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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Apr 29. 2019

ROTC 후보생 1년 차 생활

OAC 입교 당일.

입교 수속을 마치고 약 4개월 동안 지낼 방을 배정받았다. 6인 1실이라는 다소 밀도가 높은 방이었지만 불평한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방을 들어서려다 방문 앞에 붙어있는 룸메들의 이름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흔한 성도 흔한 이름도 아니었기에 분명 그 사람이 맞다고 생각했다. 

룸메 중 1명이 같은 학교 1년 선배였다. 


후보생 시절 1년 선배는 가까우면서도 먼 존재이다. 야전에서 보면 고작 1년 차이지만 그 당시엔 달랐다. 선배라고는 바로 윗 기수 밖에 없고 그들이 군기를 담당하기 때문에 처음엔 다가가기가 힘들다. 그는 섹션을(자치위원회를 구성하여 직책을 부여하는데 이를 섹션이라고 표현한다) 맡고 있었기에 얼굴과 이름은 익숙하지만 같은 단과대학이 아니라서 친하지 않았던 선배였다. 


그 이름을 보니 문득 ROTC 1년 차 생활이 생각났다.  

(예전에 간략하게 후보생 생활에 대해 쓴 적이 있으나 이번에 더 자세하게 다루어 보겠다.)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

우리는 기록적인 폭설을 뚫고 입교를 했다.

머리를 어색하게 빡빡 밀고, 같은 대학교지만 본 적 없는 친구들. 

아직 대학생 물이 채 빠지지 않은 동기들과 함께 내무반 생활을 시작한다. 

우리에겐 교번이 부여되고 '교육생'이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또 다른 말로는 '가입단자'라고 한다. 훈련이 끝나고 단복을 입기 전까지 '후보생'이라는 명칭은 주어지지 않는다.  


훈련기간은 겨우 2주. 

2주라는 시간은 밖에서야 짧은 시간이지만 군대 안에서는 정말로 긴 시간이다. 

함께 고생하면 전우애가 쌓인다고 했던가. 어색했던 동기들도 그 시간 동안 동거 동락하다 보면 친해지기엔 충분했다.  

(ROTC 후보생의 총 입영훈련 기간은 12주이고, 매년 교육 정책이 바뀌면서 기수마다 동·하계 입영 훈련기간은 다소 상이하다. 동계 2주 하계 4주인 경우도 있고 동계 3주 하계 3주인 경우도 있다) 


아직 동이 트지도 않은 새벽에 일어나서 추위에 떨고 이리저리 구르고 하다 보면 정말 긴 하루가 된다. 개인정비 시간도 잘 부여되지 않는다. 뭘 하던 5분, 10분 안에 끝내야 했다. 일과가 끝나도 이것저것 할 일들이 많다. 모든 일과가 끝나고 22시에 불을 끄자마자 곯아떨어지기 바쁘다. 22시부터 6시까지 8시간이라는 취침시간이 부여되지만 한없이 부족하고 자도 자도 피곤이 가시지 않는다. 어떤 이는 자다가 잠꼬대로 '탄피 받이 제거!'를 외치기도 하고 자신의 교번을 외치기도 한다. 

아침, 점심, 저녁 제때 챙겨주고 부식까지 나오지만 배고팠다. 소주도 먹고 싶고 삼겹살도 먹고 싶다. 

친해진 동기들과 밖에 나가서 꼭 삼겹살에 소주 한 잔 먹자고 약속한다. 

그렇게 처음 군인이라는 것을 겪어본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 과정을 거치고 나오면 효과는 대단했다.

군기가 바짝 들어가 들어가기 전과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나온다. 

ROTC 후보생 생활은 그렇게 시작했다.


3학년 1학기가 시작되기 1주 전. 

같은 단과대학 선배들에게 불려 가 보안교육을 받는다. 원래 알고 지냈던 선배들도 그때부터 어색해지기 시작한다. 단복 다림질하는 법, 베레모 각 잡는 법, 구두 광내는 법, 007 가방 잡는 법 등등을 배우고 사주경계, 항상 백팩 착용, 모자 금지, 음주 보고 요령, 선배들 연명부 외우기 등등 부조리들도 배워간다. (부조리이다 보니 훈육관한테 들키면 안 되기 때문에 학군단 내에서 하는 행동과 학군단 밖에서 하는 행동들이 다르다.) 그리고 우리 기수의 '장', '말', '쓰리'를 뽑는다.  

'장'은 단과대학을 대표하여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고 '말'은 뒤에서 서포트를 해주며 주로 '인사', '군수'의 역할을 한다. '쓰리'는 교육담당으로 주로 군기를 잡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단과대학내의 자치위원회를 뽑고 나면 이제 본격적인 통제가 시작된다.



단복을 입을 때는 좌측의 학교마크가 있는 베레모를 쓰고 전투복을 입을 땐 우측의 학년장이 있는 베레모를 쓴다. (학교마크는 대학교마다 다르다) 



처음 단복을 입고 등교하는 날.

뭔가 어색하면서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전날 새벽까지 광을 낸 구두에선 빛이 번쩍번쩍했다. 학군단 수업을 처음 듣는 날은 30분 먼저 집합되었다. 그리고 선배들이 들어와 군기 잡기 시작한다.  

허리를 등받이에 갖다 대는 순간 불호령이 떨어지면서 적막이 흐른다. 

그때부터 한 달 동안 단복을 입고 등하교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복을 입고 있으면 선배나 후배들이 멋있다고 해줘서 좋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얼마 가지 않는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단복은 간지 나는 옷이 아니라 족쇄였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언제 누가 지켜볼지 모르는 어항 속 금붕어가 되어 감시당하기 때문에 항상 긴장하면서 다녀야 했다. 누군가 선배를 못 알아보고 그냥 지나쳤다 하면 누군지 찾아내서 그 단과대학은 각종 통제가 들어갔다. 음주 통제, 쪽문 통제, 도서관 대기 등등 본인 때문에 동기들이 피해가 가기 때문에 모두들 긴장하면서 지냈다. 


한 학기 동안 매일 아침운동도 빼놓지 않았다. 매일 학교 한 바퀴를 뛰고 월수금 태권도, 화목은 윗몸일으키기 팔 굽혀 펴기를 하면서 지냈다. 따로 식단 조절을 안 해도 살이 쭉쭉 빠졌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이제 학군단 수업이 없는 날엔 사복을 입어도 됐다. 하지만 사복에도 통제가 있다. 모자, 슬리퍼, 반바지를 입으면 안 되고 항상 백팩을 메고 다녀야 했다. 선배들을 못 보고 경례를 안 하면 통제가 늘어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선배들은 후배들의 얼굴을 몰라도 행색을 보고 어느 정도 후배임을 알지만 우리는 선배의 얼굴을 모르면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머리 짧고 나를 쳐다본다 싶으면 무조건 경례하라고 가르친다. 만약 그 사람이 선배가 아니라도 괜히 경례 안 했다가 통제받는 것보다 잠깐 쪽팔리고 마는 게 나으니까 말이다. 

음주를 할 경우에도 보고를 하고 해야 하지만 대학생들이 음주하는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 매번 보고하기가 꺼려졌다. 그래서 몰래 음주를 하다 걸리면 또 통제가 늘어나곤 했다. 


그렇게 1학기를 버티면 하계훈련이 기다린다. 하계훈련은 처음 받은 훈련보다 기간도 길고 훈련도 더 힘들다. 정말 무더운 7월, 8월에 입교하여 전투복에 하얀 자국이 생길 정도로 땀을 흘린다. (땀에 젖었다가 옷이 마르면 하얀 선 같은 자국이 남는다) 우리는 짧은 시간 동안 정해진 교육과정을 다 수료해야 하기 때문에 무덥다고 훈련의 강도는 낮출 수는 있어도 안 하는 법은 없다. 가끔은 너무 덥고 힘들어서 진짜 누구 한 명 쓰러져서 훈련이 중단됐으면 좋겠다는 말도 나오곤 한다. 하계훈련부터는 처음 훈련과 다르게 학교별로 훈련을 받는 게 아니라 여러 학교들이 섞여서 훈련을 받는다. 학교 내에서 2개의 기수로 나누어 입영하게 되고 생활관 역시 여러 학교 학생들이 섞여서 사용한다. 그래서 가끔 이곳에서 만난 인연을 이어가기도 한다. 


하게 훈련을 마치고 나면 얼마 남지 않은 짧은 방학을 즐기고 다시 학교로 간다. 2학기부터는 선배들의 통제가 확연히 줄어든다. 단과대학마다 통제가 풀리는 것은 제각각이지만 확실한 건 쓸데없이 군기 잡는 게 많이 없어진다. 복장이나 음주가 자유로워지고 선배들 얼굴도 어느 정도 익혀 모르는 사람한테 경례하는 일도 없어진다. 

선배들과도 친해져서 선배 앞에서 각 잡고 있는 일이 거의 없고 웬만한 실수들은 그냥 웃으면서 넘어간다. 

가끔 기강이 해이하다 싶으면 대대장 후보생쯤 되는 선배가 단체로 집합해놓고 쓴소리 하는 정도가 전부다. 


입영훈련 전에 대학총장에게 신고를 하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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