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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꽃피 Mar 05. 2022

빙빙, 순환의 세계

때때로 처절히 벗어나고 싶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는



태초에 이 '불안'이 있었다.

태초에 '이불' 안이 있었다.



※ 몽롱 주의 ※

※ 비구름 주의 ※



잦은 아침, 나의 이불 속에는 불안이 있다. 어쩌면 세계의 근원일지도 모를 이 불안은 지나치게 내밀한 공간인 이불 속에서 지나치게 사적인 문제들로 새로이 잉태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불안(이불 안)을 거두고 침대에서 일어나기 직전까지 나를 짓누르는 모든 감정과 생각들을 가감 없이 담기로 했다.



——



좋은 습관도 나쁜 습관도 돌고 돈다. 빙빙 돈다. 우리의 인생은 순환의 역사다. 위대하고 감격에 겨운 변화를 갈망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지루하고 나태한 반복들로 가득 차 있다.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실은 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인간 사회에서 오랜 옛날부터 전설처럼 내려오는 격언도, 잠깐 스친 어느 꼰대 어른이 선뜻 타 주신 '왕년 라떼'도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고상하게 독서를 하고 글을 쓰는 것이 정말 나의 경험을 확장하는 일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확장. 나의 세계를 확장. 나는 그것을 간절히 바란다. 매분이 뭐야. 매초마다 쑥쑥 크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적어도 내가 극도로 읽기 싫은 책을 꾸역꾸역, 하지만 자발적으로 읽는 것이 한정된 내면과 정신을 확장하는 일에 실질적으로 훨씬 가까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딨나. 그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공감 받고 확인받기 위해, 단지 허영된 나를 더욱 부풀리기 위해  수많은 책들을 읽고 싶은 것이 아닐까? 글을 쓰는   심하다. 독서의 허영에 볼드체를 치는 것이 글쓰기다. 나를 산산조각 부수고 새로운 체계를 정립하는 , 아니면 단지 나의 지정된 한계를 넓히는 일이라도, 그런 강렬한 체험이 과연 글을 통해 일어날  있을까? 글이 단지 나를 소비하고 정리하고 소비하고 정리하고 그런  그치는 것이라 생각하면, 재미도 없고 힘이  빠진다. 성장. 매분, 매초 성장.   희망적인 성장. 나는 진정한 성장에 목마르다.



이불을 덮고, 이 불안을 덮고 잠을 자는 것은 어쩌면 그런 것이다. 성장과 확장에 대한 거부. 그것을 집착적으로 추구하는 사회에 대한 저항. 나의 한계에 대한 명확한 설정. 나 지쳤으니까 그만 괴롭히라는 얘기. 타인 뿐만 아니라 나 자신까지도 이제 그만 하라는 얘기. 전에는 꿈을 꾸는 것이 다른 새롭고 신비한 세계로 진입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은 그냥 이미 구축되어 있는 시시한 나의 세계를 빙빙 떠도는 일이었다. 바깥쪽도 아니고 깊숙한 안쪽에서. 꿈속에서 하늘을 날아도 유령 같은 기억들과 함께 유랑한다.



오늘도 그런 꿈을 꾸었다. 전혀 신선하지도, 희희낙락하지도 않은 잔재물로 가득한. 어제 먹다 남은 피자 조각과 같은. 그렇다. 부엌에는 어제 먹다 남은 피자가 있다. 왜 남았나. 다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럴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희희낙락. 그렇네. 왜 꿈에서는 배꼽 잡고 웃어 본 기억이 없을까? 안개처럼 흐릿하게 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하고 오묘한 색감만 남아 있다. 이 색감을 걷고, 먹다 남은 피자를 전자레인지에 데워 마저 먹고, 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간다.



——





그럼, 더 무거워지기 전에 여기까지.

오늘은 이만하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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