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우리 주말마다 쓰레기 주울까요?

조깅하며 쓰레기 줍기, 플로깅(Plogging)

by 라파고

아빠, 우리 주말마다 쓰레기 주울까요?


어느 날 하랑이가 지구를 위해서 쓰레기를 줍자고 했다. 뉴스에서 봤다고 했다. 쓰레기가 너무 많아서 동물이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플라스틱과 비닐 때문에 서식지를 잃고 힘들어하는 동물들을 주제로 한 어떤 환경캠페인을 봤나 보다.


어, 그럴까?


아이는 언제나 나를 변하게 한다. 나는 부끄럽지만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주워본 적이 없다. 학생 때 봉사점수를 위해서, 회사에서 의무적으로하는 활동 몇 번이 다였던 걸로 기억한다.


검색을 좀 해보니 해외에서 플로깅이랑 활동이 있었다. 쓰레기를 주우면서(Plocka:스웨덴어) 조깅(Jogging)을 하는 활동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플로깅을 지원하는 몇몇 앱도 나와있었다.


이거 멋진 일이잖아?


우리는 장갑과 집게 그리고 사용하고 남은 비닐봉지를 각각 챙겨 집을 나섰다. 생분해 봉투가 있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우리 집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우리는 "좋은 일"을 하는 기념으로 집 앞에서 기념사진을 하나 찍었다. 아이는 막역한 동물친구(가방)와 함께 출격했다.


아파트를 벗어나자마자 나는 느꼈다. 쓰레기 줍는 일은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아름다운 놀이가 아니라는 것을.


무의식 중에 출퇴근할 때, 슈퍼에 오갈 때는 몰랐으나, 쓰레기를 의식하여 찾아다니는 순간부터 숨이 턱 막혀왔다. 집과 가장 가까운 식당 앞에서 눈에 띈 영수증과 이쑤시개는 물론 도처에 널려있는 짓이겨져 있는 담배꽁초와 눌어붙은 가래침은 역한 기분을 느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아이도 나랑 같은 기분을 느낄 텐데, 내가 그런 게 아님에도 어른을 대표해서 아이에게 미안했고, 아름다운 것만 보여주고 싶은 아빠로서 그 현장은 못 본체 지나가고 싶었다. 무엇보다 그 구역질 나는 담배꽁초들을 아이가 줍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냥 빈 캔 몇 개정 도라면 몰라도.


그러나 하랑이는 무슨 놀이나 되는 듯, 달려가서 줍기 시작했다. 담배꽁초, 빈 캔, 영수증 할 것 없이 자신의 봉투에 주워 담았다. 아빠가 자신보다 더 많이 줍고 있지는 않을까 아빠 봉투 속을 힐끔거리며, 입으로 열심히 숫자를 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하랑이 옆에 가서 가장 지저분한 것들을 내 봉투에 담기 시작했다. 코로나 때문에 착용한 KF94 마스크와 집게 덕분에 메스꺼운 기분은 좀 덜했다.



그 식당 앞 정리를 마무리하고, 다시 길을 나섰을 때 애초에 조깅 같은 것은 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플로깅이 유래한 스웨덴에서는 가능한 일일까? 거의 다섯 발자국을 이동하기도 전에 쓰레기가 발견되니, 리듬상으로 뛰면서 쓰레기를 주울 수가 없었다. 전단지, 테이크아웃 컵, 빨대, 담배꽁초, 담뱃갑, 페트병, 비닐봉지 등 참으로 많은 쓰레기들이 전봇대 앞, 배수구 옆, 화단 구석, 휀스 밑 등에 교묘하게 숨어서 흩어져 있었다.

그렇다 보니 걷다가 마주치는 쓰레기 더미마다 티끌 하나 없이 주워 담고 오기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았다. 몇 개만 주워 담아도 비닐봉지 하나는 가득 채울 만큼 쓰레기는 크고 많았기 때문이다. 집으로부터 대략 100m 거리 내에서 아이와 나의 비닐봉지는 가득 찼다.


쓰레기 줍는 선수라기보다 감독이자 보호자로 출전한 나는 쓰레기를 줍는 것보다 아이가 갑자기 쓰레기를 보고 차오는 곳에 뛰어가지 않을까, 비위생적인 환경에 너무 많이 노출되지는 않을까, 힘들고 더러워서 다음부터는 안 한다고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느라 더 힘들었다. 다행히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쓰레기 줍는 일이 지저분한 일이라서 아이가 한번 해보고 당연히 다시는 안 한다고 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것은 순전히 나의 경험에서 미루어 짐작한 "나의 생각"이었다. "아이의 생각"은 달랐다.



아이에게서는 선한 영향력이 있다. 아이의 선한 영향력을 지켜주는 방법은 부모가 좀 더 부지런해지는 것이다. 결과 알려주기보다는 과정을 함께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아이가 어디선가 무엇을 보거나 듣고 와서 부모에게 질문을 던지면, 부모는 아이에게 그 질문을 활동으로 옮겨볼 수 있는 기회를 주거나 스스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부모가 주입한 결론 말고 스스로 결론을 얻을 수 있도록. 부모의 경험과 사고 메커니즘을 뛰어넘는 날이 곧 오겠지.


쓰레기가 가득 담긴 봉투는 밖에서 처리가 어려워 집으로 들고 왔다. 분리배출이 가능한 플라스틱, 종이, 비닐 등은 아파트 분리수거 장소에 분리배출을 하고 나니, 봉투 안에는 사실상 담배꽁초만 남았다. 그걸 버릴 곳은 없어 우리 집 베란다 쓰레기통에 버렸더니, 집 안에 담배꽁초 냄새가 진동을 했다. 나는 다 채워지지도 않은 종량제 봉투를 급하게 쓰레기 수거장에 내다 버렸다. 좋은 일은 많은 인내와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랑이가 다음 주에 또 하자고 했다. 그래서 다음 주에 또 하려고 한다. 서울, 제주도, 전주, 이탈리아에 가서도 하자고 했다. 그래서 일단 그러자고는 했다.


쓰레기를 주운지 이틀이 지난 월요일에는 환경부에서 1회용 컵 보증금을 개당 300원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입법 예고를 했다. 이제 테이크아웃 일회용 컵을 해당되는 매장에 다시 갖다 주면 보증금을 돌려준단다. 이제 길에 테이크아웃 플라스틱 컵이나 종이컵은 좀 줄어들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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