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한 달 살기 - 아흐레 째

추석날 온 가족 한라산 등반... 아, 진짜 할 말 많다!

by 정희라

지난밤 연착에 연착을 거듭한 남편의 비행기가 드디어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니 밤 12시네...


태풍이 예보되어 있었고, 연휴 내내 비 소식이 있어서 오늘 아침 비만 안 오면, 입산 통제만 되지 않으면, 한라산에 가기로 남편과 합의한 상태.

덕분에 눈물의 가족 상봉도, 그 간의 이야기를 나누며 회포를 풀 틈도 없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자야 했다.

12시에 도착했으니 자기에도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눈만 감았다 뜬 것 같은데 벌써 아침 6시.

아이들을 깨워 준비하고 출발하니 7시다. 성판악까지 집에서 한 시간이나 걸리니 마음이 급하다.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백록담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을 12시 30분에 통제한다. 최소한 12시 전에는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해야 한다.


어미 아비 마음만 급하지, 아이들은 아침부터 투덜투덜 별일도 아닌 일에 짜증이다.

어제 하루 종일 신나게 놀고 늦게 잤으니 피곤하고 짜증날만도 하지!!


그래도 내일부턴 날씨가 어떻게 될지 몰라 오늘 꼭 한라산을 가야 한다고 강조를 하며 간다. 아이들은 강조를 강요로 들었겠지만. ㅠ ㅠ


한라산 등산로의 들머리인 성판악에 도착해 기념사진 한 장 찍고 출발.


엄마 아빠의 밝은 표정과 아이들의 뚱한 표정이 너무 대조가 되네.

바로 이것이 오늘 산행 분위기를 압축시킨 표정 되시겠다!!


왕복 19.2km 어른 기준으로 9시간 산행.

해발 1,950m 의 한라산.

역시 남한 최고 높이의 산이구나!



남편은 툴툴대는 아이들에게 너무 무리하지 말고 갈 수 있는 만큼만 가자고,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나의 속 마음은 '늬들을 끌고 갈 수 있을 때까지는 가겠다!'였다.


다섯 식구가 오래간만에 합체하여 등산.

올라가며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고 파이팅하며 올라간다. 오~ 좋아!


성판악 코스는 경사가 완만하다고 할 것도 없을 만큼 거의 평탄한 트레킹 코스.

그 대신 지루하다 할 수 있을 정도로 겁나 길다!


게다가 6살 막내 보조에 맞추어 가니 더 천천히 가게 되고, 천천히 가니 힘도 덜 든다. 그러나 시간이 한없이 늘어난다는 거.



으쌰 으쌰 파이팅하며 올라가고 있는데

오르막에서 둘째가 쳐진다. 며칠 전 발 뒤꿈치 까진 곳이 아프고, 배가 아프단다.

남편이 먼저 올라가라고 손짓을 한다.

나와 큰애, 막내가 먼저 올라간다.


한 참을 올라와 쉬면서 사진을 찍으려고 핸드폰을 꺼내니 부재중 전화와 카톡이 와 있다.

둘째가 토할 것 같아서 못 올라가겠다는 카톡 내용.

깜짝 놀라 전화를 해 보니 작은 녀석이 받는다. 자기는 아까 헤어진 곳에서 쉬고 있고 아빠는 우리를 찾으러 올라갔다고!

아이구머니나....


통화가 끝나고 잠시 후에 남편이 올라온다.

상의 끝에 남편과 큰아들은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나와 막내는 기다리고 있는 둘째에게 내려가기로.


한 참을 올라왔으니 또 한 참을 내려간다.


초콜릿을 먹으며 기다리고 있는 둘째와 만났다. 배 아파서 토할 것 같다는 녀석이 태연하게 초콜릿을 먹고 있네!!

이제 배는 나아진 모양이네.


내려가자 했더니 이번엔 셋째가 울고불고 난리다. 올라가면서 힘내라고 정상에 올라가면 노루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던 내 말에 몹시 기대했던 모양인지 내려간다 하니 노루를 보러 꼭대기까지 올라간다고 울고불고 난리다!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 하는 진퇴양난.

내 마음은 화산 폭발 직전의 뜨거운 용암.

으~~~ 부글부글…

그런데, 쉬었더니 나아졌다며 둘째가 올라갈 수 있겠단다.


큰 녀석과 헤어질 때 간식과 물을 나누어 주고 내려왔는데 괜찮을지 좀 걱정되긴 했지만,

막내의 시달림에서 벗어나고 싶어 일단 출발한다.


진달래밭 대피소까지만 가면 컵라면과 간식을 사 먹을 수 있으니

이번엔 노루에 컵라면까지 추가되어 힘을 내서 올라간다!


그리하여

10세, 6세 소년과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올라간다. 아이고 ~~ 내 팔자야!!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산에서 온 길 되돌아 가는 건데!!! 부르르르!!!

그래도 경치가 멋있으니 다시 가는 걸로.


그 사이

남편과 큰아들이 진달래밭에 도착해서 휴식 중이라고, 잠시 후에 정상을 향해 출발한다고 연락이 왔다.


우리는 천천히 올라가면 정상에 다녀온 선발대와 진달래밭에서 만날 수 있을 거란 계산이 있었는데



오늘은 왜 이리 꼬이는지


결국

큰아들과 남편은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백록담으로 올라가던 중 아들의 발목이 아파서 중간에 포기하고 내려오고


우리는 진달래밭 대피소를 30분 남겨 둔 지점에서 하산 중인 남편과 큰아들을 만났다.


휴대폰 배터리가 없어서 연락이 잘 되지 않아서 일어난 일. ㅠ ㅠ


아오....

오늘은 뭔가 계획대로 잘 되지 않는가 보다.

엄청 기대하고 있던 한라산 등산이었는데

아쉽다!


다시 만나서 내려오는 길에 사라오름 갈래길에서 한 컷.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ㅠ ㅠ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한 큰아들이 백록담 말고, 대피소에서 내려가다가 갈 수 있는 사라오름에 올라갔다 내려간다 할 때 그 아이의 뜻을 존중해 주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시간을 더 거슬러 아침에 툴툴 대는 녀석들을 쉬게 해 주었다면 오늘은 어떤 하루였을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나는

아이들이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도 바라고


가족들이 서로 격려하며 함께 한라산 등산을 하는 시간을 통해서 잊지 못할 추억도 만들고 가족의 소중함도 느끼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구나.


그런데 바람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실망스럽고 아쉬웠구나!!



백록담을 다녀오길 바랐던 또 한 가지 이유.


열두 살 큰 아이가 넉 달 후, 돌아오는 겨울방학에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원정을 떠난다.


작년 1월부터 꾸준히 다닌 아띠 어린이 산악회에서 보름 동안의 히말라야 트레킹을 준비 중이다.


신청자들은 한 달에 두 번 있는 정기 산행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야 하는 조건이 있다.

큰 녀석이 제주에 와 있는 9월 한 달간은 산행 참석이 어려우므로 꼭 한라산 등반을 하라는 대장님의 특명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추석 연휴에 남편이 와 있을 때 '한라산 등산'을 하려고 계획했는데

하필 태풍이 온다 하니, 태풍 오기 전에 후딱 다녀오자 한 것이었다.


아쉬움은 무척 크지만

둘째와 셋째의 놀라운 지구력을 시험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진달래밭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내려왔지만, 도전했다면 분명히 올라갔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함께 하산 후 집에 돌아와

치킨, 제주 딱새우, 떡볶이로 축하 파티!!



계획했던 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6살 막내가 7시간 동안 무려 17km의 산길을 스스로의 힘으로 걷는 놀라운 능력!


까진 발이 아파도 다시 용기 내서 등산을 선택한 둘째의 저력!


아픈 발목 상태에서 자기 스스로 하산을 결정하고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다'는 멋진 말을 남긴 첫째의 결단력!


아이들을 지지하고 응원한 엄마와 아빠!!


모두에게 축하와 감사를 보낸다.



오늘 어린이들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았으므로

아빠가 없어도 오름 정도는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겠다!



오늘도 엄마는 스승님들 뫼시고

산에서 도 닦고 내려왔다.


고맙다 아들들,

늬들이 부족한 어미를 사람 만드느라 고생이 많다!






잠들기 전 큰 아들이 흔들거리는 이를 뺐다.

이럴 때 여행도 일상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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