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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라 Jan 05. 2019

어반 스케치하며 알게된 것.

제주살이 백 스무 사흘 190104

오늘 선흘리에 그림 그리러 다녀왔다.

아이들이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보고 싶다고 간곡한 부탁을 하며 엄마 서귀포 다녀오시란다. (멀리 가서 오래 있다가 들어오라는 말. TV를 오래 보고 싶다는  뜻)


그래, 방학인데 집에서

늘어지게 TV보는 맛도 있어야지.

(나도 가끔 재밌는 드라마는 식음을 전폐하고 밤을 세워가며 정주행 하지 않나!)

알았다, 엄마 놀다 3시 쯤 올게.


덩달아 나도 방학이다.


선흘리 교차로를 지나가다보면 보이는 나무.

무척 인상적인 나무라 그려보고 싶었다.


나는 잘 그리고 싶은데 진짜 잘 안그려져서 성질 나는 것이 나무. 도무지 자연스럽고 만족스럽게 그려진 적이 없다. 그래서 자꾸 손보며 덧칠을 하다보면 얼룩덜룩 탁하고 뿌연 나무가 된다.


잘 그려보겠다고 계속 노력하는 내가 가상하긴 하지만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표현하지 못 하는 것이 속상하다. 보이는 대로 표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저절로 되지 않으니 연습할 밖에!



그려놓고 보니 이상한 것 같아 과감하게 덧칠을 한다. 여전히 마음에는 들지 않는다.


비도 오락가락하고 집에갈 시간도 되어 간다.

무엇보다 이젠 뭘 더 어찌해야할 지 모르겠고,

더 손을 대서 지금보다 더 이상해질까봐 그림을 멈춘다.


(재미있는 것은 그림을 인스타에 올렸더니 친구가 어떻게 쓱쓱 그려지냐며 신기하단다. 내 보기엔 어색해 보여도, 남보기엔 암시렁 안하나 보다. 나는 열라 고민하며 그린 그림 인데 힘들단 말을 하지 않으니 겉에서 보면 쓱쓱 그리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겠다.)


그림을 완성하고 사진을 찍는데 깜짝 놀람.

잎사귀 색이 그림과 다르다.

훨씬 진한 녹색인데 나는 왜 초록으로 그렸지?

갑자기 날이 흐려 어두워지고,

사진 속 실제 나무는 더 어둡게 찍힌 것을 감안하더라도 실제 색감의 차이가 있다.


계속 눈으로 보면서 표현한 것인데,,,

<있는 그대로 관찰>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인드의 필터>를 통해 보는 '나무의 초록색'을 관념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분명히 보이는 대로 표현 한다고 초록도 다양하게 쓰고, 명암도 넣었는데도 영 다른색으로 그린.것이다.


이런 경험을 자주한다.

전체 색감은 놓치고 부분에만 집중해서 들입다 파느라 주변과 부조화를 이루기도 한다.

이렇게 진하게 그려도 되는지 마음으로 쫄아서 안전하게 연한색으로 칠하는데 생각보다 연해서 자꾸.덧칠하다가 얼룩지고 번지기도 한다. 물의 농도와 물감 사용의 미숙함 등등의 이유로 실제와 다르게 표현하는 일이 많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럴 것이다' 내 생각 속의 색으로 표현하고 마는 것이다.

사물의 각도와 색깔, 크기들도 마친가지다.



그림을 눈으로 볼 땐 모르겠는데 사진으로 찍어서 보면 부자연스러움이 드러나기도 한다. 상황에 매몰 되어서 보면 보이지 않던 것이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보면 보이는 것과 똑같다. 눈 앞의 그림도 사진으로 보면 좀 객관적으로 보이나 보다.


그럼 처음 부터 사진을 보고 그리면 되잖아.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사진을 보고 그리면 신바람과 생동감이 현저히 떨어진 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진이 선명하고 정확한 것 같아도 은근히 왜곡되고 생략된 것이 있어서 사진을 보고 그리는 것은 답답하고 재미 없다. 일단 생동감이 없어서 그리기 지루하다.



어반스케치 하면서 알게된 것들은

그림을 그릴 때도 나의 필터가 적용되고 있다는 것.

판단 평가를 내려 놓고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관찰할 것.

가끔 사진으로 찍어 내 그림을 객관적으로 보며 자연스러움과 조화로움을 체크할 것.




밤에 책 읽으러 카페에 갔다가

카페 어반스케치.


황금색 펄물감을 사니 갑자기 쓸 곳이 생긴다.

내 무의식이 이제 반짝이는 것들을 찾아내는 것이겠지.ㅋㅋ


어두운 카페에서 침침한 눈으로 펄물감을 썼더니

너무 듬뿍 칠해서 번쩍거린다.

갑자기 금이 많이 생겨 자랑하고 싶은 졸부의 그림이 되었다.ㅋㅋㅋ


아무래도 재미난 어반스케치.

그릴 곳 천지인 제주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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