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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Oct 20. 2018

후임

군생활 이야기


많은 이들이 느끼겠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 

아침에 눈을 뜨고 출근해서 정신없이 있다 보면 밥 먹고 어찌어찌하다 보면 금방 퇴근 시간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집에 가면 순식간에 12시가 훌쩍 넘어버려 다시 잠들며 출근을 안 해도 되는 주말만 기다린다. 그렇게 한주 한주 견디다 보면 어느새 몇 달은 훌쩍 지나가 있다.

국방부 시계는 2배는 느리게 간다고 하지만 사실 출퇴근하는 간부들 입장은 그냥 직장인들과 똑같다. 주말만 기다리며 한 주 한 주 버티다 보면 계절이 가고 한 해가 지나가 있다. 


어느새 중위를 달았나 싶었는데 금세 후임들이 들어올 시기가 된 것이다. 새로운 간부가 온다면 당연히 관심이 가겠지만 그것이 후임이라면 더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소위들이 임관하는 3월쯤 되면 이미 자대 배치가 끝나서 연대나 대대에 누가 오는지 공지가 된다. 내가 소위 때 선임의 전화를 받았던 것처럼 나 역시 후임들에게 전화를 거는 입장이 된 것이다. 

이제는 막내 탈출이라는 기쁨도 있지만 동시에 걱정도 든다. 이는 병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뭐 겉으로는 "들어오기만 해 봐. 다 디졌어." 같은 멘트를 날리겠지만 밑에 누가 들어온다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후임을 잘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내가 가르치는 입장에서 위신이 서려면 나부터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동안 하도 털려서 단련이 되었다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가르치고 있는 장교 후임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체면이 안 서기 때문이다. 

물론 작정 과장이라고 안 털리고 대대장이라고 안 털리는 건 아니지만 털리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면 선임이어도 우습게 보일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그런 선임들을 보며 속으로 그런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니었기에 내가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진급할 때 보다 앞으로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지휘실습 계절인 4월.

전역하는 선임 통신장교를 대신할 통신장교와 전출 가는 선임을 대신할 한 명, 그리고 우리가 자대에 오기도 전에 의가사 전역한 선배를 대신할 한 명. 이렇게 총 3명의 후임이 왔다. 처음 임관하고 아무것도 몰랐을 때는 지휘실습이라는 게 아주 긴장되고 걱정했었는데 이미 부대의 일원인 입장에서는 당사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그냥 지나가는 업무 중 하나 정도로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친구들은 당사자들이라 그때의 나처럼 느끼고 있을 것이다. 처음 와서 뭘 해야 할지 몰라 이등병처럼 얼어있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저랬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아마 그랬을 것이다) 나때도 그랬지만 보통 초임장교가 들어오면 가장 관심 있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운동능력이다. 운동능력이라 함은 딴 건 다 필요 없고 축구나 족구를 잘하는 가이다. 그래서 얼어있는 애들한테 정작과장님이 운동 잘하냐고 물어봤는데 다들 '그냥 좋아합니다.' 정도로만 얘기했다. 하긴 정말 잘 하는 사람 아니면 자신이 잘 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거의 없긴 하다. 정작과장님은 새로 들어온 친구들이 다들 키가 큰 편이라 기대가 많이 된다고 하지만 키와 운동능력은 별개라는 것을 내가 이미 증명했기 때문에 나중에 검증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일과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우리 때는 훈련이 잡혀 있어 선임들이 없었기에 생활관에서 잤지만 보통은 지휘실습을 오면 선임들 방에서 자기에 나와  동기, 그리고 선임장교는 각자 후임들을 한 명씩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이 시기에 절대 초임장교들이랑 술을 먹지 말라고 하지만 집까지 찾아올 것도 아닌데 내 방에 모여서 간단하게 치맥 정도는 즐기기로 했다. 방에서 후임이랑 치맥 한 잔 하며 덕담을 해주곤 하는데 나나 동기나 하는 말이  '거기(OBC) 있을 때 많이 놀아둬라'였다. 물론 우리 부대는 상비사단보다는 지리적 여건이 좋은 동원부대이지만 군대는 군대이기에 녹록지만은 않다. 게다가 당시 부대 분위기가 초급장교들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이들 역시 우리가 겪은 것들을 겪는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우리가 케어해주면 좋겠지만 우리도 하루살이가 퍽퍽해서 우리 짬으론 케어해주기 힘들다. 그러니 놀 수 있을 때 놀아도라는 말밖에 해줄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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