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회사에서 인사업무를 하는 여직원이 행정처리를 하면서 남직원들의 군번을 물어본 적이 있다. 남직원들은 전역을 한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묻는 즉시 그 자리에서 답해줬고 이를 본 여직원이 '그것을 어떻게 아직도 기억하냐'라고 물었다.
군대를 전역한 남자들의 대다수가 몇 년이 지나도 자신의 군번을 기억한다. 그도 그럴 것이 군번이라는 것은 자신의 또 다른 이름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처음 군대에 가면 누구나 군번과 함께 군번줄을 받게 된다. 처음엔 입대한 년도가 들어가고 그다음엔 병, 부사관, 장교에 따라 각기 다른 규칙으로 부여된다. 그리고 이 번호는 군 생활하는 내내 따라다닌다. 어떠한 것을 하던 이름 다음에는 군번을 명시해야 했다. 거의 주민등록번호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군번줄은 쇠붙이로 투박하게 만들어진 겉모습을 봤을 때 별거 아닌 거 같지만 굉장히 중요한 물건이다. 군 기강 확립에 대한 점검을 할 때 항상 나오는 것이 군번줄 착용 여부이다. 군번줄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게 하는 이유가 사망 시 피아를 식별하기 위함이다. 전시에 사망을 하면 그 사망자의 시신이 온전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또한 온전하다 해도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남아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지금이야 유전자 검식으로 신원을 밝히기야 하겠지만 전시에 과연 그 많은 사람들의 유전자를 감식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또한 군번줄에는 혈액형이 명시되어 있어 수혈이 필요할 경우 혈액형 검사 없이 바로 수혈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대비해서 군번줄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군번줄이라는 게 사실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 이유는 군번줄을 벗을 일이 많고 다시 착용해야 한다는 것을 쉽게 까먹게 된다. 일단 샤워를 하면 상의를 벗으면서 군번줄이 몸에 닿게 된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 쇠의 차가움이 몸에 닿는다는 게 굉장히 신경 쓰이는 일이다. 특히 겨울철에는 그 차가움에 더 민감해진다. 따라서 샤워를 할 때 벗게 되고 사복을 입을 경우에도 목에 있는 군번줄이 훤히 드러나서 착용이 꺼려진다. 그렇게 벗었던 군번줄을 다시 착용하는 것을 까먹고 생활할 때가 많다. 몸에서 안 떼어내면 그만인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보통 주민등록번호가 하나이듯 군번도 하나인데 가끔 군번이 여러 개 있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입대할 때 병, 부사관, 장교에 따라 각기 다른 규칙으로 부여되다 보니 병에서 부사관이나 장교, 부사관에서 장교, 장교에서 부사관으로 복무 전환을 하면 군번이 새로 부여되게 된다.
병에서 부사관으로 가는 경우는 많이 볼 수 있다. 제대 후 전문하사를 지원하거나 유급지원병으로 입대하는 경우, 혹은 병 생활하다가 단기하사로 지원하는 경우는 흔하다.
병에서 장교로 가는 경우는 병사 전역하고 ROTC나 3 사관학교로 입교하는 경우나 병 복무 중에 간부사관학교로 지원하는 경우가 있다. 후자의 경우는 그래도 흔한 편이지만 전자의 경우는 정말 흔치 않다. 병역의무를 다 이행하고도 다시 군대로 들어가서 직업군인을 하겠다는 것은 정말 직업군인에 대한 의지가 강한 것이다.
부사관에서 장교로 가는 경우는 마찬가지로 부사관 복무 중에 간부사관으로 지원하는 경우이다.
마지막으로 장교에서 부사관으로 가는 경우인데 보통 장교로 전역하고 부사관으로 재입대를 하는 것이다. 장교로 전역하고 부사관으로 재입대를 하면 중사부터 시작하는데 장교로 장기복무를 실패하거나 군대에는 있고 싶지만 장교로 복무하는 것이 체질에 안 맞을 경우 이런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복무 전환이 가능하다 보니 군번이 3개인 사람도 봤다.
(병에서 단기하사로 복무 전환하고 단기하사를 하다 간부사관학교에 지원한 경우였다)
그런데 이렇게 복무 전환을 하다 보면 가끔 애매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군대가 좁다 보니 가끔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상급자였던 사람이 하급자가 되기도 하고 하급자였던 사람이 상급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내 동기의 경우 ROTC 전역 후 준사관으로 재입대했는데 같은 학교 1년 후배랑 만나게 된 것이다. 동기는 당연히 1년 후배가 상급자이니 경례를 했지만 경례를 받는 후배 입장에선 굉장히 곤란해했다고 한다.
살다 보면 갑과 을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