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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침 Aug 25. 2024

스피커와 이어폰

- 음악의 소비

ⓒ 스침

# 변검 

- 한눈을 팔았다. 설명하자면, 양각의 도드라짐이 아닌 음각의 돋보임이었다. 키도 작은 축에 들었고, 화려한 계열의 미모도 아니다. 그런데 왜? 좋고 싫음은 감정의 영역이어서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으니, 스스로조차 설득할 수 없다. 필름 두 롤을 현상소에 맡기고 오래간만에 술잔을 앞에 두고 마주한, 아들 내외에게 고백했다. “다섯 중에 누굴 것 같아?” ‘엔터’와 ‘미디어’ 업계에 종사하는 둘은 오답을 냈고, 나의 답을 듣곤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 오답을 끌어낸 출제자는 의기양양하게 장광설을 쏟아냈다. 그날 내 주책을 요약하자면, "춤의 그루브가 뛰어나다. 박자를 쪼개거나, 밀고 당겨 쌓아 가는 과정을 견고하게 수행한다. 압권은 난도 높은 몸짓이 아니라 절묘한 표정에 있다. 마치 경극의 변검술처럼 소년의 장난기와 소녀의 수줍음을 표정에 갈아 끼운다." 자못 흥미로워하던 며느리와 아들의 표정이 변검 될 때쯤 눈치껏 스스로의 말꼬리를 잘랐다. 못내 아쉬웠던 난 귀갓길, 유튜브로 뉴진스의 <how sweet> 속 '하니'를 보고 또 봤다, 질리지 않았다.

ⓒ 스침



# 소환 

- 나의 안목은 곧 대중적으로 입증됐다. 일본 팬미팅 공연에서 그는 솔로곡으로 1980년 발매된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를 커버했고, 반향은 폭발적이었다. 청순미를 극대화한 마린룩에 어울리는 단발, 안무까지 완벽한 기획에 연출이었다. 그런데 정작 잔상이 오래 남은 건 하니가 아니라 객석에서 열광한 일본의 ‘오타쿠 예술가’ 62년생 무라카미 다카시였다. 


- 그가 새파랐던 시절, 80년대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미래가 푸른 산호초가 끝없이 펼쳐진 태평양일 거라 믿었다. 한 세대만에 패전의 멍에를 벗고, 무기 대신 경제로 대국이 될 거라 확신했으니까. 그들은 모름지기 비로소 메이지 유신이 완성된다고 환호했으리라. 하니의 무대는 일본 역사상 가장 완벽했던 리즈 시절의 소환이자, K-POP 이전에 J-POP이 있었음을 환기시키는 적절한 위로였다.




ⓒ 스침


# 상처

- 뒤늦게 알았는데 '팜 하니'는 베트남계 호주인이란다. 베트남에 대한 내 기억은 지극히 작은 파편들과 다른 층위로 저장돼 있다. 할리우드 영화 속 잔인한 베트콩, 한반도에서 파견된 외교관들과 한자(漢字)로 수담을 했던 민족, 삼성전자의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 노동현장, 뭐 그런 것들이다. 군 시절, 월남전 참전 경력을 가진 작전과 상사에게 물었다, 매 순간 용맹하고 명예로웠느냐고. 그는 자신은 사람을 바라보며 총을 쏜 적이 없다고 했다. 논두렁에 머리를 처박아 총구는 늘 하늘이었고, 그래서 한 명도 죽이지 않았을 거라며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었다. 


- 나는 내심, 블랙핑크 리사가 모국 태국에서 그렇듯 동남아 K-POP의 주요 시장인 베트남에서 하니가 크게 환영받을 거라 생각했다. 뉴스를 보니, 아니란다. 베트남에서는 '보트피플'로 상징되는 이민자를 공산체제를 거부한 세력으로 백안시한단다. 그들의 후손을 유명 아이돌이라 해도 그다지 반기지 않는 모양이다. 베트남을 등진 후손이 베트남과 교전했던 한국에서 인큐베이팅되어 성공했으나 고국에서는 달갑지 않아 한다니, 역설의 연속이다.


# 고급 聽者

- 악기라곤 트라이앵글, 캐스터네츠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딱히 가창력도 없는 난 ‘청자’로서의 역할만 수행한다. 아주 일찍 작고한 선배는 글을 잘 다뤘다. 잡지 편집장이었던 그의 남의 글 다듬는 재주는 탁월했다. 그리 많은 곳을 손대지 않은 것 같은데, 허섭한 원고는 군더더기와 허세가 삭제되고 정갈해지곤 했다. 그 솜씨에 반해, 휴지통에서 그의 초고를 주워다가 서체까지 흉내 내 필사하곤 했다, 그가 즐겨 쓰던 수성펜을 구해서. 그런데 정작 그는 글쓰기를 꺼렸다. 내로라하는 문예지에서 등단을 권유했지만 자신은 창작자의 혈통이 아니라고 했다. 문학평론을 하라는 권유엔 “적자가 아닌 것도 억울한데, 마름으로 살며 원통하란 거냐”며 토라지곤 했다. 한글세대였지만 한자에 능통했던 그는 “영어를 못하니 한자라도 해야지”라며, “난 고급한 독자로 살 거야”라며 술잔을 기울였다. 내가 아는 가장 고급한 독자였으나 독자로 오래 살진 못했다. 그는 가장 배가 잘 맞았던 선배였고, 술친구였으며, 형이었다. 고의로 슬퍼지고 싶을 때면 그를 떠올린다.


# 칵테일

- 명동 같은 번화가를 걷다 별안간 음악이 사라진 걸 느꼈고, 그 이유가 저작권 때문이란 걸 알았다. 80년대 종로통에선 상점 스피커가 아니라 ‘구루마’에서 대놓고 불법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틀곤 했다. 빌보드 차트에 빗대, ‘길보드 차트’가 있었고 나이트클럽 DJ차트가 따로 집계되던 시절이었다. 그렇다고 지금은 '길 위의 음악'이 사라졌다고 말할 순 없다. 다른 노래가 중첩되다가 다시 멀어지는 상점들의 스피커 음악은 사라졌지만 저마다 헤드셋과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활보하고 있지 않은가. 소수의 스피커를 보다 다수의 이어폰이 대체하고 있는 형국이다. 디바이스의 변화는 창법에도 변화를 준 모양이다. 샤우팅 대신 속삭이듯 읊조리는 창법으로도 얼마든지 대중성을 얻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음악은 광장이 아닌 인간의 귓속 작은 동굴로 공간이 옮겨왔다. 공유되던 소리가 개별의 영역으로 넘어가, 다양해지고 은닉되었다. 연인의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 어떤 음악이 소비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런 세상이다.  

    

- 연인 대신 카메라와 동행하는 나의 산보엔 이어폰이 필수다. 선곡에 따라 주목하는 피사체가 바뀌고, 색감에도 차이가 생기며, 구도도 달라진다. 장소와 날씨, 감정선에 따라 재즈와 블루스와 클래식과 뽕짝까지 선택지는 넓다. 오늘도 조경수의 <아니야>와 빌리 아일리시의 <bad guy>, 쳇 베이커의 <I fall in love too easily>를 듣는다. 그러니까 사진은 소리가 적절한 비율로 섞인 '칵테일'이다.  

ⓒ 스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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