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을 잘 부탁해
제주에 매년 왔지만 눈이 온 건 처음이었다.
항상 올 때마다 이고 지고 온 두꺼운 외투와 기모가 장착된 옷가지들을 보며 후회와 한숨으로 여행 내내 옷가지와 씨름이었다.
이번 여행길에는 얇은 티셔츠 여러 개와 봄 재킷을 들고 왔는데 4일은 따뜻했고 나머지 3일은 많이 추웠다.
눈이 오던 1/2(목)에는 바람이 너무 매서워 눈발이 내리 던 중에 얼어서 눈을 맞으면 우박처럼 아프기도 했다.
혼자 하는 여행의 장점이자 단점은 스스로 의지가 아니면 숙소 밖을 나올 일이 없다는 것이다.
숙소 밖을 나오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날이 추워서. 또 날이 따뜻해서, 배가 고파서 혹은 고프지 않아서
가방에 책이 있어서 혹은 책이 없어서 그리고 이불속이 너무 따뜻해서 그리고 핫팩이 있어서
그러나 그 모든 변명과 핑계를 이기는 단하나는 이곳이 제주고 저 멀리 성산 일출봉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나마 따듯했던 4일간 국립제주박물관을 다녀왔고, 제주성산일출도서관에서 캘리그래피 연습도 했다.
사실 캘리그래피는 1년 전에 붓을 샀고 2년 전 책을 구입했다.
집에서는 붙잡는 게 그렇게 안 됐는데 이유가 있었다. 붓을 잡은 지 30분 만에 잠들어 버렸다.
책을 읽다 잠든 적은 있어도 글씨 쓰다 잠들긴 처음이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 글씨도 감성이란 걸 알았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직장동료가 알려준 식당에도 다녀왔다.
전복맛집이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가성비가 좋은 가게였다.
전복 돌솥밥을 먹을까 했는데 전복 내장이 먹고 싶어 전복죽을 주문했다. 그러고 선도 왠지 아쉬워 고등어구이를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고등어 구이가 저렴하고 맛있어서 만족했다. 거기다 창밖 풍경까지 취향저격이라 바닷바람 맞으며 걸어온 걸 보상받은 느낌이었다.
또 다른 동료의 부탁으로 동문시장도 다녀왔는데 동료가 부탁한 흑돼지 소시지가 단종돼서 그냥 시장만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제주는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가 온다. 배차 간격이 빨라야 30분 간격이다.
수도권이 아닌 이상 대부분 대중교통 시간이 그렇다.
그렇다고 굳이 차량을 렌트하고 싶진 않았다.
내가 차량을 렌트할 만큼 관광지를 휩쓸고 다닐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족이나 친구랑 여행을 온 게 아니라 내 의지로도 충분히 여행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돼서 렌트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날이 추웠던 지난 3일간은 정말….. 렌트를 하는 것도 괜찮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바람은 너무 차가웠고, 서울처럼 버스 정류장에 바람막이가 있지 않아서 아무리 움츠려 들어도 들이닥치는 바람을 피할 재간이 없었다.
다행히 서울 오는 날은 덜 추워서 옷을 조금 얇게 입어도 괜찮았다. 공항 온도가 좋기도 했고
이번 여행에서는 음악보다는 유튜브 시사방송이나 인문학 방송, 책 소개 방송을 주로 찾아들었다.
혼자 있다 보니 사람의 말소리가 고팠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내가 지난 1년간 책을 너무 읽지 않았던 게 생각이 났다.
올해는 한 달에 한 권이라도 꾸준히 읽어 볼 생각이다.
내 인생에 내가 지치지 전에
내 일상에 내가 스스로 소멸되기 전에
스스로를 살리고 살기 위해 뭐든 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