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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udio AccA Jan 11. 2021

편식 주의자의 식탁 - 굴

겨울의 진미, 굴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엄마는 뽀이안 굴 한 줌을 쓱쓱 김치에 넣어 김장 때마다 특식으로 내셨다.

물론, 언니와 나는 코를 찡그리며 도망가기 일쑤였고, 김장 때는 보쌈 고기나 먹었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얘기했지만, 우리 집에서는 가능하지 않는 얘기였다.

굴의 계절이 오면 굴은 당연히 엄마 차지였고 난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가끔씩 엄마가 해주는 굴전은 하나만 먹어보라는 엄마의 성화에 마지못해 입안에 들어왔던 유일한 굴요리였다. 20대에는 친한 언니가 굴을 엄청 좋아해서 생굴을 엄청나게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 옆에서 맛을 보다가 비릿하고 물컹한 맛 때문에 목으로 넘기지 못했다. 그 언니는 그것이 바다내음이라고 하며, 이 맛있는 것을 즐기지 못하는 나를 안타까워했다

한국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시절 석화를 만질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있었다. 새벽마다 시장에 다녀오시면서 석화 상자를 들고 오시는 셰프님 덕분이었다.

석화는 껍질째로 연한 소금물에 살포시 씻어서 접시에 담아 주로 전채 요리로 나갔다. 가끔씩 굴튀김도 요리에 있었지만 맛을 본 기억은 없는 것 같다.

이탈리아에서도 나는 토스카나 내륙에 있었기 때문에 굴을 만져볼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사실 이탈리아에서는 굴 자체가 비싼 재료라서 쉽게 만날 일은 없었다. 만약 있었다고 해도 먹어보지 않았을 것에 한 표를 던진다.

졸업 후 처음으로 식당에서 일하게 되며 외식업계에 발을 들인 지 20여 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굴요리를 딱히 해 본적은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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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렇지만,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인지라 제철 재료의 한계가 많은 겨울에는 아무래도 생선과 해산물이 넘치게 된다. 식당을 오픈하고 첫 번째 해에는 아주 가볍게 굴파스타를 선보였다. 테스트를 해줄 사람을 앉혀두고 말이다.

인기 메뉴가 된 굴파스타
그다음 해의 구운 레몬과 냉이 굴파스타

굴은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재료라는 사실을 빠르게 직감했다. 이쯤 되니 그래도 한 번쯤은 굴 맛을 봐야겠다 싶었다. 굴전을 먹었던 경험으로 익은 굴은 그래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탱글탱글한 식감과 다른 야채나 나물이 비릿한 맛을 감춰주고 있었다. 올리브 오일은 무슨 만병통치약처럼 굴에서 나온 육수와 적절히 섞여 감칠맛을 뿜어냈다.


생각보다 맛있네!
먹을 수 있겠어!

맛이 있다고 인정했지만, 이렇게 쉽게 굴복하는 것이 무언가 자존심 상한지, 처음에는 아닌 척 겉으로는 맛만 보는 척했다. 지금은 굴파스타를 혼자 후딱 끝낼 수 있는 지금의 나를 예상했다면 웃긴 일이다.

포장된 생굴을 살 때도 있고, 석화 요리도 하고 석화 그라탱, 석화 찜할 요량으로 껍질이 모두 붙은 아이를 사서 혼자 까다가 밤새 손이 저려 앓은 적도 있다.

굴의 종류도 다양해서 갯굴, 벚굴, 강굴 등등 찾아다니며 메뉴에 올리려고 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굴을 엄청 좋아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튀기면 신발도 맛있을 꺼랬나? 굴튀김은 당연히 최고의 맥주 안주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굴은 대부분 양식이다. 요새 기온 변화 탓인지 노로바이러스가 문제시되고 있다.

예전 어느 외국 프로그램에서 굴 양식장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그다지 위생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굴을 통해 ‘노로바이러스’가 걸린 사람들은 나와 또 다른 이유로 생굴이나 굴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는 경우를 보기도 했다.

수업을 할 때, 겨울철에는 석화나 굴 요리를 하게 되는데, 꽤 많은 수강생들이 석화, 즉 생굴을 먹지 못하는 이유로 '노로 바이러스'를 꼽기도 했다. 상황이 그러하니 솔직히 그 동안 나는 주변에서 굴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수업에 생굴 요리를 넣었던 것이었는데, 생굴 요리를 굳이 넣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노로 바이러스'의 위험도 걱정이 되기 시작해서 작년에는 생굴 요리인 석화는 아예 메뉴에서 없앴다.

대신 익히는 요리로만 굴을 만났다.

그런데, 나는 굴을 안 먹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거의 맛도 보지 않고 모든 굴을 수강생 입으로 보냈다.

왜? 익힌 굴은 그래도 먹을 수 있노라 생각했던 나였다.

어느 순간, 늘 나는 굴을 안 먹는 사람으로 스스로 인지해왔던 내 머릿속 기억이, 오랜만에 만난 굴을 보고 그 기억을 되살렸으리라.


'나는 굴을 좋아하지 않아'


잠깐의 굴을 맛있게 먹던 나의 모습은 내 머릿속에서 사라졌었다.

이 일은 사실 얼마 전의 일이다. 그때는 나는 계속 굴을 먹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식당을 운영할 시절, 아님 굴 철에 굴 요리를 먹던 기억이 정말 기억에서 사라지다니!


프루스트 현상 - 후각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는 일

프루스트는 인간이 가진 맛과 향이 기억에 관련 있다고 그의 소설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김치를 먹으면서 엄마를 떠올리는 아주 단순한 예를 생각하면 된다.

아마 그 순간에 나에게는 굴의 냄새와 시각적으로 석화와 비슷했던 생굴 느낌이라 생각해서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비릿했던 기억과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기억들이 내 뇌를 지배했었을지도 모른다.

굴을 먹었던 기간은 인생에서 아주 짧은 기간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수도 있다.

인간은 뇌가 기억하는 입맛에 따를 수밖에 없으므로, 나 역시 그 순간, 그 당시에는 굴을 못 먹는 몇 년 전의 나로 돌아가 있었을 것이다.

굴을 완전히 좋아한다는 기억이 뇌에 남으려면 조금 더 열심히 굴을 먹어야 할 것 같다.


날씨도 20년 만의 최고 추위란다. 조금 수온 상승의 걱정은 덜고, 굴을 먹을 수 있는 날이 아닐까 한다.

전도 좋고, 튀김도 좋겠지?

좋아하는 파스타에도 굴을 맘껏 넣어보자.


굴 싫어하는 사람도 좋아할 만한, 굴튀김  간단 대충 레시피

Recipe

석화 12~15개 , 밀가루 200g, 맥주 200g, 달걀 1개, 소금 약간, 파프리카 파우더 약간, 후추 약간

타르타르소스 - 마요네즈 100g, 유자 제스트, 다진 케이퍼 2큰술, 다진 양파 1큰술, 레몬즙 약간, 홀 그레인 머스터드 약간 (유자 소금이나 유즈 코스 같은 양념을 활용해도 좋다)


- 석화를 사용하는 이유는 굴 사이즈가 커서이며, 생굴을 이용해도 좋다.

- 분량의 반죽 재료를 넣고 잘 섞어주는데, 맥주는 차가워야 하며 거품이 생기기 때문에 살살 저어준다.

- 기본 타르타르소스에서 약간 변형을 주었다.

- 분량의 재료를 잘 섞어주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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