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희라 Jan 26. 2019

1년 후엔 어떤 모습일까?

제주살이 백 마흔 나흘 190125

오늘은 미뤄둔 집안일 해치우는 날.

일요일에 대학생 조카가 친구와 함께 제주에 놀러 온단다.



핑계김에 집에 있는 이불들을 다 싸들고 빨래방에 다녀 옴. 집안 청소도 하고 철지난 옷가지를 용인 집으로 보낸다.




장보러 갔더니 생멜을 판다. 멜은 멸치다.

식당에선 멜조림도 판다. 해먹을 줄 몰라서 사지는 않았다. 무심한 일상 풍경이 이곳이 제주임을 상기시켜준다.

오늘 점심 메뉴.

회 뜨고 남은 대방어 매운탕 거리를 사서 오늘 점심은 매운탕에 도전 했건만 아이들에게 인기가 없어서 나만 완전 포식했다.

마파두부.

둘째 아들은 대방어 매운탕이 땡기지 않는다며 며칠 전 같이 장 볼 때 사달라고 해서 사온 마파두부 소스로 뚝딱 마파두부를 만들어 낸다.

오,,, 판타스틱!

맛을 보니 맛있다. 다른 아이들은 마파두부에도 시큰둥하다.


요리사 두 명이 마주 앉아 자신의 요리에 감탄하며

밥을 먹는다. 나는 매운탕, 둘째는 마파두부.

진짜 맛있다고 감탄하며 먹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진 것 같은 찜찜한 기분. 뭐지?


저녁에는 다희연에 제주 라프 별빛 축제를 보러 가려 했는데 바람이 태풍급으로 분다. 아쉽지만 오늘은 패스. 초등 어린이들도 오늘 종업식을 했으니 이제 완전히 방학이다.

뭘하고 놀까~


아이들과 함께하는 제주탐험 장소 선정.

안내 책자와 리플릿을 보며 고른다.

아이들은 항공 우주 박물관, 제주 민속 박물관, 김녕 미로 공원, 넥슨 컴퓨터 박물관, 제주 불빛 정원(애월), 세계 자동차 박물관을 골랐다.

나는 윗세오름, 본태박물관, 빛의 벙커, 우도 올레길을 골랐다. 여행하며 즐거운 시간 보내기를 바라는 어미의 바람이다.


마음 같아서는 아이들과 올레길을 싹 다 돌고 싶지만,,, 제주 6개월 살면서 아이들과 올레길을 완주했다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 제주도에서 6개월이나 살았는데 그정도 결과물은 건져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손익계산 까지. 그러나 그건 밖에서 보는 나를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싶은 내 허영심일 것이고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아니니 억지로 고집 하지는 않는다. (오랜 수련의 결과물이다!!!)


비폭력대화 덕분에 강요가 좀 줄었다. 그 결과 (우리집에선) 효율성이나 그럴듯한 결과물을 건지는 횟수도 좀 줄었다. 내가 생각했던 완성도에는 못미치는 실망스런 결과도 종종 있지만 억지로 하지 않는 삶에 슬슬 익숙해지려 노력하는 중이다.

비폭력대화를 하면서도 여보란듯이 멋드러진 모습을 주위에 보여주고 싶었던가 보다. 그것보라고 내 말이 맞지 않느냐고 말이다. 비폭력대화로 성공한 삶을 보기 좋게 전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특히 아이와의 비폭력대화는

그럴듯한 결과물을 전제하고서는 시작도 할 수 없다는 깨달음만 남았다.

빵빵하고 탱탱한 모양의 아이들에게 강요와 협박을 빼고 나니 애들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보인다. 나는 묵직한 강요와 협박을 빼고나면 자율성의 헬륨가스가 자동으로 주입되어 아이들이 자유롭게 두둥실 떠다닐 줄 알았다. 진짜로!!

 (내 눈엔 그것이 자유로 보이는 거지,,, 아이들은 바람 빠진 채로 바닥을 뒹굴며 자유를 누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끝없는 나의 판단과 평가 ㅠ ㅠ 자유도 엄마가 정해준 방식대로 누려야 한다면 그건 자유가 아니잖아.)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이제껏 나와 아이들에게

필요 이상의 좋은 결과를 위해

쓸데없이 애쓰느라

너무 많은 희생을

당연시하고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애들 바람 빠진 모습에 혀를 끌끌 차면서

지금 이순간에도 나자신에게 끊임없이 넣고 있는 강요와 협박의 펌프질을 좀 멈춰야지.



창밖에 바람소리가 슁슁쌩쌩.

오늘 집에 있길 참 잘 했네.


.

.

.

오늘 나의 마음을 적어서 1년 후 나에게 보내볼까?

느린 우체통이 어디 있더라~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서 모든 감정은 옳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