명 이상씩은 무조건 부대로 나와야 한다. 게다가 연휴 간 안전순찰이라고 해서 날짜를 정해놓고 모든 간부가 돌아가면서 순찰을 돈다. 또한 연휴다 보니 당직이 껴있는 경우도 있어 진짜 어쩔 땐 연휴 내내 부대에 나오는 경우도 있다.(명절 당직은 상급부대에서 터치하는 게 많아 더 빡시다!!) 연휴 때 휴가를 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지휘관, 행보관들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휴가를 못 내게 하며(명절엔 지휘관과 행보관이 부대와 함께 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간부들도 형평성을 위해 추석이나 설날 둘 중 하나는 못 나간다.(규정상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통상 그렇게 한다) 가끔 어떤 지휘관은 연휴 내내 휴가를 쓰지 말고 반반 잘라서 쓰라고 한다.(예로 들면 4, 5, 6, 7일이 연휴라면 3, 4, 5일이나 6, 7, 8일로 자른다)


인사장교 시절에는 명절 때마다 연휴 간 계획 짜는 것이 일이었다. 활동 프로그램부터 통제 간부 편성, 휴가 조율, 간부 순찰 편성 등등을 작성해서 보고 하는데 아무래도 가장 신경 쓰이는 게 활동 프로그램이다. 맨날 같은 것을 하자니 애들도 지겹고 간부들도 지겨우니 고민이 많이 될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이색 프로그램을 짜보기도 하고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상품도 걸어보고 했는데 무엇보다 참여 의지를 높이는 건 상품으로 휴가를 거는 것이었다. 하지만 휴가는 내가 맘대로 줄 수 있는 게 아니었고 허락을 받는다 해도 모든 종목에 휴가를 줄 수는 없어 PX 2만 원 이용권 같은 소소한 상품을 걸기도 했다. 그래도 병사들이 참여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가장 좋은 건 그냥 쉬는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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