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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앨리스 02화

푸르른, 꿈의 색

앨리스의 하늘색 드레스

by 유하



샛노란 금발 위에는 검은 머리띠를, 하늘색 드레스 위에는 새하얀 앞치마를 두른 소녀. 월트 디즈니가 그려 낸 이 소녀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떠올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전형이 되었다. 앨리스의 복장 중에서도 드레스의 푸르른 색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상주의자의 시선이 빈번하게 향하고 오래도록 머무는 곳, 즉 그의 내면의 풍경으로서의 푸르른 하늘을 반영한 앨리스의 하늘색 드레스.




디즈니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① 꽃밭에서 하늘색 드레스를 펼치는 앨리스.
② 토끼 굴로 떨어지며 낙하산처럼 펼쳐지는 앨리스의 드레스 & ③ 티 파티를 지나 도망가는 앨리스.




토끼 씨를 따라 토끼굴에 빠진 이후, 제대로 된 조력자나 친근한 동반자 하나 없이 다양하고 황당한 상황들을 자신으로서 대면해야만 하는 앨리스. 혼란한 사고들 만큼이나 알록달록한 색감의 배경과 캐릭터들 속에서 앨리스의 하늘색 드레스는 때에 따라 다소곳하게 있다가 역동적으로 나풀거리기도 하며 지속적으로 이목을 끈다. 각자의 개성이 강하고 급급하게 표출되는 다양무쌍한 색깔들의 혼합에 반해, 하늘색에는 시선을 편안하게 집중시키는 힘이 있다.



무엇보다 하늘색은 앨리스의 동심과 당찬 성격 모두를 표현하는 그의 정체성이자 이상한 나라를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앨리스의 태도를 대변하는 신념이다. 심지어는 토끼 굴에서는 낙하산 역할을 하며 앨리스를 위험으로부터 지켜 주기도 하는 보호색이다. 이상한 나라의 이곳저곳을 누비며 앨리스는 터무니 없는 상황들에 대해 놀랍도록 침착하고 여유로운 자세를 보인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따금씩 아이 같이 연약하고 천진난만한 모습을 불쑥 드러낸다. 이러한 양가성을 품을 수 있는 색은 그 넓이 만큼이나 너그럽고 순수한 하늘의 빛깔 뿐이리라.








푸른색은 초현실주의 미술에서도 깊은 내면을 묘사하는 데 쓰이며 존재감이 돋보이는 색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에서는 구름이 두둥실 떠가는 푸른 하늘이 자주 등장한다. 호안 미로(Joan Miro, 1893~1983)는 종이에 앨리스가 입은 드레스의 색감과 유사한 하늘색을 구름과 같은 형상으로 찍어 낸 뒤, 그 아래에 "이것은 내 꿈의 색이다. (ceci est la couleur de mes rêves. / this is the color of my dreams.)"라는 글귀를 적어 놓기도 했다. 이 그림 속 좌측 상단의 'Photo'는 '사진'의 의미가 아니라, 라틴어의 '빛'을 지칭한다.




호안 미로, <Photo(빛) : 이것은 내 꿈의 색이다.>, 1925.




디즈니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등장하는 하늘은 미로의 이 글귀를 그대로 적용한 것처럼 느껴진다. 시작과 끝 장면의 배경은 모두 잠이 든 앨리스의 꿈을 제외한 현실로, 멀리 첨탑이 보이고 강이 흐르는 평화로운 동산을 그려 낸다. 시작부에서는 하늘이 온통 보라색이었다면, 끝에 가서는 여전히 보라빛이긴 하나 푸른색 구름을 품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 중간, 앨리스가 등장할 때마다 서서히 푸르름을 허용하던 보라색 하늘은 앨리스가 '나만의 세계'를 꿈꾸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하늘색으로 완전히 탈바꿈한다. 이 순간은 앨리스의 꿈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직전, 혹은 꿈과 현실이 겹쳐진 상태이거나 이미 꿈으로 넘어간 시간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호안 미로, <블루 I, II, III>, 1961.




블루를 '꿈의 색'으로 명명한 이후, 미로는 <블루 Blue> 삼부작(1961)을 만들어 낸다. 이 연작은 파란색, 빨간색, 검정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푸른색 홀로 있었다면 그것의 약동하는 본성과 깊은 생명력은 온전히 드러날 수 없었을 것이다. 블루를 블루로 규정하는 것, 블루의 진정한 가치를 발굴하는 것은 빨강과 검정이다. 이 세 가지 색은 디즈니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후반부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강렬한 빨간색과 검은색으로 무장한 카드 병정의 행렬, 하트 여왕의 풍채와 날카로운 성질은 앨리스와 화면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시각 모두를 압도한다. 법정에서 하트 여왕과의 대립의 정점을 찍는 순간. 앨리스는 키가 자라나는 버섯을 의도적으로 섭취함으로써 이상한 나라의 법칙을 활용할 수 있게 되고, 위축되어 있던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한결같이 앨리스를 무시하던 이상한 나라의 인물들은 이제 선명하게 부각된 그의 목소리와 존재감, 푸른색이 주는 위엄 앞에서 벌벌 떤다. 이제 하늘의 빛은 컴컴한 지하의 세계를 장악한다.




④ 카드 병정들로 꽉 찬 법정에 선 앨리스, ⑤ & ⑥ 버섯을 먹고 커진 앨리스.








어쩌면 내가 하늘색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 색감의 옷이 많고 그런 옷을 입기를 좋아하는 것도 어릴 적 기억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디즈니의 앨리스로부터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하늘색의 청바지도 좋아하고 흰색에 가까운 하늘색 원피스도 가지고 있다. 몇 달 전에 이 옷을 입고서 밖을 돌아다니다가 같은 색의 가을 자켓을 발견했는데, 일종의 계시로 받아들이고 망설임 없이 구매했다. 요즘에도 맑은 하늘에 응답하듯 아끼는 하늘색 롱스커트를 자주 입곤 한다. 세로로 단추가 줄줄이 달려 있어 마냥 심심하지만은 않은 느낌을 준다. 이에 비슷한 색감의 셔츠까지 같이 입으면 하나의 원피스 같다. 생각해 보니 앨리스가 입은 드레스와 거의 흡사한 색이다. 이제 가을이 되며 날씨가 전보다 쌀쌀해져서 훨씬 더 흐린 하늘색이 섞인 바람막이를 위에 입는다.



개인적으로 하늘색 옷을 즐겨 입는 이유가 있다. 그것을 입었을 때, 나의 내면에서 밖으로 흐르는 심리적인 에너지와 외부로부터 안으로 느끼는 감각이, 뭐랄까. 알맞다. 하늘색 원피스의 단정한 린넨에 햇살이 부드럽게 닿을 때, 양옆에 난 푸른 롱스커트의 트임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며 열심히 움직이는 두 다리를 시원하게 관통할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쾌함과 안정감이 마음을 어루만지고 물들인다. 나는 그것을 푸르른 하늘로 뒤덮인 세계가 나에게 보내는 근원적인 메시지, 내가 나여도 괜찮다는 메시지로 해석한다. 또한 나는 그것을 '평정'이라 부르고 싶다. 하늘색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꽃, 꽃마리의 색이기도 하다. 꽃마리는 눈에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것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고 우주만큼이나 거대한 의미로 가득찰 수 있다는 진리를 일깨워 준 고마운 자연의 선물이다.



이 평정의 색감은 유년기의 환한 기쁨으로부터 시작되어 오래간 지속된 지독한 열병을 거쳐 다시금 회복되었다. '블루(blue)'는 말 자체로 우울한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나의 내면을 밝은 하늘의 빛깔에서 짙고 어둔 블루로 물들게 한 열병은 삶에 대한 지독한 사랑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이제는 확신할 수 있다. 인생과 사람, 나 스스로에 대한 이상이 조금씩 깨지고, 우울은 그 틈을 매섭게 파고들었다. 이해되지 않는 낯선 풍경 속에서 자신의 얘기를 귀담아 듣지 않는 인물들의 주변을 떠도는 앨리스의 상황은 마치 현실 속에서 방황하는 이상주의자의 외로움과 절망을 호소하는 것 같다. 어여쁜 두 눈동자와 드레스에 맑은 하늘을 담고 어두컴컴한 토끼 굴속으로 떨어진 앨리스. 꿋꿋한 푸르름으로 지하의 이상한 나라를 떠도는 소녀의 빛깔에는 투명한 슬픔이 분명 존재한다.




⑦ 이상한 나라에서 길을 잃고 울음을 터뜨리는 앨리스 & ⑧ 토끼 굴에서 낙하하며 책을 읽는 앨리스.




사랑하는 이상을 증오하게 되었던 번뇌의 시간들을 기억한다. 나는 그 시간들을 버티게 해 줄 수 있는 것을 외부의 그 어떤 곳에서도 찾지 못했다. 이상으로부터, 이상주의자의 신분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은 답이 아니었다. 이상의 소굴로, 토끼 굴 안으로, 꿈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더 깊숙이 들어가야만 했다. 오로지 내면에 침잠하고, 나를 대면하고, 현실의 변형으로서의 꿈과 이상과 욕망의 진면목을 파헤치는 일, 마음으로 글을 쓰는 방식만이 나를 치유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상한 나라를 구성하는 요소들과 그의 법칙을 이해하며 나는 차츰 회복되어 갔다. 그 끝에서 마주한 평정은 유년 시절에 나를 순수하게 내맡겼던 하늘보다도 훨씬 단단하고도 선명한 푸르름이었다. 푸르른 내면이 푸른 하늘을 만나 휘황한 푸른빛을 내는. 수면에 잠겨 있던 꿈이 현실로 드러나는. 어린 앨리스의 하늘에서 미로의 빛으로 환해지는, 눈을 뜨고 맞이하는 꿈의 색.





나는 깨어 있을 때 항상 꿈꾸는 상태에 있어요.

그렇고 말고요!


- 호안 미로



Joan Miró in: Bruno Friedman: “L’esperit créateur dans l’art et dans la science. Interview de Joan Miró’’. In: Impact, Science et Société. Paris, October-December 1969, vol. 19, n. 4, p.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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