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캡틴 Oct 17. 2018

병영체험

군생활 이야기

우리 부대가 수도권에 위치하다 보니 인접 기관들과 연계한 여러 가지 행사들을 주최하곤 했었다. 그중 하나가 인근 고등학교 대상으로 병영체험을 하는 것이었는데 전년도에 한 번 주최한 적이 있어 그 해에도 똑같이 주최하기로 했었다. 

전년도에도 소위 계급장을 달고 학생들을 인솔했었는데 1박 2일 코스라 인솔간부는 퇴근도 못 하게 해서 또 귀찮은 일을 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엔 왜 또 우리 연대가 하냐는 불만부터 내뱉었는데 알고 보니 다른 연대도 이미 했고 다시 우리 차례가 돌아왔다는 것이다. 다행히 그때와 달리 당일 코스여서 더 이상 불만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보나 마나 초급간부들한테 인솔을 맡길 테고 말도 잘 안 듣는 학생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뒤치다꺼리할 생각을 하니 골치가 아팠다. 


준비과정

사실 간부들이야 계획하고 실행하는 입장이라 머리가 아팠지만 병사들은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여자라고는 여군 간부가 전부인 군대에서 여자, 그것도 여고생을 볼 수 있다는 기대에 한껏 부풀었다. 그래서 인솔 병사로 자기 좀 쓰면 안 되냐는 난생처음 자발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병사들도 준비과정에서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스타강사 김미경 선생님도 말씀하시길 강의는 좋은데 강의 준비는 싫다고 하셨다. 군대에서도 비슷하다. 훈련이나 뭐나 막상 하면 별거 없는데 준비과정이 더 힘들다.

 

병영체험은 총 4번이 계획되어 있어 대대별로 돌아가면서 준비를 하기로 했다. 그중 가장 첫 번째가 우리 대대였는데(원래대로라면 1대대부터여야 되는데 왜 그랬는지는 기억은 안 난다) 역시나 준비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안 쓰고 있는 빈 막사에서 진행을 하는데 아무래도 안 쓰는 건물이다 보니 병영체험보다 흉가 체험하기 좋은 장소였다. 침상, 관물대, 복도, 행정반 등등 손볼 곳이 많았지만 압권은  화장실이었다. 

아무래도 여기는 한적하니 응가 싸기 좋은 장소라고 생각했는지 누군가 자신의 분신을 출산해놓으셨다. 당연히 물이 끊긴 지 오래되다 보니 말라비틀어져 변기에 도킹한 상태였다. 물이 안 나오니 어찌할 방법이 없었는데 정작과장님께서 이 현상을 보시더니 사단에 전화해서 물 좀 틀어달라고 겨우겨우 사정해서 그래도 화장실 구실을 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청소할 곳이 많은데 첫 번째 부대이다 보니 독 박쓰는 감이 없지 않아 있어 연대에 이야기해서 다른 대대 병력을 지원받아 청소를 진행했다.  

하지만 청소가 끝이 아니었다. 이제 학생들을 조를 편성해서 생활관을 나누고 관물대에 주기표를 뽑아 붙이고 명찰도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 일은 순전히 인사장교인 내 몫이었다. 게다가 병영체험이 다음 주 월요일인데 학생들 연명부를 금요일에나 받아서 주말 출근이 불가피했다. 사무실에서 계원이랑 학생들 명찰, 주기표를 뽑아서 하나하나 자르고 집어넣고 테이프 붙이고 다시 그 건물로 가서 관물대에 붙였다. 물론 이 작업도 한 번에 끝나지 않아 사무실로 가서 다시 뽑고 붙인 끝에 겨우 끝냈다.


학교 방문

주말도 제대로 쉬지 못했는데 월요일 아침 7시부터 출근해서 버스를 선탑해서 학교로 가 학생들을 데려와야 했다. 그것도 그냥 가는 것이 아니다. 수련회에서도 그렇듯이 교관은 뭐니 뭐니 해도 폼이 나야 된다. 

때문에 A급 전투복, 전투화에 군장 벨트만 차고 선글라스에 흰색 수갑, 호루라기를 장착한 뒤 당직사령한테 복장 점검을 받고 학교로 갔다. 그렇게 해 놓으니 다들 태양의 후예 유시진 부럽지 않은 포스를 뿜뿜하며 학교로 갔다.(물론 당시는 태양의 후예가 나오기 전이었지만) 학교에 도착하니 교사분께서 교장실로 안내해주셨다. 고등학교 때는 근처에도 얼씬 안 했던 교장실이라는 곳에도 들어가 보았다. 같이 갔던 선배들과 교장선생님과 차를 한 잔 마시며 '허허허허'하다가 시간이 돼서 학생들이 모여있는 연병장, 아니 운동장으로 나갔다. 사열대, 아니 구령대에서 바라보니 학생들이 줄을 서 있는데 여기가 군대였으면 당장이라도 엎드려뻗쳐 시킬 만큼 난잡했다. 하지만 이들은 학생이고 난 군인이니 굳이 나서지 않고 선생님들에게 맡겼다. 각자 반을 맡아 조를 편성해서 줄을 세우는데 여학생들이 수군수군 거리면서 '멋있다'라고 하는 소리를 들으니 표정관리가 힘들었다. 아무래도 하루 종일 선글라스는 안 벗는 게 좋을 거 같다.


인솔

버스가 부대에 도착하고 학생들은 모두 막사로 들어가 구형 CS복(폐기대상이지만 아직 사용 가능한 물품을 뜻하며 보통 유격훈련 때 입는다)으로 갈아입고 장구류를 착용하고 집합했다. 조별로 교관과 인솔 병사가 복장 하나하나 손봐주고 조별로 인솔을 시작했다.

인솔은 교관이 선두에 서고 후미에 인솔 병사가 따라오는 형식이 었는데 이동하는 것도 병영체험의 일부라고 제식을 시켰다. 연대에서 말하기를 만약 소풍 나온 것 마냥 걷다가 사단장님이나 연대장님 한테 적발되면 큰 재앙이 벌어질 거라고 하였다. 하지만 고등학생들에게 제식을 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뒤에서 인솔 병사가 아무리 '발맞춥니다.'라고 해도 발은 제멋대로였고 대열만 안 흐트러져도 다행이었다. 그래서 가다가 좀 흐트러진다 싶으면 잠시 멈춰서 괜히 설명충이 되어 이것저것 설명하기도 하고 농담도 하면서 가야 겨우 겨우 대열을 지킬 수 있었다.


 

체험코스

당일치기 체험이다 보니 준비된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장비 체험, 구급법교육, 사격체험, 유격체험, 병식체험 등이 있었는데 가장 호응이 좋은 것은 유격체험이었다. 사격체험은 고정된 표적을 맞추는 거고 서바이벌용 총으로 하는 것이다 보니 그렇게 호응이 좋지 않았다. 안전통제하 실제 총으로 사격할 기회를 줘도 다들 무섭다고 안 쐈다. 유격체험이 힘들 것 같지만 사실 유격훈련이 유격체조가 힘들지 유격 코스는 오히려 재밌는 편이다. 게다가 힘든 것들은 빼고 알짜배기 코스만 따로 빼놨기에 학생들한테 호응이 좋았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줄 잡고 건너기'였다

이것이 줄잡고 건너기다

진짜 사나이에서도 자주 나왔지만 줄잡고 건너기는 쉽지 않다. 어느 정도 팔힘과 뱃심이 받쳐줘야 안정적으로 몸을 ㄴ자를 만들어서 건널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을 버틸 수 있는 여학생은 물론이고 남학생도 거의 없다.(현역들도 못 하는 사람이 꽤 된다) 물론 강제가 아닌 희망자만 시도를 했고 모두 호기롭게 '도하 준비 끝'을 외치지만 반대편까지 가지도 못 하고 그대로 물에 입수해버린다. 간혹  반대편까지 가도 줄 놓을 타이밍을 놓쳐 진자운동을 하다가 결국엔 빠져버린다. 솔직히 보는 입장에서는 꿀잼이다. 물에 빠진 사람들은 인솔 병사와 함께 샤워장으로 직행한다. 

아마 당신도 시도한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다.

 


퇴소식

체험이 끝나면 다시 막사로 돌아과 환복하고 강당에 모여 연대 밴드 공연을 본다. 연대 밴드는 동아리 형식으로 모여서 하는 것이다 보니 그리 많은 곡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 4번 내내 같은 공연을 봐야 했다. 공연이 끝나면 퇴소식을 진행하는데 이때 대대장님이 참여 우수자에게 상장을 수여하신다. 수상자는 교관들끼리 이야기해서 정하는데 아마 현역이었으면 2박 3일 휴가였겠지만 이들은 그런 것이 없으니 별로 받고 싶지 않아 한다. 퇴소식이 끝나면 학생들과 단체 사진을 찍고 다시 버스에 오른다.  


마무리 

이런 병영체험을 통해 이들이 군대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게 된다면 성공적인 행사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 체험을 통해 '군대 별거 없네'라고 생각했던 학생들도 있겠지만 그때 남학생들 중 대부분은 그때 자신이 얼마나 철없었는지를 겪었을 것이다. 이들 중 직업군인이 꿈인 한 학생은 그 후에도 종종 연락을 하며 이것저것 조언도 해줬었는데 오랜만에 카톡 프사를 보니 아무래도 직업군인은 안 한 거 같다. 


준비과정에서는 그리 탐탁지 않았지만 이때가 군생활에서 가장 즐거웠던 때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예전에 부사단장님이 젊은 친구들이랑 있으면 나까지 젊어지는 기분이라고 젊은 애들이랑 이야기하는 게 좋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때 내 기분이 딱 그랬다. 별것도 아닌 농담에 깔깔거리며 웃는 학생들을 보며, 당시 나도 

젊었지만 더 젊은 사람들이랑 있으니 젊어진다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됐다. 병영 체험한 건 이들이지만 혜택을 보건 오히려 나였다. 군생활 중 좋은 추억을 갖게 해 준 이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직업군인들의 인사평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