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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Feb 12. 2019

3년 차 중위가 되어서 느낀 것들

군생활 이야기

2년 4개월이라는 의무복무 기간이 지나니 동기들이 전역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후임들이 들어왔다.


처음에 후임이 생길 때는 이제 짬이 좀 차는 것 같아 좋았지만 정작 짬이 좀 차고 나니 후임이 들어오는 것에 별 감흥이 없어졌다. 일명 짬 중위 중에 짬 중위가 된 것이다. 


보통 4년차에 대위를 다는데 이분은 9년차 중위이다. 어마어마한 짬 중위다.


오히려 이것저것 가르쳐야 돼서 귀찮은 게 많아졌다. 아직 어리숙한 후임들을 보면서 그 시절을 곱씹게 된다. 

소위 시절엔 일 잘하는 후임이 되고 싶었는데 후임을 늘어나면서 드는 생각이 재입대하는 거 아닌 이상 시키지 않아도 척척 잘하고 빵꾸 안 내는 후임은 없는게 당연한 것이다.

고로 일 잘하는 후임은 존재하지 않는다. 

보통은 눈치 빠르고 싹싹한 후임을 선호하지만 그것은 일을 잘 하는 것과는 별개이고 개인의 특성에 가까운 것이라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좋은 후임은 열심히 하려는 후임이다. 

그래서 선임 입장에서는 장기 희망하는 후임을 좋아한다. 단기 복무자라고 열심히 안 하는 건 아닌데 장기 희망하는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더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있다. 그리고 말년이 없기 때문에 특정 시기가 되면 손을 놓는 일이 없다.


소위 때는 맨날 혼났기에 선임들이 날 싫어할 것이라 생각했다.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서툴렀고 실수가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당시 포대장님이 주말에 나와 업무 하는 모습을 보고 이런 말을 하셨다.


"어휴 나는 이제 너처럼 하라고 해도 못 하겠다." 


그때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후임들이 생기고 그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 군대는 이익집단이 아니기에 업무에 실수했다고 금전적인 손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다. 웬만한 실수는 욕먹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욕먹고 하다 보면 주눅 들고 자신감이 떨어질 수는 있는데 욕먹는 것에 대해 그리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군 생활하면서 욕먹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중령이라고 욕 안 먹는 거 아니고 장군이라고 욕 안 먹는 거 아니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좀 서툴더라도 열심히 하려고 하면 사람들은 좋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미지 관리라는 것도 하게 됐다. 어떤 조직이나 입소문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실수 한 번 잘못했다가 사람 X신 만드는 거 한순간이다. 솔직히 소위 때 내 이미지는 그리 좋지 못했을 것이다. 대대 내에선 그래도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눈에 보이지만 다른 대대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미지가 안 좋아지면 업무를 하면서도 쉽게 갈 일도 어렵게 되기 때문에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좋은 이미지라는 것은 쉽게 형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랜기간 차근차근 쌓아나가야 했다. 


다른 대대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쌓는 방법 중 하나가 당직근무였다. 당시 연대 당직부관을 서고 있었는데 다른 대대 상급자들과 당직사령으로 같이 근무를 서는 경우가 많았다. 같은 건물 안에 있어도 업무상 접점이 없으면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데 같이 당직을 서게 되면 그래도 어느 정도 알게 된다. 만약 당직 때 실수를 하게 되면 나에 대한 이야기가 그 대대 사람들 전부에게 퍼지는 건 순식간이다. 소위 때는 그것을 몰랐는데 나중에 알게 된 후부터 당직 근무 때 그냥 시간 때우면서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누구나 당직은 서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그들이 아무것도 안 하게 만들면 됐다. 당직을 서면서 일이 생기면 보고하고, 처리하고, 결과보고만 하면 되는데 당직 때마다 반복되는 업무라 어렵지 않아도 효과는 컸다. 


특히, 당직사령이 처음 같이 당직서는 사람이면 유독 신경 썼다. 좋은 이미지를 심기 위한 가장 좋은 것은 첫인상이라고, 군대라는 것이 사람들이 순환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나가는 사람이 있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이때 들어오는 사람들한테 좋은 인상을 남기면 같이 일하지 않았는데도 '일 잘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기 쉬웠다.

 

마지막으로, 군대에서 살아남으려면 많이 알아야 한다고 느꼈다. 군대가 상명하복의 조직이지만 상급자의 말이라고 무조건 수용할 필요는 없다.

흔히, 전술에 정답은 없다고 하는데, 이론을 바탕으로 각자 나름의 논리만 있으면 된다. 상급자의 말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다. 의견이 다르면 내 논리로 상대방을 설득시키면 된다. 

오히려 상명하복만 하면 하급자를 우습게 보는 경우가 생긴다. 가끔 보면 강한 사람한테 약하고 약한 사람한텐 강한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하라는 대로 하면 약자로 보고 막대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한테는 상급자일지라도 조금 세게 나갈 필요가 있다. 막 덤비라는 것이 아니라 계속 논리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면 껄끄러워서 쉽게 대하지 못 한다. 하지만 그러려면 상급자 못지않게 알아야 한다. 어쭙잖게 덤볐다가 되려 더 만만하게 보일 수도 있다. 


반면에 잘 알지 못하면 하급자에게도 무시받을 수도 있다. 가끔 병사들의 세계에서 후임한테 먹힌다는 표현을 쓰는데 장교의 세계에서도 그런 것이 존재한다. 상급자가 하급자보다 알지 못하면 하급자에게 휘둘리게 된다. 상급자라면 그만큼 배워야 한다. 짬이라는 것을 무시 못 한다고 하는데 그 짬이라는 것은 짬밥을 더 많이 먹은 만큼 더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군대에서 살아남으려면 많이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 배움의 골든 타임이 바로 중 소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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