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희라 Jan 21. 2019

<~해야만 한다>는 생각만 해도 지친다

제주살이 백 마흔날 190121

초등학생들 개학날.

(금요일 종업식)

꼬마들은 학교에 가고 중학생 형님은 뒹굴뒹굴 방학을 누린다. 여태도 누렸지만 조용한 집에서 더 격하게 방학을 누린다.


오전에 나도 뒹굴거리다가

중학생과 아침겸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선다.


어디 딱히 갈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책과 그림 도구를 챙겨 나온다.


집 근처 가베또롱 카페에 가본다.

창 밖으로 대섬과 올레길이 보인다.

책을 읽을까 했지만 풍경이 좋아 그림을 그린다.

(물가에 있는 집이 신비로워 보였는데 여기 올라오니 잘 보이는군!)


그런데!!!

카페 안에 먼저 들어와 자리잡고 계신 서울 말씨의 할아버지 네 분이 목청껏 이야기 하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선다. 하,,, 쉬러 나왔는데 더 피곤하다. 나갈까 하다가 창밖 풍경이 아까워서 꾹 참고 그림을 계속 그린다.


한참 후에 그분들이 나가고 나니 조용한 음악소리가 그제야 들린다. 휴,,,


조금 더 그려야 하지만 집중력도 떨어지고, 막내 데리러 갈 시간이 되서 이쯤에서 급하게 마무리.


늘 즐겁게 그렸는데,

오늘은 신경을 곤두세웠더니 피곤해서  못그리겠다.

힘들게 그린 48번째 어반스케치.



집에 돌아와

초등생들 개학한 이야기 들으며 김치전을 부쳐 먹는다. 김치전은 우리집에서 언제나 환영 받는 간식.

불 위에 프라이팬 두개 올려 놓고 연달아 부치느라 사진찍을 틈도 없었는데 막내가 찍은 사진이다.


김치전을 먹으며 티비를 본다.

정글의 법칙을 계속 이어 보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저녁이 되었다. (이어보기 무섭네,,, )

애들이 유튜브로 게임 방송과 장난감 방송을 보듯이 나는 집에서 병만족의 야생 버라이어티를 보며 대리 만족 중.


하루 종일 티비를 봤더니 머리도 무겁고 몸도 무겁다. 내일부턴 다시 새벽 요가에 나가서 몸과 마음을 리셋 해야겠다.

저녁에 아이들과 요가를 하려면 어지른 거실도 치워야 하고, 요가 하기 싫다는 아이들 추스르는 일이 고단해서 나도 은근슬쩍 넘어가는 날이 많아진다.

(아이들끼리 '요가'는 금기 단어이다. 깜빡쟁이 엄마의 기억을 각성시키면 안되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넘어가는 요가. 무거운 마음으로 저녁밥을 꾸역꾸역 먹으니 몸도 무겁다.


< 요가 해야하는데 오늘도 못했다 ㅠ ㅠ > 대신

< 오늘은 다른 방식으로 휴식을 선택한다 *^^* >

하면 좀 편할텐데, 자꾸만 마음이 조급해 져서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몸을 회복하는 것이 나에게 정말 중요하고, 회복되는 모습을 보며 안심하고 싶은가 보다.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길 안내를 잘 하고 싶은가 보다.



방학이라 아이들과 뭔가를 같이 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으니 자꾸 쳐지고 무기력해진다.

초등생과 중등생의 방학이 달라서

반쪽 짜리 방학이니 뭘 하기도 어렵다.

아이들을 집에 두고 나만 돌아다니기도 께름칙하고, 애들끼리 집에 있으면 어떤 상황이 반복될지 뻔하니 어미로서 발걸음이 떼지지가 않는다.



낮에는 각자 자유시간을 보내고 저녁밥 일찍 먹고 야간 개장하는 곳을 가볼까?


방학도 알차게 보내고

각자 자유로운 시간도 확보하는 묘책이 시급하다.

내일 아이들과 회의를 해 봐야겠다.

나는 놀고 싶다고!!




쓰고 보니

오늘은 <~해야만 한다>의 부작용으로

피곤한 하루를 보냈네.

억지로 애쓰면서 살지 않으려고 하는데도,

이렇게 열심히 놀고 있는데도

'해야만 한다'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애도 아니고 어른이면 짜증나도 참을 줄 알아야지.

커피값 아까운데 마시고 나가야지.

허송세월 하지 말고 방학을 알차게 보내야지.

방학인데 엄마가 같이 있어줘야지.

아이들 건강은 엄마 책임이야, 잘 돌봐야지.

티비 많이 보지 말고, 생산적인 일을 해야지.

나중에 원망 듣지 않으려면 엄마 노릇 잘 해야지.



아직도 엄격한 나.

어른으로, 엄마로 사느라 애쓰고 있구나.

기특하기도 짠하기도 하다.


잘하려고 그러는 건데, 혼 내지 말아야지!

오늘도 애썼어.

토닥토닥.


내일은 조금 더 자유로워지자.

기쁘게 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거야.

나는 혼자가 아니잖아.

언제든 도움 받을 수도, 기쁘게 도울 수도 있어.



지금 나는

도움과 협력이 필요하구나.

ㅠ ㅠ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 탐험 - 한림 나들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