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크리스마스
2024년의 끝이 점점 가까워지는 추운 겨울이에요. 2주 전에 내린 올해 첫눈은 117년 만에 가장 많은 양이었다고 하죠. 내가 비로소 온 마음을 다해 꿈을 좇기 시작한 이후로 많은 것들이 변했어요. 더 자세하게는, 내가 변했다기보다 잃어버렸고 갈구해야 할 나의 본성을 되찾았고 발견한 것이지요. 특별히, 올해에 이르기까지 익숙한 관계로부터의 잦은 이별이 있었어요. 아침에 눈을 뜨고 창밖을 바라보는데 문득 떠나보낸 인연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거에 내가 맺었던 관계는 물 흐르듯 만났던 인연들이 많아요. 어쩌다 보니 가까워졌고, 이어졌어요. 아주 의식적으로 사람을 선택한 적은 없었지만, 아마 무의식적으로 이끌렸을 거예요. 예전의 나는 관계에서 강하게 요구하지도 저항하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달라진 나의 모습이 당황스러웠을 법도 해요. 특별히 거창하게 무언가를 하려 하기보다는 사람의 중심을 보고 내 마음의 중심을 지키려 노력해 왔어요. 그것을 있는 그대로 전하기 위해 애쓰고요. 그 외의 모든 힘은 나 개인의 일을 열정적으로 수행하는 데 쏟지요. 아주 사적인 일이라 여겼던 이것은 점차 더 많은 마음을 포용하며 조금씩 더 커다란 세계로 확장되어 가고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내가 이 일을 하기 위해 용기를 냈다고 표현하더군요. 그런가, 내가 용기를 낸 건가 생각해 봤어요. 사실 나는 용기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주 절실했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삶에서 붙잡을 수 있는 무언가가 간절하게 필요했거든요. 다만 지금의 내가 깨달은 사실은 이 일을 지속하는 과정의 매 순간을 넘기며 점차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내가 가려는 길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절실한 것인지를 그대들이 알아주길 바랐어요. 그동안 관계에서 각별히 바라는 것은 딱히 없었는데, 꿈을 좇으면서 원하는 바가 명확해졌어요. 또한 그 정도는 바랄 수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지요. 어쩌면 어린 아이 같은 마음이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바라던 바와는 달리, 내 진심이 계속해서 왜곡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유일하고 절실하게 매달려 있던 꿈의 안전기지가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고, 아픔 위에 또 다른 아픔이 얹혔어요. 그리고 결국 깨달았죠. 그들도 나도 서로에 대해서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구나. 처음으로 내가 사람을 보는 방식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중대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빗나간 시선으로 서로를 본 데에는 분명 헤아리지 못할 원인과 이유들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더 이상은 나의 결핍이나 상처, 관계에 대해 스스로 내린 규정과 드높은 이상 속에 상대방을 가두고 싶지 않아요. 그건 나를 바라보는 상대방 역시 마찬가지여야 하고요. 그렇기에 우리의 이별이 찾아온 거예요. 그건 생각보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지도 몰라요. 가을의 끝자락에 이르러 나뭇가지의 마른 잎사귀들이 제 역할을 다하고 떨어지듯이 자연스러운 일인 거예요. 하지만 이별은 선택이어야 해요. 나와 상대의 근원, 맥락과 개별성에 대한 이해의 토대 위에 세워진, 우리 모두의 행복을 바라는 진심 어린 선택. 낙엽이 되기 위해서는 계절과 날씨의 변화만이 아니라 잎사귀들의 결연한 의지도 필요한 게 아닐까요. 인연이 되면 반드시 언젠가는 이별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진리이긴 해도 이별을 생각하면서 관계를 맺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우리가 일생의 한 부분을 함께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떠나보낸 모든 인연과 끝이 아름답거나 유쾌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어떤 지점에서 그대들은 불완전한 나였고 나는 상처 많은 그대들이었어요.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었죠.
내가 더 깊게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예전의 모습에 비해 너무 까다롭게 구는 걸까, 시간을 충분히 들여 놓치고 있는 것들이 없는지 꼼꼼하게 살피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이미 오래도록 그렇게 해 왔다는 걸, 그것으로 족하다는 걸, 우리는 전지전능한 신도 아니고 모든 기준을 억지로 용납하는 가짜 신도 아니며 그저 개별적인 욕구와 한계를 가진 존재들임을 받아들이게 됐어요. 미워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아요. 함께 해 주어 고맙고, 앞으로의 길을 응원할 뿐이에요. 아쉬움이 남지 않는 이유도 언제나 그런 마음이었기 때문이에요. 덕분에 진실을 섬세하게 볼 수 있는 눈이 생겼고, 나 자신의 개별적인 가치와 더불어 진심을 올곧게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의 가치를 더욱 느낄 수 있게 되었어요.
관계는 서로가 원하는 것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해요. 원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해야 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를 알아야 해요. 올해까지 내가 맞이한 이별들은 나에 대한 앎과 정화로부터 시작되었기에 나에게도 나의 인연들에게도 건강한 변화로 가는 과정 속의 한 구간이었을 거라 믿어요. 우리가 비워 둔 자리가 더욱 현명한 선택과 성숙한 인연들로 채워지길 바라고요. 그래요, 선택. 곁에 둘 인연을 곡진하게 이해하고 선택하고 싶고 나의 인연들로부터 역시 정교하게 이해받고 선택당하고 싶어요. 다소 무지했고 무심했던 과거로부터 낙하, 낙엽의 결심만큼이나 결연한 의지를 발휘하여. 적어도 지금은 그래요. 개인적으로 겨울은 점차 따뜻한 계절이 되어 가고 있어요. 나다워진다는 것은 그런 건가 봐요. 내리는 눈이 보드라운 솜처럼 느껴지고, 햇빛에 녹아 가는 눈더미 앞에 고요히 묵념하고, 반짝이는 트리의 전구들이 넓어진 마음 속 공터를 채워 주는 그런 것이요. 그럼 모두, 안녕히. 미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