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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May 14. 2019

그때 정말 전쟁이 나는 줄 알았다

2015년 8월 4일 비무장지대 아군 추진 철책 통로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부사관 2명이 북한군의 목함지뢰를 밟고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의 소행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자신들이 아니라고 우겨댔고 이로 인해 대북제재로 대북방송을 시작하면서 남북 갈등이 고조되었다.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것에 비해 대응이 약한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었지만 예상외로 북한은 대북방송에 대해 강한 반발을 했고 심지어는 8월 20일에 우리나라를 향해 포격을 하였다. 이에 우리 역시 북한을 향해 29발의 포격을 하였고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당시 나는 OAC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포격이 일어날 당시 제동 합동훈련이라고 하여 상무대에 있는 여러 병과의 고군반 학생들이 모여 전시 상황에서 각 병과가 맡는 임무를 유기적으로 수행하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무박 3일로 진행하는 훈련이라 심신이 지쳐있었고 핸드폰도 못하는 상황이라 잠깐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가 식당 TV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고서야 상황을 알게 됐다. 

보도에 나온 내용은 거의 전쟁 직전의 분위기여서 고군반이 끝나기도 전에 자대로 투입될 것 같은 우려도 들었다. 교관들도 상황은 알고 있었고 일단 훈련은 지속되었지만 신경이 온통 그쪽으로 곤두서 있었다. 


당시 야전에 있던 동기들의 말을 들어보면 정말 자신들도 전쟁이 나는 줄 알았다고 한다. 특히 포병의 경우 이미 연평도 포격도발로 인해 즉각 대기라는 임무가 생겼고 적화력 도발에 대응하는 훈련인 "훈련 번개"가 아닌 실상황에서 주어지는 "번개"가 발령된 것이다. 실제로 대응 사격을 실시했고 그 외에도 다 설명할 순 없지만 미군의 항공기가 날아다니는 등 GOP에서는 북한군과 심리적인 대치가 있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긴장된 상황에서 대기하며 임무수행을 했다. 대기라는 것이 말이 대기지 정말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피곤한 상황에 이른다. 항시 전투복을 입고 있으며 야간에도 언제 상황이 터질지 몰라 잠을 자도 자는 것 같지가 않다. 


서부전선 포격사건으로 인해 아군에 피해는 없었고 우리 역시 일부로 북한군의 기지가 아닌 다른 곳으로 사격을 해서 서로의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들리는 바로는 우리 측에서 사격한 포탄이 북한의 부대에서 경작하고 있는 논밭에 떨어져 1년 농사를 말아먹었다는 설이 있다.) 북한은 언제 어떤 도발을 할지 모른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다행히 회담이 잘 진행되어 긴장 상태는 완화되었지만 한 번 이런 상황을 겪고 나면 그 후유증이 몇 달은 간다. 


긍정적인 부분이라면 연평도 때처럼 그때의 상황을 교훈 삼아 여러 가지 전술적인 사항들을 도출해내 전시 준비에 발전이 되기도 했다. 


그 이후 북한에서는 대북방송에 맞서는 대남방송을 시작했다. 내용은 대략 북한의 체제를 찬양하고 남한을 비방하는 내용이었는데 당연히 우리 측에선 그 방송을 듣고 코웃음을 쳤고 대남방송은 단지 대북방송의 소리를 상쇄시키는 역할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북한은 그 이후에도 지속적인 핵실험을 강행하며 여러 번의 긴장 상태를 만들었다. 


게다가 최근 평화모드였던 남북관계가 북한에서 다시 미사일 훈련을 하며 긴장상태로 돌입하고 있는 상황을 보며 북한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또다시 그런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 

우리는 가짜 평화가 아닌 진짜 평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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