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장의 병영일기
포대장(중대장)을 달고 가장 좋았던 점은 나 혼자 쓰는 사무실이 생겼다는 점이다.
동원사단에 있을 때는 사무실이 적기 때문에 사무실을 혼자 쓰는 것은 연대 정작과장급 이상이었는데 상비사단에서는 포대장도 개인 사무실이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신상 관리할 병력이 워낙 많다 보니 면담 같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독립된 공간이 필요했다.
부임하고 부대원들의 생활지도 기록부를 보고 대략적인 성향을 파악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한 명씩 포대장실로 불러서 면담을 진행했다. 물론 대단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이야기를 조금 나누면서 대략적인 성향을 파악하려는 것이다. 부대원들 입장에선 귀찮은 일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내 의무를 안 할 수 없었다.
그중 우선적으로 확인하는 게 사랑과 도움이 필요한 용사들이었다. 인수인계받기로는 조금 특이한 친구들이 있긴 한데 크게 위험한 인물은 없다고 했지만 눈으로 직접 확인이 필요했다. 그렇게 조금씩 부대원들을 알아가고 있는 도중 신병이 들어왔다.
많은 신병들이 들어오지만 첫 신병은 유독 기억이 남는다.
인사장교 시절 처음으로 받았던 신병은 똘똘한 녀석이라서 기억에 많이 남았다 그 친구는 나중에 전문하사로 임관하고 현시점까지 직업군인으로 근무를 하고 있다.
포대장으로 부임하고 처음 들어온 신병도 다른 의미에서 기억에 많이 남는 친구였다. 이 친구와 얽힌 사건을 쓰다 보면 스크롤 압박이 걱정되어 하나씩 풀어가도록 하겠다. 가장 첫 번째 이야기는 그 친구의 심장의 관한 이야기다.
처음 그 친구는 '포수' 주특기를 받고 들어왔다. 포대에서 용사들의 주특기는 포대장 재량으로 바꿀 수 있지만 그렇게 될 경우 나중에 주특기 재분류 신청을 사단에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주특기 그대로 가려고 한다. 하지만 이 친구는 그럴 수 없었다.
포수라 하면 상황이 걸리면 포상까지 빠르게 뛰어가야 하고 40kg 하는 포탄도 날라야 하는데 이 친구는 체력이 너무 약했다. 아니 약한 정도가 아니라 심장에 질환이 있다고 했다.
상식적으로 심장에 질환이 있으면 어떻게 군대에 들어오나 싶었는데 정식으로 진단받은 게 아니라 질환으로 의심된다는 수준의 진단만 받은 상황이었다. 정밀 진단을 받고 그 진단서를 병무청에 제출하지 않았기에 현역 판정을 받은 것이다.
솔직히 지휘관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상황이다.
사회에 있을 때 진작 본인이 진단받고 신체검사를 받았으면 될 것을 군대에서 간부들이 해줘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한 심장검사 같은 것은 가까운 군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닌 성남에 있는 수도통합병원으로 가야 한다. 예약 일정을 잡는 것도 까다롭고 간부가 동행해야 하기 때문에 부대 일정도 조율해야 했기에 당장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고 뜀걸음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해서 당분간 지켜보기로 했다.
심장이 안 좋다고 해서 포수 임무를 하는 것에 대해 걱정이 있어서 다른 보직을 제안했으나 일단 해보겠다는 그 친구의 말에 포반 분대장에게 인지를 시켜두고 포반에 투입했다. 그리고 2주쯤 지나자 포반 분대장이 나를 찾아왔다. 그 친구의 문제는 심장이 아니었다. 근력이 떨어져 혼자서 포탄을 들지 못하다 보니 안 그래도 인원이 적은데 걔까지 챙겨주느라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보직을 옮겨야 했다. 포병에서 그나마 몸을 안 쓰는 보직은 사격지휘병과 행정병인데 행정병 보직은 이미 차 있어 사격지휘병으로 옮겼다. 사격지휘병은 아군의 위치에서 적의 위치까지 포탄 사격을 하는데 필요한 제원들을 계산하는 것인데 몸보다 머리를 쓰는 보직이다. 하지만 사격지휘병 생활도 순탄치 않아 보였다.
보직 이동 한지 다시 3주쯤 지나서 이번에는 사격지휘 분대장이 찾아와 한탄을 했다. 가르쳐준 것을 까먹는 건 둘째치고 열심히 하려는 의지가 안 보인다고 했다. 더 이상 갈 보직이 없었기에 아직 전입 온 지 얼마 안 됐으니 좀 더 차근히 가르쳐보자고 다독였다. 그리고 정 안 되겠으면 전포대장에게 맡기라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임무수행이 안되면 나머지 부대 생활도 순탄치 않다는 것이다. 이미 많은 선임들이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불러서 부대 적응 상태를 확인할 겸 면담이 필요해 보였다. 처음엔 '좀 지내보니 어떠냐', '보직변경했는데 할만하냐'에서부터 딴 이야기를 하다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요즘 선임들한테 들리는 이야기가 많은데 무슨 일 있어?"
그 친구는 고개를 잠시 떨구더니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심장이 약하다 보니까......"
그 뒤 이야기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대략적으로 선임들이 안 좋게 보고 있다는 것은 본인도 느끼고 있었단 그 이유가 심장이 안 좋아서 활동을 할 때 많이 열외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게 문제가 지속되는 경우, 정확히 자신이 어떤 게 문제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 친구가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말을 안 할 수 없었다. 그대로 두면 다른 친구들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서 좋게 타일렀다. 이등병에게 너무 세게 나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 친구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사이 애초 예정되어있던 병원 진료는 부대 사정으로 인해 점차 밀려나고 있었다. 조율하고 조율하다 어느새 일병이 되었고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결국 내 휴가에 맞춰서 그 친구를 외출시키는 방법으로 병원 진료를 갔다. 동서울터미널까지 온 그 친구를 픽업해서 점심을 사 먹이고 성남에 있는 수도통합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도착해서 검사를 하는 동안 밖에서 기다렸다. 검사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진단서도 바로 그 자리에서 받았다. 진단 결과는 걱정했던 것과 달리 남들보다 심장의 피로를 잘 느끼는 편이지만 크게 문제가 없다였다. 오히려 운동을 꾸준히 하면 괜찮아진다는 것이었다. 이제 이 친구가 심장 때문에 군생활에 어려움이 있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앞으로 운동을 꾸준하게 시키겠다는 하니 쓴웃음을 지었다.
그 후로 그 친구는 더 이상 심장이 약해서 무언가를 못 하겠다는 소리를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대신 상병 때쯤 나를 찾아와 자신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사람들이 안 좋게 본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아무래도 그때 타이를게좀 많이 혼냈어야 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