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못다 핀 꽃 아르헨티나에서 천본앵
아르헨티나 말벡의 부활
니콜라 카테나의 아버지 도밍고 카테나는 1985년 세상을 뜨기 전까지 말벡의 우수성과 잠재력을 강조했다. 니콜라 카테나는 훗날 인터뷰에서 말벡으로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아버지를 만족시키기 위함이었지, 다른 이유는 없었다고 고백하기도.
시작의 배경이 어찌 되었든, 니콜라 카테나는 말벡으로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1989년부터 10년동안 니콜라 카테나의 와인 컨설턴트로 일했던 폴 홉스(Paul Hobbs)는 1992년에 새로운 프렌치 오크 배럴 10개로 말벡 100% 레드 와인을 만들었고, 여기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1992년, 폴 홉스와 니콜라의 아내 엘레나(Elena)는 수퍼 투스칸 와인의 성공을 아르헨티나에서 실현하기 위해 이탈리아 토스카나로 떠났다. 그곳에서 산지오베제 권위자이자 와인 메이커인 아틸리오 팔리(Attilio Pagli)와 안면을 트고, 결국 1993년 정식 계약을 통해 팔리를 아르헨티나로 데려왔다. 팔리와 홉스의 목표는 아르헨티나에서 산지오베제를 성공시키는 것이었다.
여기서 아틸리오 팔리는 누구인가? 그는 전설 계보의 후계자인데, 그의 스승이 바로 줄리오 감벨리(giulio Gambelli), 그리고 줄리오 감벨리의 스승이 바로 신화급 인물인 비온디 산티(Biondi Santi)이다.
야심차게 멘도사에 도착한 팔리. 그러나 그는 일찌감치 아르헨티나 산지오베제의 가능성을 포기했다. 토양, 기후, 토포그래피 등 모든 것이 토스카나와 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계약을 철회할 수는 없던 터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니콜라는 팔리에게 아르헨티나의 다른 희망을 찾아달라 요청했다. 그러던 어느날, 폴 홉스와 팔리는 멘도사 마이푸 밸리의 룬룬타 IG에 위치한 카테나 소유의 안젤리카 포도밭을 거닐던 중 아르헨티나의 희망을 보게 된다. 도밍고 카테나 때부터 열매를 맺어왔던 올드 바인 말벡을 발견한 것이다.
“바로 이거다!”
말벡과 첫눈에 사랑에 빠진 팔리는 니콜라 카테나, 엘레나, 폴 홉스에게 말벡이야말로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와인이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당황스럽게도, 당시에 팔리를 제외한 세 명 모두 팔리의 안목이 잘못되었다 지적했다고 한다.
니콜라 카테나는 토스카나 장인의 눈에서 불타는 확신을 보았던 것일까? 그는 팔리의 모든 실험을 전적으로 지원해주었다. 당시 아르헨티나 와인 업계에서는 파커 포인트 획득에 유리한 스타일이 유행이었다. 여기에는 미셸 롤랑도 한 몫 크게 거들었다. 이러한 흐름이 싫었던 팔리는 크게 세 가지 방법을 적용해 본인의 말벡을 차별화하였다.
첫째, 높은 산도를 유지하고 포도의 과숙을 방지하기 위해 평년보다 일찍 수확했다. 둘째, 압착 과정에서 수분을 많이 함유한 첫 번째 과즙의 일부분을 제거하는 “블리딩” 방법을 사용했다. 그 결과 과즙 대비 껍질의 접촉 면적이 넓어졌고, 더 많은 색과 타닌이 빠져나온 것은 물론, 풍미 또한 강해졌다. 셋째, 엄청나게 디테일한 블렌딩으로 무결점에 가까운 완성도를 추구했다. 일례로 그는 소수점 한자리까지 정확하게 블렌딩 비율을 계산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룬룬타 빈야드 말벡 1994는 카테나 와이너리에서 최초로 미국에 수출한 말벡 와인이다. 미 대륙 상륙과 함께 로버트 파커 주니어의 극찬이 이어졌다. 이는 곧 수출과 내수 시장 모두에서의 성공을 의미했다.
아르헨티나 말벡의 전성기
니콜라 카테나는 말벡 100% 레드 와인을 1996년 빈티지부터 “카테나 알타”(Catena Alta)라는 이름으로 미국 시장에 선보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와인 스펙테이터 92점, 파커 포인트 94점을 시작으로 평론가들의 호평이 쏟아졌다.
카테나의 성공에 힘입어 멘도사의 다른 와이너리들도 말벡을 심기 시작했다. 하지만 카베르네 소비뇽과 샤르도네와는 달리, 말벡의 클론 분석은 전무한 상황이었다. 어떤 클론이 질병에 강하고 추위에 강한지, 과실 풍미는 어떤 클론이 강한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막막함을 뒤로 한 채 카테나의 포도재배 팀은 룬룬타 IG의 안젤리카 빈야드 195에이커의 올드 바인(Old vine) 말벡을 대상으로 클론 분류에 착수했다. 수확 시즌에 포도밭을 오가며 가장 잘 익은 포도 100송이를 선별하여 이 중 20송이를 국립농업기술센터(INTA)에 보내고, 15송이는 멘도사 농업대학교 연구실로 보내 클론 분류를 실시했다. 나머지 포도송이는 루한 드 쿠요에 위치한 아그렐로 IG의 “라 피라미드”(La Piramide) 빈야드에 심었다.
새로운 포도가 열리기까지 2년이 걸렸다. 포도재배 팀은 포도의 당도, 산도, 포도 껍질의 색깔을 기준으로 포도를 선별했고, 선별된 포도를 각기 다른 토양과 고도에 다시 심어 어떤 환경 조건이 가장 적합한지 지형 선별을 시행했다. 참으로 지난한 작업이었다. 그로부터 5년 후, 멘도사의 말벡은 과거와는 다른 품질로 재탄생했다.
니콜라 카테나는 처음부터 말벡을 신봉한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말벡의 가능성을 아르헨티나의 환경에 최적화시킨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말벡은 2019년 12월 기준, 아르헨티나 전체 포도밭 면적의 22.4%를, 적포도의 38.6%를 차지한다. 전체 면적은 109,686 acres로 2010년 70,000 acres에서 50% 이상 넓어졌다. 프랑스 보르도가 고향인 말벡이, 이탈리아인의 안목으로, 아르헨티나에서 부활했다. 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