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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오션

Blue Ocean

by 유하






작가에게는 세 가지 세계가 있다.

블랙, 블루, 화이트.









2-1. 블루 오션

Blue Ocean





Agnes Martin, Night Sea, 1963, oil & gold on canvas, 183×183cm.





존재하지 않는 곳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검은 신이 지배하는 곳. 경쟁도 갈등도 없는 자유롭고 허전한 그곳. 공허한 천국. 어머니, 여동생, 새의 죽음으로 가득한 아이의 집. 경쟁자를 제거한 검은 고양이와 아이는 한동안은 행복했다. 이제 아이는 새장 속의 새가 아닌 자신의 무릎에 누워 갸르릉 소리를 내는 고양이의 눈을 바라보며 사랑을 말했다. 하지만 삼각관계가 붕괴되자 삼각형 안에 봉인되어 있던 새까만 불안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불안은 언제나 아이와 고양이의 발목을 찰랑였다. 새에게 분산되었던 사랑이 고양이에게 집중되었고 상실에 대한 아이의 끔찍한 경험과 과도한 몰두는 집착을 가져왔다. 고양이는 때로는 과분한 사랑에 황홀감에 젖었다가도 때때로 도망가고 싶어졌다. 오로지 자신만을 아끼고 바라보는 아이의 동공, 검은 태양을 보고 있으면 고양이는 두렵고 슬퍼졌다. 나를 보는 것일까 어머니를 보는 것일까. 나를 보는 것일까 여동생을 보는 것일까. 나를 보는 것일까 새를 보는 것일까. 그러다가 가혹한 환상에 젖는 것이다. 새가 떠날 것이 두려워 나를 데려온 것이다. 새가 아이의 진정한 사랑이며, 나는 새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는 때때로 아이의 동공에 어른거리는 새를 보기도 했다! 저 발칙한 새 그림자! 사무치는 증오와 죄책감에 부르르 떨던 고양이의 심장은 쇠약해졌다. 결국 나의 악랄한 실체를 알게 되지 않을까.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르지. 그러면서도 날 사랑한다는 아이가 악마는 아닐까. 날 떠나지 않을까! 그래서 고양이는 결심했다. 아이가 자신을 쫓게 만들기로. 잔악한 아이보다 더 잔악해지기로. 그렇게 도망쳤다. 푸른 새벽이었다. 고양이의 털도 푸른색을 띠었다. 삼각형에서 흘러나온 새까만 불안이 고양이의 발에 묻었고, 고양이는 가는 곳마다 발자국을 남겼다. 아이를 집어삼킨 검은 신이 뒤쫓기에 충분한 자취를 남겼다. 검은 신을 갈기갈기 찢은 검은 소음이 따라잡기에 명백한 자취였다. 새벽의 도시를 달리는 검은 고양이의 뾰족한 삼각 귀로 검은 소음이 흘러 들어왔다. 소음이 점차 비대해지며 고막을 잔뜩 괴롭혔다. 캣! 새 그림자의 외침이 들렸다. 자신이 새의 목덜미를 물었던 순간 들었던 죽음의 소리였다. 고양이 자신이 낸 소리였는지도 몰랐다. 거대하고 괴상한 미끄럼틀을 연상시키는 내리막길에서 고양이는 검은 소음과 함께 된통 구르고 굴렀다.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랑하는 고양이야, 슬픈 고양이야. 너에게 바다를 보여 줄게. 검은색 말고 푸른 바다를! 존재하지 않는 곳에 대해서 말할 때, 그곳은 비로소 존재할 수도 있을까? 어서, 바다에게로. 블루 오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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