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악몽에서 잘 깨지 못할 때

아이와의 작은 시그널

by 라파고

갓 네 돌을 지난 아들이 오늘도 한 밤중에 잠 속에서 운다. 아무리 흔들어 깨워봐도 꿈에서 깨지 못하는 모양이다.가끔 경기를 일으키는 거 아닌가 할 정도로 자지러질 때도 있는데, 다행히 오늘은 그렇지는 않았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꼭 이런다.

꿈속에서 어떤 유령을 만나는지, 누가 쫓아오는지 모르겠지만

가끔 잠꼬대하는 걸 들어보면 좋아하는 만화에 나오는 악당 캐릭터를 말하기도 하고,

아빠나 엄마한테 호되게 혼난 날 그러기도 하고,

TV를 너무 오래 봤나 싶은 날 밤에 그러기도 하는 것 같다.



아침에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또다시 신나게 논다. 울기 시작하면 30분은 기본인데

어린 녀석이 그 긴 시간을 꿈 안에서 혼자 시달렸다고 생각하니 걱정되고 측은하다.


그때 문득 가위눌렸을 때 빠져나오는 방법을 어딘가에서 들은 기억이 났다.


몸 전체를 일으키려 하지 말고, 새끼손가락부터 움직여라!

이게 힌트가 될 수 있겠다.

지난 며칠 동안 아이가 자다가 울기 시작하면 흔들어 깨우거나, 불을 켜거나, 물을 먹였다. 나중에는 결국 깨긴 하지만 한 동안 씨름하는 엄마도 아이도 그 여진이 상당하다.


그래서 꿈속에서도 인지할 수 있는 우리만의 시그널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했다. 시그널을 들으면 악몽에서 현실세계로 자각시키는 거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 실험처럼.



아들!

다음에 또 안 좋은 꿈 꿀 때 아빠가 이렇게 말할게!


(엄지손가락을 코에 대고 이소룡 같은 제스처를 하면서)

"아뵤!"


자다가 이 소리를 들으면,

지금 꿈꾸는 거니까, 그거 진짜 아니니까

안 무서워해도 되는 거야, 알았지?


아들은 알겠다고 했다.

표정을 보니, 아빠가 또 말도 안 되는 장난을 치려고 하는구나 정도의 표정이었다.

( 아들에게 장난을 많이 쳐서 내가 말하면 잘 안 믿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악몽에서 탈출하기 위한 작은 시그널을 약속한 뒤 다음 날 저녁에 그 녀석이 찾아왔다. 바로 악몽 그 녀석이다.


다음날 출근이라 정신없이 자다가 아들의 울음소리에 깼는데, 이미 와이프는 아이를 안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아뵤~~~~~~~~~!!!!



잠이 덜 깨 눈도 다 뜨지 못한 상태에서 옆집에서도 들릴만큼 크게 그리고 경쾌하게 아뵤를 외쳤다. 그리고 나서는



아들!

지금 그거 꿈인 거 알지?

안 무서워해도 되는 거 알지?



잠결에도 내 말은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놀랍게도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아들을 다시 재우고

와이프와 나는 서로 쳐다보며 웃으며 말했다.



이게 진짜 통한다고?



다음 날 아침에도 여전히 악몽을 꾼 사실을 기억하지는 못했다.

간 밤에 아빠가 "아뵤~"를 했노라니, 아들은 씨익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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