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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꽃피 Sep 01. 2022

우리의 대화

진실된 조화를 향한 나의 이야기





최근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변화가 있다.



소설 집필을 시작하기 전의 나는 사람들에게 나를 너무 드세게 드러내지 않는 편이었다. 나에게는 관계에서의 평화가 중요했고, 조금이라도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 불편해서 조심하고 배려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만큼은 고집도 부리고, 누군가가 선을 넘거나 내 생각을 충분히 얘기해도 되거나 의무적으로 그래야 하는 자리에서는 응당 그렇게 했지만, 일상적으로는 나의 주관적인 견해와 감정을 다른 사람의 경험에 관여시키지 않으려 했다. 나는 나로서 잘 살고, 너는 너로서 잘 살면 되는 거지. 굳이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그게 내가 그전까지 대체적으로 편안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이유였던 것 같다. 그 '편안함'이라는 것이 표면적으로 보이는 바와는 달리 온전치 않았지만.



그런데 꿈을 현실화하고 가장 중요한 나의 열망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게 되면서 나는 분명 달라졌다. 꼭 그래야만 하는 자리가 아닌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나를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것이 조금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고, 상대가 꼭 듣고 싶은 얘기, 얘기하고 싶은 주제가 아니더라도 그렇게 한다. 내 기준과 내가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에 대해서 뜨겁게 이야기한다. 뭐 어때. 나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 주었고, 듣고 있고, 존중하는데. 상대도 좀 그래 주면 안 되나.



전에는 대화에 나를 이 정도로 개입시키는 것이 무례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친하다고 할지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선, 일정한 거리를 지키고자 했다. 그래서 역으로 내가 하는 일이나 나의 선택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개입시키는 사람에게는 불쾌했고 화도 났다. 나는 잔소리가 싫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말투의 자기계발서도 싫다. 여전히 그런 면이 있다. 그리고 여전히 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고 타인에게 내 기준들을 강요하지 않는다. 사람은 다른 누군가를 대할 때 단면적으로밖에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내 좁은 관점만이 옳다는 식으로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상대가 하는 말에 마냥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만히 듣고만 있거나, 모든 걸 다 공감한다는 식으로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방식이 진정으로 상대를 위한 방식도 아니다. 존중은 하되, 나의 관점을 적절히 잘 드러내며 나의 이야기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치열하게 삶에 대해서 고민하고 필요하다면 투쟁도 기꺼이 하는 사람이고, 인간에 대한 이해와 정이 있는 사람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진심으로 쓰고 싶은 글을 쓰고자 몰입했던 시간들은 그 사실에 대한 믿음을 키우는 시간들이지 않았나 싶다. 그 믿음이 이제는 나로 하여금 나의 이야기를 그냥 내뱉게 한다. 진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얘기를 하도록 만든다. 그것이 다른 사람의 가치관과 기준들에 조금 맞부딪치더라도 괜찮다. 다른 사람이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히려 더 좋다. 그런 맞부딪침을 통해 나도 나를 점검해 볼 수 있고 상대도 그럴 수 있으니까. 어긋남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은 생각하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말을 꺼낸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생각을 정리하고 다루는 글쓰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그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성숙한 인간은 맞부딪침을 필요로 한다. 고고히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안전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들을 접하고 배우고 재조합해서 더 나은 기준을, 더 나은 인생의 방향을 만들어 간다.



여전히 나는 관계의 평화를 지향한다. 하지만 표면에만 머무르는 평화는 원하지 않는다. 나는 더 거창하고 속 깊은 것을 원한다. 어쩌면 평화보다도 '조화'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함께 만들어 가는 조화. 진짜의 내가 있고, 진짜의 너도 있는, 그런 우리가 만나고 만들어 가는 진실된 조화. 그런 조화는 결과로서보다는 과정으로서 존재한다. 지속적으로 나의 이야기를 하고 너의 이야기를 하며 기존에 있던 것들을 뒤흔들고 다시금 정립해 나가는. 지금부터의 문제는 내 이야기를 하고 안 하고가 아니다. 좀 더 내 이야기를 조화롭게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온전한 나로서 다른 사람의 마음과 인생에 보다 섬세하게 다가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런 고민을 한다.



왁자지껄한 술자리를 마치고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함을 느끼던 때도 있었다. 이제는 아니다. 내 모습 그대로 치열하게 대화에 참여했고, 나를 내주었으니까. 또 나와 다른 인생의 길을 걸어온 사람으로부터 나 혼자였다면 알 수 없었을 세계와 기준들을 치열하게 배웠으니까. 각자의 시간 속에서 서로를 곱씹다가 다시 만난 우리는 전과 조금은 다른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다음의 대화는 더욱 격렬할지도 모른다. 기대된다. 그리고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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