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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Jan 26. 2019

육군 파일럿

군생활 이야기

후보생 시절엔 일주일에 6시간씩 군사교육을 받았다. 

군알못이었던 당시 들어도 무슨 내용인지 잘 이해가 안 가고 단지 암기과목으로만 느껴졌다. 그래도 가끔 재밌었던 게 당시 훈육관님이 썰을 푸는데 능력이 있으신 분이라 군대 썰을 기가 막히게 잘 푸셨다. 

그중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가 항공장교를 지원했던 이야기였다. 생각해 보면 내가 남들보다 길게 군 생활한 시작점이 그 썰을 들은 후부터였던 것 같다.  

육군이라 하면 바퀴 달린 것만 탈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항공이라는 병과가 있다. 공군과는 다른 개념인데 헬기로 육군의 화력을 지원하는 것이다. 

훈육관님이 항공장교를 지원하고 헬기를 조종했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한 번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임관할 때 지원하는 게 아니라 중위 때 장기복무자 중에 지원을 하면 시험을 봐서 뽑는다고 했다. 원래 파일럿에 대한 로망이 있던지라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전역을 하던 어쨌든 일단 장기복무를 해서 항공장교가 돼 보고 싶었다. 

그래서 임관 후 누가 물어보면 장기복무를 희망한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거기엔 맹점이 있었다. 장기복무를 희망한다고 하니 강하게 키운다고 더 빡세게 일을 시켰다. 보직도 어려운 것을 주고 임무수행에 대한 기대치도 높았다. 실수를 해도 단기 복무자라면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있지만 장기 희망자에겐 용납이란 없었다. 


그 모진 시절을 겪고 중위가 되고 항공장교 선발 공고가 떴을 때 내가 큰 착각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훈육관님 때랑 제도가 바뀌었는지 장기복무자가 아니어도 지원을 할 수 있고 합격한 사람은 자동으로 장기복무자가 되는 것이었다. 뭐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일단 지원서류를 제출했다.

 

그 후 선발시험 및 신체검사 일정이 나왔는데 평일에 논산까지 가야 했기에 휴가를 내야 했다.

하지만 항공장교 시험 보러 간다고 말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당시 분위기가 병과를 옮긴 다고 하면 배신자 취급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비밀로 할 수도 없었다. 내가 조용히 한다고 다른 사람 귀에 안 들어갈 사항이 아니었다. 

시험 보러 가기 며칠 전 휴가를 내며 대대장님에게 말을 했을 때 대대장님은 역시나 반대를 하셨다. 이유는 항공병과로 가면 잘 올라가 봐야 중령이 끝이기 때문에 장교로서 비전이 없다는 것이다. 

말은 그렇게 하시지만 다른 이유로는 대대에서 여태껏 장기복무를 밀어줬기에 배신감이 들기도 하고 항공장교로 선발되어 예기치 못하게 보직에 공백이 생기면 지휘관 입장에서 골치 아픈 일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국 대놓고 못 가게 할 수는 없어 가라고는 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았다. 


많은 고민 끝에 결국 항공장교 시험을 보러 갔다. 

시험 전날 업무를 하느라 막차를 타고 밤늦게 논산역에 도착했다. 역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 한참을 걸어 나가서야 찜질방에 도착해 쉴 수 있었다.


시험 당일 논산역에서 셔틀을 타고 항공학교로 들어갔다. 

육군항공학교 (출처:논산시 블로그)


버스에 내려 커다란 강당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거기서 야전으로 흩어져서 볼 수 없었던 ROTC 동기도 만났고 같이 ROTC 준비하다 떨어져서 3 사관학교로 간 학과 동기도 만났다. 시끌벅적한 강당에 감독관으로 보이는 분이 들어서자 금세 조용해졌다. 

시험지를 나눠주고 모두 주어진 시간 동안 문제를 푸는데 열중했다. 영어시험이었는데 임관하고서는 담을 쌓고 살았기에 쉽게 풀리지 않았다.  

시험이 끝나고 점심을 먹은 후 바로 대전으로 가야 했다. 다음 단계가 신체검사인데 항공학교 내부에선 진행이 불가능 한지 대전에 있는 자운대로 가서 신체검사를 받아야 했다. 

 

자운대. 여러 군사교육시설이 모여있다.

그래도 갈 때는 학교 동기들이랑 같이 가서 심심하지는 않았다. 대전에 있는 회관을 잡고 하루 묵은 다음에 신체검사를 봤다. 눈 검사, 혈압검사, 키, 몸무게 등등 여러 검사를 마치고 다시 부대로 복귀했다. 


한 달 뒤 한통의 문자가 왔다. 


신체검사 결과 시력이 기준에 못 미친다는 내용과 만약 검사 결과가 잘 못 됐다고 생각하면 가까운 병원에서 재검사해서 제출하라고 했다. 평소에 안경을 안 쓰고 다녀서 시력이 나쁘다고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헬기를 조종하는 일이다 보니 그보다 높은 수준의 시력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 길로 가까운 대학병원에 가서 눈 검사를 다시 받았는데 결과는 같았다. 결국 어떠한 반박자료를 제출하지 못했다. 

크게 아쉽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가 군생활을 오래 하게 된 계기였던 항공장교였지만 도전하고 싶은 것 중 하나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부대에서 배신자로 찍히는 게 두려워 지원도 안 했으면 후회를 했을 테지만 도전해봤기에 후회는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남 눈치 안 보고 해야 후회가 안 남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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