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생활 이야기
대한민국 남자라면 대부분 군대에 들어온다.
그러다 보니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환경에서 있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이게 된다.
군대가 아니었으면 평생 못 봤을 만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별의 별일이 다 일어나게 된다.
동원사단에서 동원훈련을 하게 되면 대략 300명 정도의 예비군들이 들어온다. 그러다 보니 정말 별의별 사람들이 들어온다. 현역들 입장에서는 통제하는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예비군을 통제하려고 윽박을 지르기도 하고 살살 달래기도 한다. 그렇게 정말 고생해서 동원훈련이 끝났는데 가장 난감한 경우는 민원을 남기는 경우다.
민원이 생기면 훈련이 끝나도 여러모로 피곤해진다.
그렇다고 민원이 무서워서 벌벌 떠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사람이 오기 때문에 가끔 불가항력적인 것들로 민원이 생기기도 한다. 가끔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로 민원이 발생한다.
1.
동원훈련에는 조기퇴소라는 것이 있다. 몸 상태가 안 좋거나 개인적으로 중대한 일이 있을 경우 조기 퇴소할 수 있다. 그래서 가끔 입소했다가 바로 퇴소하는 사람도 있다. 이럴 경우 4시간 정도 인정을 해주는데 문제는 이를 악용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한 예비군이 입소하자마자 건강상의 문제로 바로 퇴소한 적이 있다. 부대에서는 절차대로 퇴소처리를 했는데 그렇게 조용히 가면 될 것을 SNS에 올린 것이다. 글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OO형이 알려준 꿀팁으로 동원훈련 조기퇴소ㅋㅋㅋ 4시간 거저먹었네ㅋㅋ"
그리고 누군가 그 글을 보고 민원을 넣은 것이다. 군기문란이라나 뭐라나.
아마 그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 민원을 넣지 않았을까 싶다. 부대 입장에서는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힘들고 오히려 안 내보내는 게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퇴소 역시 절차대로 처리해서 아무 문제없었지만 한 가지 드는 생각이
"아 세상 잘 살아야겠구나."
2.
동원훈련 2일째.
아침을 먹고 지휘통제실에서 훈련 준비가 한창인데 조교로부터 무전이 왔다.
"지휘통제실 1포대 상병 OOO입니다."
"송신 바람."
"예비군 중 한 명이 식사를 하다가 이빨이 부러졌다고 합니다."
"뭐? 어쩌다가?"
"식사하다가 그랬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뭐 때문에?"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지통실로 가겠습니다."
아무래도 뭔가 문제가 발생한 것 같았다. 마침 지휘통제실에서 그 무전을 들은 대대장님이 물었다.
"오늘 아침이 뭔데 이빨이 깨졌다고 하냐?"
"오늘 아침 빵식에 콘프로스트 나왔습니다."
"이빨이 깨질만한 것은 없는데... 젓가락이나 숟가락을 씹었나?"
우리는 젓가락이나 숟가락일 것이라고 예측하고 예비군을 기다렸다.
잠시 후 예비군은 덤덤한 표정으로 지휘통제실로 대대장님 앞에 앉았다.
"이빨이 어쩌다가 깨지셨어요?"
"콘프로스트 먹다가 깨졌습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여기서 누구나 상식적으로 콘프로스트는 이빨보다 강도가 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대장님도 그 소리를 듣고 잠시 아무 말도 못 했다.
아마 속으로는 '무슨 개소리야'라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일단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한번 보자고 했는데 정말 이빨이 깨져있었다.
"정말 콘프로스트 먹고 이빨이 깨지신 거예요?"
"네."
"그전까지는 멀쩡했고요?"
"네."
"그러면 혹시 깨진 이빨 조각 어딨어요?"
"짬통에 버렸는데요."
"짬통에 버리셨다고요?"
"네."
정말 난감해 보였다.
원래 원칙상 동원훈련 중에 다칠 경우 예비군도 군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그 예비군 역시 군 병원에 가서 치료받기 원하고 있지만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목격자도 없어서 쉽게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대대장님은 많은 고민을 하다가 잠깐 생활관으로 가 계시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상급부대에 전화해서 문의를 했는데 아마 상급부대에서도 그 사실을 납득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밥 먹다가 이빨이 깨졌다는 증거도 없고 목격자도 없어 여기서 그랬다는 증거가 없는 상황이라 도와주기가 힘들었다. 결국 예비군을 다시 불러서 도와줄 수 없는 이유를 조곤조곤 설명해줬다.
그 예비군은 예상외로 그냥 알았다며 돌아갔다.
그리고 동원훈련이 끝나고 그 예비군은 민원을 올렸다. 그래도 그 상황에 대하여 이미 사단까지 보고를 했었기에 별문제 없이 넘어갔다.
그리고 몇 달 후
포상에서 작업을 하던 병사가 지휘통제실로 들어왔다.
"충성! 상병 OOO 지통실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어? 뭔데?"
"지금 이빨이 깨져서 의무대에 가야 돼서 보고 드리러 왔습니다."
"뭐 이빨이 깨져?"
처음에는 작업을 하다 부주의로 이빨이 깨졌다고 생각해 심각한 일인 줄 알았다.
"어쩌다 깨졌는데?"
병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 크런키 먹다가 깨졌습니다."
"뭐? 크런키? 초콜릿?"
"네 그렇습니다."
상식적으로 크런키 초콜릿이 이빨보다 강도가 세지 않다. 심지어는 콘프로스트보다도 세지 않다. 하지만 그 병사의 이빨은 썩어 있었고, 작은 충격에도 부서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날 대대장님은 결산 시간에 이런 말을 했다.
"아무래도 내가 그때 그 예비군한테 실수를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