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캡틴 Oct 15. 2018

직업군인들의 인사평정

군대상식


시즌(season)
[명사] 어떤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시기. 또는 어떤 활동을 하기에 적절한 시기. ‘계절’, ‘’로 순화.


군대에서는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시즌이 존재한다. 뭐 예초 시즌, 진지공사 시즌, 제설 시즌 같은 것들도 있지만 직업군인들에게 별도로 존재하는 시즌이 있다.

1년에 두 번인데 이 시기가 되면 되도록 평소보다 행실을 더 조심하고 작은 마찰이라도 안 일어나게 몸을 사리며 사고예방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된다. 만약 이 시기에 안 좋은 일로 자신의 일이 거론된다면 다른 때 보다 더 타격이 크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 아하는 이 시기. 이를 '평정 시즌'이라 부른다.


군대에서는 1년에 두 번(전반기, 후반기) 각 간부들에 대한 근무 평정을 작성한다. 평정권자가 피평정자에 업무태도나 실적에 관하여 평가를 하는 시기이다. 보통은 지휘관이 예하 간부나 참모장이 참모에 대하여 평정을 주는데 보통 2차에 걸쳐서 내린다.(1차나 2차 중 한 번만 하는 경우도 있다) 업무태도나 실적에 대하여 코멘트를 남기고 전체적인 등급을 매기는데 절대평가인 것도 있지만 상대평가인 것도 있다.

이는 차곡차곡 쌓여서 장기복무나 진급에 영향을 미친다. 매우 중요해 보이지만 사실 단기 복무자나 초급 간부들은 그리 큰 관심이 없다. 단기 복무자들이야 어차피 전역하는데 군대 기록이 뭐가 중요하나 싶고 초급 간부들 같은 경우 절대평가인 경우가 많아 그렇게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장기복무를 하는 대위급 이상 장교나 중사급 이상 부사관들에겐 중요하다. 평정이 상대평가로 들어가고 진급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평정에서는 군인정신, 품행, 전문성 등을 평가하며 각 항목별로 정해진 글자 수 내에 코멘트를 달아야 한다. 하지만 한 가지 맹점이 평정권자는 피평정자의 개인 자력을 상세히 알 수 없고 연대장급 이상 지휘관에게 평정이 들어갈 경우 예하 부대 피평정자들이 어떤지를 세세히 알기 힘들다. 그래서 평정 시즌이 오면 워크샵 같은 것도 열고 예하부대 순시도 가고 한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각 항목에 들어가는 코멘트를 평정을 받는 사람이 직접 작성해서 평정권자에게 보낸다. 피평정자가 평정권자에게 '내가 이만큼 뛰어나고 우수한 인재'라는 것을 어필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취업활동을 할 때 기업에 자소설을 내는 것을 1년에 두 번씩 하는 것이다. 쓰는 입장에서는 할 말도 없는데 겨우 쥐어짜 내고 써놓고 보면 오그라드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다.


인사업무 하는 입장에서는 평정 작성 시기에 맞춰서(장교, 부사관 시기가 다르고 1차 평정 작성, 2차 평정 작성 기간이 따로 있다) 피평정자의 자료를 종합해서 평정권자에게 제출을 해야 하는데 달라고 달라고 재촉하여야 겨우 받을 수 있고 전역예정자들은 인사담당자가 후임일 경우 글자 수도 안 맞고 대충 써서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것을 또 일부 손을 봐야 하는 경우가 있다.(그대로 들어가도 상관없지만 그대로 가지고 들어가면 괜히 인사담당자한테 뭐라 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인사담당자가 평정 완료까지 확인을 해야 하는데 시스템상으로 처리를 하는 거라 시스템상에서 제출을 누르면 확인을 하고 다시 완료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중간에 뭔가 누락돼도 개인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다 된 줄 알았는데 상급부대에 연락 와서 왜 아직도 안 됐냐고 닦달하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 평정을 쓸 때 원래는 그러면 안 되지만 전역을 앞둔 나이 많은 대대장이라 컴퓨터가 익숙하지 않아 불러주는 대로 옆에서 받아 적어서 내 평정을 내가 기록하기도 했다. 소설을 써서 제출했기에 기록하면서도 참으로 민망했던 기억이 있다.


피평정자나 인사담당자뿐만 아니라 평정권자들도 곤욕을 치른다. 전역예정자면 적당히 써도 상관없겠지만 군생활을 계속할 사람들의 평정을 써주는 건데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자료라고 받은 것들은 그대로 쓸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두루뭉술한 말만 늘어놓는 경우도 있고 항목에 맞지 않는 내용을 쓰기도 한다. 뭐 여기까지는 그렇다 쳐도 글의 앞뒤가 안 맞거나 "마춤뻡파궤자"들도 있어 정말 군생활을 계속하고 싶은 건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또한 평정이 무서운 게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말 군인으로서 자질이 없다고 생각해서 평정을 안 좋게 주면(흔히 긁어버린다고 표현한다) 그 사람의 군생활은 꼬여버릴 수 있다. 만약 최악의 점수를 부여하면 육군본부에서 '정말 이대로 제출하냐'라고 확인 전화가 올 정도로 그 사람의 인사기록에 남아 군생활 내내 낙인처럼 따라다닌다.

근무평정을 이러한 과정으로 검증을 한다고 한다


평정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평정만으로 진급이 결정되는 건 아니다. 평정 한 번 긁혔다고 군생활을 접을 필요도 없고 평정 잘 받았다고 진급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진급심사에 들어가면 고려되는 요소 중 하나 정도로만 생각하고 관리하는 게 맞다. 평정에 대한 과도한 의식이나 평정권자에게 싸바싸바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러다 평정 외적인 것 때문에 역풍을 맞는 경우를 많이 봤기에 적당한 선에서의 관리가 필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군대의 행정업무 시스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