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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침 Aug 12. 2024

근육

ⓒ 스침

# 부러움

- 어려서는 수줍었다 치고, 늙어서도 도통 가게에 들러 빈 손으로 나오질 못한다. 그런 내가 최근 유일하게, 살 물건도 의사도 없이 드나드는 점포가 생겼다. 집 앞 대형 공구점이다. 나사못에서부터 쓰임새를 알지 못하는 신기한 각종 전동공구까지, 별천지다. 구매 의지가 없는 이유는 간단 명확하다. 일머리는커녕 기계치라서다. 남들은 뚝딱일 못질이든 형광등 교체든 내겐 난제다. 심지어 피를 보고, 이내 포기한다. 몸 쓰는 일에 나 같은 반편이가 또 있을까, 자괴감이 들 정도다.   


- 사람 불러 집 수전을 바꿔 달거나, 공사장을 지나다 기능공들의 정교한 손짓과 몸짓을 보면 이내 주눅이 든다. 지독한 결핍의 결과다. 그래서 나는 쇠질(?)로 만든 몸짱을 추앙하지 않는다. 바람만 들어 공갈빵이라 부르던 중국식 호떡 같은 근육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내 숭배의 대상은 오직 노동의 근육이다. 뻐김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밥을 위한 근육, 작업량을 채워야 비로소 멈춰지는 '일 근육'을 동경한다. 한 번도 가지지 못한 그 정직한 단백질의 뭉침을 질투한다. 물론 더 부러운 대상이 있긴 하다.


- 밥상을 차리기 위해 살육을 하지 않고, 볕과 물만으로 근육을 만드는 식물보다 부러운 건 없다. 면보다 선에 수렴하는 그들의 근육에 종종 살갗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내심 그렇다. 환생이 허락된다면, 결단코 자의의 움직임을 버린 식물이고 싶다.       

ⓒ 스침

# 체념

- 노동의 근육을 부러워하는 내가 유독 증오하고 경계하는 근육이 있다. 욕망의 근육이다. 몸의 형태를 잡아주고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근육은 찢어지고 살이 차야 커진다. 가족의 밥상 다리를 펴기 위해 벌어지는 근육의 비명은 힘차고 아름답다. 하지만 욕망의 근육을 키우기 위한 찢어짐은 비열하고 치졸하며 폭력적이고 사악하다.


- 낯선 사람을 만나고 돌아서는 길, 마음이 들쑤셔질 때가 있다. 대개 그의 눈빛과 말투와 태도에서 욕망의 들끓음을 훔쳐봤을 때다. 욕망의 질주와 과속을 막을 도리가 없기에 맥이 풀리곤 한다. 강고한 근육을 가진 그들은 결코 체념하지 않는 속성을 지녔다. 체념은 '단념'의 뜻과 함께 '깨달음'의 뜻도 있음을 그들은 모른다.


- 해마다 더위가 기록을 경신하고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처럼 목에 메달을 건다. 올여름, 숨이 턱에 차는 더위보다 이 땅에 얼마나 더러운 욕망들이 가득한가를 확인한다. 때가 되면 반드시 더위가 물러가듯, 치부를 드러낸 욕망에도 끝이 있음은 순리다.  


- 다시 아침이 오면, 먼 길 다니느라 고단한 몸 뉘었던 까치가 맑은 목청으로 나를 깨우리라.    

ⓒ 스침


ⓒ 스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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