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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라 Oct 15. 2018

군것질

제주살이 마흔이틀

제주에 와서

뜻밖의 선물이 하나 더 있었다.


그토록 오고 싶던 제주에 오니

안 먹어도 배 불렀다.



과한 것들을 비워내려 하는

제주 생활과도 잘 맞아 떨어져서

과식이나 야식은 피하고

( 친구나 모임이 별로 없으니

과식이나 야식할 기회도 별로 없었지,,, )

되도록 집밥과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며 먹었다.


입맛이 잠잠해지니

속도 편하고

일상이 조용해서 좋았다.

특별 보너스로 살도 빠졌다.

고된 다이어트를 한것도 아닌데

40일 동안 6kg정도 빠졌으니 많이 빠진거다.

꽉 끼던 옷이 여유가 생겨 보기도 좋고

몸이 가벼워 편하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부터

군것질을 찾게 된다.

군것질을 많이 해서 배가 부른데도

끼니 때가 되면 밥을 또 먹는다.

속이 쓰리다.

속도 불편하고 등도 아프다.


그래도 자꾸 주전부리에 손이 간다.

배가 부른데도 자꾸 집어 먹는다.

나의 소울푸드인 떡볶이가 땡긴다.



왜 그런가 원인을 생각해 보았다.


새로 시작한 요가가 힘들었나 싶어

오늘은 새벽 요가도 쉬어 본다.

그런데 저녁을 배불리 먹어 저녁 요가 가는 것도

 포기했다


그래도 뭘 자꾸 집어 먹고 싶은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




그렇다면

전여사님이 원인이구나!


전여사님은 우리 엄마다.

엄마가 다음 주에 제주에 방문하시고 싶으시단다.

미국에서 엄마집으로 놀러온 고등학교 동창과

함께 오고 싶으시다는 전화를

금요일에 받았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다음주 화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나는 숙박교육이 잡혀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바로 그때

엄마가 제주집에 머물기로 했다.



딸년이 제주도에 몇달씩이나 살면서 오라는 소리

한번 안한다는 엄마의 가시돋힌 목소리가

 귀에 쟁쟁해서 가끔 불편했었다.


엄마가 직접 말씀하신건 아니고

한 두번 온 엄마의 전화 내용을 토대로

내안에 있는 검열관이 각본을 써서

성우 뺨치게 연기하는 목소리 인것을 나도 안다.


내가 없을 때 왔다가면

나는 더 좋으니 잘 되었다고,

어차피 해야할 숙제가 해결 되었으니

이제 홀가분하다고 "생각" 했다.


그래서

잘되었다고,,,

제주 집에서 편히 머물다 가시라고 했다.

엄마는 신난 목소리로 박서방한테 비행기표를 알아봐 달라고 전화해야 겠다며 끊으신다.


그 이후 부터 군것질이 시작된거다.


내 입맛은 참으로 정직해서 속일 수가 없다.

뭔가 밖에서 통제 받고 있다거나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스트레스 상황이 되면

어김 없이 먹을 것에 손이 간다.

좋기도, 안좋기도 하다.


내가 요즘 먹는 것을 보면

나의 감정 상태를 알 수 있으니까 좋고.

스트레스 받아서 과식하면 건강에 좋을리가 없다.



그러니까

괜찮다고 잘되었다고 말한 것은

내 "몸"이 아니고

내 "머리"였던 것이다.

잘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그냥 내 머리의 생각일 뿐.

정직한 나의 몸은 엄마가 내집에 오는 것을

비상사태로 접수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




나는 왜,,,


엄마 오시는 것 싫어요.

오지마세요.

엄마 친구한테 자랑하려고,

엄마 체면 세우려고 저를 이용하지 마세요.

미국 구영이 아줌마네 집에 갔을 때

그집 딸들이 잘 해 주었던 것은

아줌마와 딸의 관계가 좋아서에요.

저한테 똑 같은 것을 요구하지 마세요.

저는 엄마가 싫고 불편해요.

저는 엄마가 대접 받고 싶어하는 것에 질렸어요.

엄마가 원하는 끝도 없는 돌봄은

이제 지긋지긋 하다구요.

결혼하고 10년 동안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엄마 수발 들었다구요.

저는 엄마의 엄마가 아니에요.

나는 내 새끼들 키우고 저 자신을 돌볼거에요.

아빠 없이 힘들게 길렀다고 저에게

보상 받으려 하지마세요.

기르기 싫은데 억지로 기른거에요?

엄마의 피해자 코스프레 보는 것도 짜증나고

이제는 엄마가 딱할 지경이에요.

엄마가 할머니 할아버지 잘 모신 보상을 제게 받으려고 하지 마세요.

나한테는 피해자 코스프레 하면서

다른 사람들한테는 보여지는 모습에 굉장히 신경쓰며 사는 모습, 무척 진정성 없어 보여요.

남들 눈이 중요해서 무식하게 무조건

자식편 드는거 한번도 안하고 사셨잖아요.

고상한 전선생님으로 사셨지요.

딸이 사촌동생한테 도둑맞아서 눈이 뒤집혀 있는데

엄마 내편 안들었잖아요.

저 그때 엄청 충격 받았거든요?

도둑년 앞에서 내가 따귀 맞은 것 같았거든요?

내가 바라는 엄마는

내 딸을 몇 년이나 감쪽 같이 속였으면 아무리 조카라도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머리끄댕이 잡아주는 그런 엄마거든요.

그날 엄마는 너무나도 우아하셨어요.

더이상 엄마 장단에 놀아나고 싶지 않아요.

엄마는 제스타일 아니에요.

사양하겠어요.

저한테 전화하지 마세요.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잘 되었다고

화요일에 오셔서 편히 쉬다 가시라고,,,



아이구~

등신!!!


나도 엄마 닮아 진정성 없이 우아하게

엄마를 대하나 보다.


나는 좀 더 야성적으로 살고 싶은데,,,

엄마한테는 잘 안된다.



오늘은

여기까지!!!




내 입맛은 어떻게 잠 재우나,,,

아직도 부른 내 배.

두배로 짜증나는 내 마음.


마음껏 투정 부려도

뭐든 다 받아주는 엄마가 있으면 좋겠다.

단서 달지 않고 무조건 사랑해주는 엄마가 있으면 좋겠다.

내 새끼 일에는 물불 가리지 않는 억척스러운 엄마의 사랑을 받아보고 싶다.



그런데

그런 엄마가 실제로 있어???

그런 사랑 받아 본 사람?

책에만 존재하는 엄마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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