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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홀

Black Hole

by 유하






작가에게는 세 가지 세계가 있다.

블랙, 블루, 화이트.










1-1. 블랙 홀

Black Hole





Black_circle.jpg Kazimir Malevich, Black Circle, 1915. State Russian Museum, St. Petersburg, Russia.





태초에 결핍이 있었다. 이 결핍은 커다란 원이자 검은 태양이었다. 처음부터 그리 거대한 크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수도꼭지를 꽉 비틀어 잠가도 꼭 고집스럽게 똑 떨어지고야 마는 한 방울의 물처럼 작고 사소하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한 방울의 물, 어쩌면 눈물. 아마도 어머니의 눈물, 어머니의 슬픔. 눈물에 슬픔만 있겠는가. 슬픔이 슬픔으로만 이루어져 있겠는가. 슬픔은 많은 경우 분노를 동반하기도 한다. 눈물은 격노를 이기지 못해 눈물이 되기도 한다. 어머니의 물은 아이의 눈에 똑 떨어진다. 어머니의 물이 아이의 동공에 맺힌다. 검은 태양이 검게 빛난다. 목마른 아이는 매섭게 어머니의 물을 빨아들인다. 똑. 검은 태양은 점차 커진다. 똑. 검은 태양이 검게 빛난다. 똑. 검게 커진다. 똑. 검게 빛난다. 똑. 엄마. 똑. 엄마는 왜 슬퍼? 똑. 엄마는 갖고 싶은 게 많았거든. 똑. 하지만 딱 하나만 가졌더라면. 똑. 딱 하나만 제대로 가졌더라면 괜찮아졌을지도 몰라. 똑. 엄마. 똑. 미안해. 똑. 그 하나, 내가 줄 수 있는 게 아닌가 봐. 똑. 하지만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니라면? 똑. 내가 거대한 무언가가 될 수 있다면? 똑. 내가 나를 초월할 수 있다면! 똑. 검은 태양처럼 말이야. 똑. 엄마가 더 이상 슬프지 않을지도 몰라. 뚝! 빛나던 검은 태양은 어느새 동공 안 저 밑에 굴러떨어져 있다. 그것은 사랑보다 깊은 욕망 덩어리. 그 무엇도 초월할 수 있는 악마적인 힘. 아이는 무섭다. 하지만 이미 깊어진 검은 덩어리는 무섭지 않다. 두려운 아이는 외친다. 봐! 안 되잖아. 나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초월할 수 없어. 나보다 강하고 뻔뻔한 것들 투성이야. 검은 덩어리는 말한다. 그래? 그럼 내 안으로 모조리 빨아들이면 되지. 세상은 네 것이 될 거야. 아이는 두렵다. 난 단지 나이지 않기만 하면 돼. 검은 덩어리는 아이의 공포에 코웃음을 친다. 넌 이미 네가 아니야. 내가 널 집어삼켰거든. 경악하는 아이를 검은 덩어리가 달랜다. 잘 생각해 봐.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이 슬플까? 뚝! 아이의 과격한 외침은 슬픔, 분노, 공포, 불안을 검은 덩어리에게 쏟아 낸다. 검은 덩어리는 출렁이며 점차 검은 웅덩이가 된다. 하지만 넌 이미 네가 아니야. 내가 널 집어삼켰어. 빛바랜 슬픔, 분노, 공포, 불안은 때때로 공허한 바람이 되어 검은 덩어리 안에서 회오리친다. 내 안으로 모조리 빨아들이면 되지. 세상은 내 것이 될 거야. 난 신이 될 거야. 밖의 모든 것은 내 안에 존재해. 내가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것 모두가. 모든 문제가 나로 귀결돼. 세상은 결국 하나의 주관적인 해석으로서 성립할 뿐이야. 결국 모든 게 나야. 나무도, 강도, 도시의 불빛도, 거리의 짐승들도, 한낮의 술자리와 한밤의 영화도, 매력적인 애인과 시시껄렁한 부랑자도 나와 나의 위대한 업적을 위해 존재해. 나는 빛날 거야. 아이의 꿈처럼 검게 빛날 거야. 나는 검은 태양이었고, 이제는 검은 태양의 신이야. 아이의 비웃음과 환희가 뒤섞인 빛바랜 음성이, 똑. 아득하게 메아리친다. 홀, 검은 신이시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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