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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앨리스 01화

이상주의자의 이상한 나라

앨리스의 눈, 앨리스의 하늘

by 유하



나는 이상주의자다.



1. 이상(異常): 지금까지의 경험이나 지식과는 달리 별나거나 색다름.

2. 이상(理想):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상태. (* 유의어: 꿈)


- 표준국어대사전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이상주의자라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다. 내 삶은 대개 실제적인 사건보다는 내밀한 감정과 생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사실이나 현상 그 자체보다는 그에 대한 풍부한 의미와 해석에 비중을 두며, 있는 그대로의 현실보다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재구성해 내는 이상이 중요하다. 여기서의 '이상'은 완전한 기준에 대한 고찰과 색다른 경험으로서의 두 가지 뜻 모두를 포함한다. 즉, 색다르고도 완전한 상태에 도달하려는 욕망이다. 날 절망의 늪에 빠뜨렸다가 감미로운 희망으로 구원시키곤 하는 변덕스러운 애증의 연인, 이상.








나는 지금 앨리스의 하늘을 보고 있다. 월트 디즈니(Walt Disney, 1901~1966)<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lice in Wonderland>(1951)에서 가장 사랑하는 장면이다. 데이지로 가득한 들판에 누워 '나만의 세계(In a World of My Own)'를 부르는 앨리스. 바람에 흔들리는 데이지처럼 꿈과 현실 사이를 나부끼는 몽롱한 멜로디가 잦아들 때쯤이면 시간에 쫓기는 토끼 씨(Mr. Rabbit)가 등장하며 이상한 나라로의 모험이 펼쳐질 예정이다. 폭풍 전야의 시간 속에서 드넓은 하늘은 앨리스의 푸르른 눈이 보내는 시선을 너그러이 받아들인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평화롭게.





월트 디즈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951 : In a World of My Own.




이 장면을 처음 본 것은 이십 년을 훌쩍 넘어 아끼던 인형과 비슷한 크기의 작은 몸집에 말도 제대로 못하던 어린 시절이었다. 해외 출장이 잦았던 아빠는 꼭 건포도와 디즈니 영화 비디오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시절, 내복을 입고 거실에 깔린 양털 러그 위에서 건포도나 귤, 엄마가 쪄 준 잘 익은 감자를 노란 포크로 찍어 먹으며 디즈니 영화에 흠뻑 빠진 한 아이의 모습이 여러 장의 사진들로 남아 있다. 돈에 대한 걱정이나 건조한 현실의 권태로움 따위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으며 말썽쟁이 동생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냥한 환경, 엄마의 시선으로 둘러싸인 보호막 속에서 오롯이 음악과 이야기,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에 나의 감수성을 순수하게 내맡기던 때. 이따금씩 포근하고 호사스러운 그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 좋아하는 디즈니 영화 OST를 한껏 모은 플레이리스트까지 만들기도 했다. 제목은 '양털 러그 위에서 귤 까먹기'. 보드라운 양털의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 하늘! 맑은 호수와 같은 빛깔의 하늘. 그 위에 아인슈페너의 적당히 달콤한 크림을 흩뿌린 것 같은 구름. 선선한 바람과 함께 하늘은 점차 자신의 영역을 대담하지만 부드럽게 확장한다. 앨리스의 하늘은 어느새 나의 내면에 깔린 가장 기초적인 풍경이 되었다. 양털 러그 위의 아이는 몸도 생각도 조금 더 자라, 자신의 두 눈으로 환한 하늘을 직접 마주하게 됐다. 어떤 날에는 베란다와 방 사이의 문턱에 누워 창밖의 하늘을 하루 종일 바라보기도 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까지도 나의 시선은 종종 하늘을 향한다. 하늘이 단지 하늘이었다면 그것을 그렇게 오래도록 지켜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늘은 원하는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는 도화지고, 나를 온전히 반영하는 투명한 거울이자 새로이 재구성된 세계로 통하는 창이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보이후드>, 2014 : 첫 장면.




들판에 누워 한가로이 하늘을 바라보는 앨리스와 유사한 광경이 리처드 링클레이터(Richard Linklater, 1960~)의 영화 <보이후드 Boyhood>(2014)의 첫 장면에서도 펼쳐진다. 구름이 낀 푸른 하늘. 그것을 바라보는 소년의 눈. 하늘의 빛깔과 들판의 연두색이 뒤섞인 소년의 눈동자는 위를 향해 단단히 고정되어 있으면서도 자유롭다. 그는 영화 속 주인공인 메이슨. 위로 살짝 찡그린 눈썹은 아이의 진중한 성격과 더불어 긴 속눈썹의 선선한 그늘 아래서 창조되어 가는 심오한 세계를 암시한다. 나는 아이로서 느끼는 감정이나 경험이 어른에 비해 결코 얕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점차 어른이 되어 가며 언어로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기술이 늘지언정 아이의 세계는 바다만큼 깊다. 어쩌면 어른이 되고 나서의 세계보다도.



같은 장면에서 콜드플레이(Coldplay) '옐로우(Yellow)' 가사가 들려온다. 하늘을 푸르게 물들이는 아이의 맑은 영혼을 축복하듯, "별들을 봐. 널 위해 빛나고 있잖아. (Look at the stars. Look how they shine for you.)" 내 안에서 꾸벅꾸벅 졸던 어린 영혼도 깨어나는 것만 같다. 여섯 살 소년이 열 여덟 살이 되기까지 12년이라는 긴 세월, 감독 자신의 유년 시절과 배우들이 실제로 나이 들어 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은 <보이후드>의 시간은 아이가 바라보는 하늘처럼 서서히 흘러간다. 영화 매체가 종종 과시하는 드라마틱한 사건보다도 촘촘한 일상과 세심한 감정들이 하늘의 속도로 메이슨의 어린 시절을 이끌어 간다.





르네 마그리트, <거짓된 거울>, 1928 & 1929.




앨리스의 눈, 메이슨의 눈, 이상주의자의 눈을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거짓된 거울 The False Mirror>(1928 & 1929) 만큼 시각적으로 잘 묘사한 작품이 있을까.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초현실주의자의 눈이기도 한 그것은 눈동자 표면 위에 비친 하늘 대신 눈동자 안에서 유유히 흘러가는 하늘을 그려 낸다. 다른 마그리트의 작품들이 그러하듯 이 그림 또한 우리가 알고 있던 진실과 거짓 사이의 구분과 위계를 허물어뜨린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이 세계에서 진실은 재편된다. 무엇이 거짓이고 진실인지보다도 중요한 것은 진실을 구하겠다는 스스로의 의지, 그렇게 찾은 나만의 진실에 대한 믿음, 그 진실을 재구성하는 행위, 그 과정에서 발아되는 창조성이다.



그 중심의 검은 동공. 약간 삐뚤빼뚤한 윤곽선 때문인지 미세하게 출렁이는 것 같기도 한. 하지만 그것은 분명 중앙에 고집스럽게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이 눈이 이상주의자의 눈이라면, 검은 동공은 '색다르고도 완전한 상태에 도달하려는 욕망'이다. 그것은 고요한 밤하늘의 달보다도 고독해 보인다. 꿈에서 막 깨어난 이상주의자처럼. 검은 동공의 힘은 블랙홀과도 같아서 나라는 존재를 더욱 거세게 빨아들일 뿐, 내가 감히 그것을 내칠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검은 동공의 힘을 중심으로 나와 이야기와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현실이 이상을 괴롭히고 이상이 현실을 괴롭혀도 이상을 제거할 수는 없다. 이상은 이상주의자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단지 온 힘을 다해 이상을 현실화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언제나 글이 쓰고 싶었고, 그 일로 나를 규정하고 싶었다. 삶에 매 순간 진심이고자 했던 나는 죽기 전까지 글을 쓰겠노라고 다짐해 왔다. 하지만 곰곰이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나는 글을 쓰는 행위보다 상상하고 사색하는 일을 더 사랑했던 것 같다.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나만의 세계'에 침잠하는 일.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 생각은 글의 근원이지만 글 자체는 아니다. '나만의 세계'는 분명히 역동적으로 모든 시간 속에서 존재해 왔다. 단, 차가운 수면 아래에 잠긴 빙산처럼 가능성의 상(像)으로서. 호시탐탐 침투하려는 현실과 실랑이를 벌이는 백지, 그 아래에서 외로이.



그런데 앨리스의 하늘로 돌아간 지금, 나의 내면의 기원으로 돌아가서 이 글을 쓰는 지금, 분명 전과는 다른 국면에 다다라 있음을 느낀다. 묘한 기분이다. 앨리스의 하늘은 평온하게 일렁이지만, 곧 흰 토끼 씨가 등장할 것이다. 곧 이상한 나라로 모험을 떠나는 앨리스의 뒤를 밟으며 나는 지나온 기억을 뒤적거릴 것이고, 사각형의 틀 속에서 구축된 견고한 예술 세계를 유심히 살필 것이다. 일상과 예술을 넘나들며 나는 때로는 앨리스로, 앨리스의 미래로, 아이로, 어른으로, 또 때때로 필요하다면 냉철한 관찰자로도 변모할 것이며 내면의 세계가 그러하듯 나의 이야기도 조금은 들쑥날쑥 굴곡지게, 가끔은 알쏭하게 흘러갈 것이지만, 시종일관 이상주의자의 진실한 눈으로 바라볼 것을 약속한다. 이상과 대조되는 서투른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저 내가 나이기를 인정하기로.



자잘하게든 거창하게든, 상상이든 끄적거림이든 지금까지 해 왔던 모든 일을 연습으로 만드는 거대한 실체로서의 글이 광활한 하늘에 드리워지고 있다. 그토록 전하고 싶었지만 아직 드러날 수 없었던 눈 먼 이야기가 구체적인 이미지로서 형성되고 있다.



선언하고 싶다. 한 이상주의자의 '이상한 나라'가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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