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이불' 안이 있었다.
태초에 이 '불안'이 있었다.
태초에 '이불' 안이 있었다.
※ 몽롱 주의 ※
※ 비구름 주의 ※
잦은 아침, 나의 이불 속에는 불안이 있다. 어쩌면 세계의 근원일지도 모를 이 불안은 지나치게 내밀한 공간인 이불 속에서 지나치게 사적인 문제들로 새로이 잉태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불안(이불 안)을 거두고 침대에서 일어나기 직전까지 나를 짓누르는 모든 감정과 생각들을 가감 없이 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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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결정은 오늘 아침에 '무겁게' 일어나면서 하게 된 것이지만, 전부터 아침 기상과 불안에 대한 문제에 관해 조금씩 생각해 두었던 자잘한 아이디어들이 한 데 엮어지며 만들어진 것이다. 아침부터 흡사 '감정 쓰레기통'처럼 보이는 폴더에 나의 비밀스러운 우울과 냉소적인 사고의 파편들을 쏟아 내며 기운 빠지는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이런 기획을 하게 되면서 꽉 막혔던 것들이 슬며시 배출되는 묘한 쾌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한 배출 뒤에는 희멀겋던 내 존재의 특정 부분이 더욱 선명해지는 느낌이랄까. 아직 제대로 써 본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이런 긍정적인 자가 처방을 받았기 때문에 더더욱 주제에 대한 호기심과 확신이 증폭되었다.
더불어 아침에 일어나서 '가볍게' 글을 쓰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했는데, '글'이라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도저히 가벼워지지가 않아서 선뜻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도저히 변화할 기미가 안 보이는, 육중한 나의 아침의 무게가 기어코 글에 대한 부담감을 이기며 가벼움으로 가는 길을 활짝 열어 준 것 같다. 애를 태우며 느리게 글을 쓰는 나는 '이불 안'에서 만큼은 좀 더 과감하고 민첩해질 예정이다. 몽롱한 상태에서 정리되지 않은 날것의 정신적 흔적들을 토해 내고 또 토해 낼 것이다. 그것들이 바닥나는 날이 오게 될지는 미지수다. 그 날을 상상해 보면 홀가분함보다도 왠지 허전한 기운이 강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비움에 도달하는 것이 딱히 목표인 것은 아니다. 뚜렷한 목표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백지 창에 끄적일 수 있기를, 조금 더 가볍게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작은 소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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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더 무거워지기 전에 여기까지.
오늘은 이만하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