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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꽃피 Feb 26. 2022

하얘야 하는데, 새하얘야 하는데

금지옥엽 내 새끼를 출간해야 하는 어미의 마음



태초에 이 '불안'이 있었다.

태초에 '이불' 안이 있었다.



※ 몽롱 주의 ※

※ 비구름 주의 ※



잦은 아침, 나의 이불 속에는 불안이 있다. 어쩌면 세계의 근원일지도 모를 이 불안은 지나치게 내밀한 공간인 이불 속에서 지나치게 사적인 문제들로 새로이 잉태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불안(이불 안)을 거두고 침대에서 일어나기 직전까지 나를 짓누르는 모든 감정과 생각들을 가감 없이 담기로 했다. 



——



아침 7시. 알람이 울렸다. 

「태초에이불안이있었다」의 첫 시작을 쓴 뒤, 너무 괜찮은 아침들을 보내서 이 기획은 폐기해야 하는 건가 조금 걱정도 했었다. 그런 걱정을 무색하게 만들어 주는 토요일 아침을 맞았다.



이 아침은 사실 많이 어두웠던 어젯밤으로부터 이어진 것이었다. 첫 책 『사월에 꽃마리 피다.』를 '혹독한 세상'에 내보낼 순간이 점차 가까워지니 마음이 어수선하다가 많이 저려 왔다. 이 '혹독한 세상'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새롭고 신이 나는 세계'로 인식되었고, 그랬기에 『사월에 꽃마리 피다.』를 만드는 작업 과정의 모든 단계들이 처음이고 고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무척이나 즐거운 나날들을 보냈다. 세상을 만만하게 봤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영혼의 가장 맑고 진중한 조각들을 담아냈기에 쉽게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두려웠다기보다는 가슴이 아팠다. 어쩌면 단두대에 놓이게 될 내 책의 운명이, 그에 대해 쉬쉬할, 혹은 대놓고 술렁일 평가들이. 최근 이별을 하고 SNS에 자신의 심경을 어떤 책의 한 쪽을 찍어서 올린 연예인을 비아냥거리는 댓글을 보았다. 보호 받지 못하는 그 연예인도, 글귀도 가엽게 느껴졌다. 



시중에 파는 책들과는 많이 다른, 독립출판물이다. 글을 쓰며 썩 괜찮은 삶을 살고 싶은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정신을 표현하는 엠블렘이 앞표지에 박혀 있는, 온통 새하얀. 사월에 작디작은 꽃마리가 어떻게 피어나게 됐는지, 한 명의 작은 존재가 '글'이라는 대상을 앞에 두고 어떻게 계속해서 몸을 일으켜 세우며 살아가는지를 차분하게 읊조리는. 그래도 제대로 된 책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에 출판사 등록도 했고 이제 ISBN도 발급받을 건데, 생각해 보니 ISBN을 받으면 검게 휘갈긴 바코드를 새하얀 표지에 박아야 하잖아. 하얘야 하는데, 새하얘야 하는데. 무수히 오갈 거친 시선과 말들로 얼룩질. 내 품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거였나. 출간을 해도 쥐도새도 모르게 잊히는 게 행복한 것이려나. 다른 한편으로, 내가 이렇게나 글을 쓰는 데 순수하게 진심이구나, 정말 이 일을 많이도 사랑하는구나 싶다. 그 진심이 어쩌면 잘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걱정이 나른하게 체화되고, '이불안의심연'은 보기 좋게 준비된 먹잇감을 능숙하게 잠잠히도 집어삼킨다.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같이 영화를 보러 가자는 부모님의 제안을 거절했다.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거절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 언제쯤 바쁜 시간을 능란하게 쪼개 여유를 지켜낼 수 있을까. 원고도 다시 고쳐야 하고, 책갈피도 만들어야 하고, 책 소개도 써야 하고, 인쇄소랑 독립서점 리스트업도 해야 하고, 다음주에는 세무서에 가서 사업자등록증 정정도 해야 하고, 인쇄소도 이곳저곳 다니면서 견적도 봐야 하고 할 게 산더미다. 



——





그럼, 더 무거워지기 전에 여기까지. 

오늘은 이만하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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