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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Jan 29. 2019

군대에서 동기라는 존재

동기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대학교 때부터였다. 

초·중·고등학교는 같은 학년 친구들이 대부분 같은 나이지만 대학교 때부터는 그 경계가 허물어지고 나이나 학년이 아닌 들어온 시기를 따지기 때문에 같이 들어온 사람들을 동기라고 부른다. 이 단어는 군대에서도 회사에서도 쓰이는데 동기의 가장 좋은 점은 같은 시기에 같은 조직에 들어갔기 때문에 서로의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는 초반에 적응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반면, 같은 시기에 들어왔다는 이유로 비교대상이 되기 때문에 괜히 미워지기도 하는 존재이다. 


개인적으로 동기라고 부르는 사람 중에 가장 끈끈한 것은 군대 동기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같은 생활관에서 만난 가수 서은광과 윤두준. 가끔 이런 기막힌 인연이 있기도 한다.


대학교에 들어갈 때는 수많은 동기들이 있기 때문에 그중 마음 맞는 사람을 골라 사귀면 된다. 마음이 안 맞는 사람은 안 보면 그만이다. 회사 역시 동기라고는 하지만 업무적으로 얽히지 않으면 이야기할 일도 많지 않다. 

하지만 군대 동기는 다르다. 같은 시기에 전역하기 때문에 마음이 안 맞는다고 안 보려고 해도 안 볼 수가 없다. 게다가 요즘은 동기 생활관을 사용하기 때문에 전역할 때까지 한 공간에 있게 되니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동기라고 다 사이좋게 지내지는 않는다. 너무 안 맞으면 정말 많이 싸우기도 한다. 그러면서 정이 드는 경우도 있지만 정 안 되겠으면 아예 돌아서면 그만이다. 나쁜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선임이나 후임이 돌아서기 힘들기 때문에 깔끔한 인간관계라 볼 수 있다. 


처음 군대에 들어가면 누구나 힘들다. 그런 시기에 군대 내에서 나를 가장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동기밖에 없다. 동기 역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으며 서로의 입장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다 보면 우정을 넘어 전우애가 싹트는 것이다. 그래서 군대 있을 때 만난 사람 중에 사회 나가서 연락할 확률이 가장 높은 게 군대 동기이다.(실제로 조사된 수치는 없다. 뇌피셜 같지만 경험상 가장 많이 봐왔다.)



나의 동기는 5년제 학과를 다녔기에 나보다 한 살 많았다. 다른 데서 만났다면 형이라고 불렀겠지만 군대에선 '형'이라는 계급이 없기 때문에 그냥 편하게 불렀다. 종교적 이유로 술은 안 마시지는 친구지만 힘들 때 같이 야식 먹으며 한탄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전우였다. 다른 대대에도 동기들이 있었지만 같은 대대 동기만큼 의지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친구는 단기 복무자였기에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다. 


"정신과 시간의 방"


드래곤볼이라는 만화에 나오는 장소인데, 안에서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밖에서는 하루밖에 안 지나가 있는 장소이다. 그래서 흔히 군대의 하루가 1년 같다고 하여 '정신과 시간의 방'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처음 자대 배치를 받고 전역을 앞둔 2년 선배는 이렇게 말하였다.


"시간 정말 금방 가니까 전역 준비하려면 소위 때부터 해야 돼."


물론 전역을 앞둔 사람이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군대에 들어가고 시간은 정말 금세 지나갔다. 병사들 입장에선 부대 안에만 있어 나가고 싶은 마음에 시간이 더디다고 느낄 수 있으나 간부들은 퇴근 후에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에 일반 직장인과 같다. 

직장인들처럼 주말만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견디다 보면 어느새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같이 임관했던 동기는 이제 전역을 앞두고 있었다. 


말년 병장보다 무서운 게 말년 중위라고 했다. 대부분의 중위들이 전역을 앞두고 업무에 손을 놓는다. 완전 일을 안 한다기보다는 웬만한 건 후임들을 시키기 때문에 여유가 생기고 칼퇴를 한다. 하지만 말년 병장보다 더 초조해한다. 

중위들은 전역을 하면 이미 대학도 졸업했고 20대 후반이기 때문에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 전역하면 뭐 먹고살지가 바로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다행히 군생활 동안 전역 준비를 잘해두면 좋겠지만 부대 일에 치이다 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전역 두세 달 앞두고 초조해지는 것이다. 


몇 달 전까지 장교한테 말년이 어딨냐고 말하던 동기도 전역 두 달 전부터 업무에 손을 놓고 있었다. 전역 후 자신의 길을 가야 되기 때문에 더 이상 부대일이 자신의 일보다 우선시 되지 않았다. 동기는 나보다 먼저 작전보좌관을 한 사수였지만 내가 보좌관이 된 이후 교육장교로 나의 보조적인 역할을 했기에 그동안 도움받은 게 많았다. 그래서 이제는 동기의 전역 준비를 도와야 할 차례였다.

상급자들 중에서도 크게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동원사단에서 업무는 중소위들이 다 한다고 말이 있는데 내 동기 역시 2년 동안 충분히 제 역할을 해왔기에 전역 준비를 하는 것을 뭐라 할 수 없었다. 장난으로 전역 앞두고 빠졌다는 이야기를 해도 웃으며 넘겼다. 


1년 선배가 전역하고 후임들이 들어왔을 때는 몰랐지만 같이 들어왔던 동기가 전역을 한다고 하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숙소에서 동기의 짐은 하나둘씩 없어졌고 전역 전날 동기들끼리 모여서 점프 뛰어서 바다 갔다 오자는 헛소리를 듣고 있으면서 내심 부러웠다. 내가 선택해서 군대에 남았지만 그동안 많이 의지했던 동기였는데 이제 혼자 남는다고 생각하니 괜히 복무 연장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전역식 날 신고를 하고 부대를 나가는 동기를 보는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복잡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 들었던 건 찰나일 뿐 다시 업무를 할 수밖에 없었다. 동기의 빈자리는 이제 막 자대 전입 온 초임장교로 채워졌다.

 

어느새 선임들도 전역하고 전출 가고 나니 대대 중위 중에선 최고참이 되어있었다. 그래 봤자 중위지만 3년 차 중위는 뭔가 특별하다. 보통 장교들이 한 대대에 오래 있는 경우가 없다 보니 부사관 다음으로 대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새로 대위들이 전입 오면 웬만한 건 중위들한테 물어본다. 

하지만 동기가 없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후임들이 있고 선임들도 있지만 부대에서 동기만큼 의지되는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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