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혼란의 시대」 아미타브 고시 지음, 에코 리브르(2021)
「대혼란의 시대(The Great Derangement)」는 제국주의 침략, 식민지 지배, 양차 세계대전, 독립과 독재를 중심으로 인도와 미얀마의 역사적 격동을 조명한 「유리궁전(The Shadow Lines)」의 작가 아미타브 고시가 기후위기를 문학/역사/정치를 통해 말한다. 기후 위기 시대 문학의 역할을 묻고, 기후 위기의 원인을 역사로부터 발견하고, 기후 위기의 현실을 정치를 통해 들여다본다.
기후 변화로 인해 "전례 없는, 있을 법하지 않은, 불가사의한" 현상을 통해 우리는 역동적인 풍경 안에 놓여 있다. 하지만 문학·창작 영역에서는 기후변화의 소재가 공상과학 소설 장르로 치부되기 십상이며, 현실을 반영하지 않으며 심지어 은폐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예술 및 문학 형식의 은폐 양식에 의존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가 처한 곤경의 실상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막는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다"라면서 "기후 위기는 문화의 위기이고 따라서 상상력의 위기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근대 예술이 철저하게 인간 중심적 배경에서 이뤄졌으며 그로인해 인간 중심의 언어가 가진 한계에 대해 말하고, 인류세에서는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기 위한 대화의 방법으로서 새로운 '읽기'를 제안한다. 여기서 말하는 '읽기'란 언어 중심주의로부터 탈피하여 '이미지'로 생각하고 텍스트와 감각(자극)이 혼합된 새로운 형식의 읽기다. 덩굴식물이 살기 위해 제 주변의 자극을 '해석'하고 자극을 '읽으'며 줄기를 뻗어가는 생태계의 삶의 방식을 통해 지혜를 얻다.
그는 기후 위기는 자본주의 시스템 이전에 과거의 제국주의 침략, 식민지 지배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과거 ‘글로벌 노스(global north, 서구 선진국을 나타내는 개념)’가 식민지 통치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 아시아, 아프리카의 자원을 고갈하면서 인류세에 다다렀다고 말한다.
근대성에 대한 저항으로 마하트마 간디의 반산업자본주의, 중국·인도의 도교·유교·불교 전통 내부의 거센 저항으로 경제 개발이 늦어지면서 지금의 글로벌 노스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글로벌 노스의 상태 개념으로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개발 도상에 놓인 아시아·중동 등을 지칭)의 구조가 형성되었다. 현재는‘탄소 경제 권력집단’ 중심의 글로벌 노스가 정치적, 군사적 지배력을 통해 자국 혹은 개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가난한 국가와 사람들'이 위험에 노출되며 과거와는 다른방식의 제국주의가 현존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인위적인 경계를 강화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 시대 기후위기 대응 운동이 힘을 받지 못하는 이유로 부재중인 정치의 공적 영역을 짚는다. 더이상 공공의 복지나 ‘정치적 통일체' 집단적 의사 결정이 아닌 종교, 계급, 소수 민족, 언어, 성적 권리 등 ‘개인의 도덕적 모험'으로서의 정치가 발생하며 공통된 사회적 감각이 상실했다고 말한다. 또한 인터넷을 통해 정치영역이 개인화되며 분할되고 정보 수집의 민영화로 시민 감시가 정당화되고 있음을 주장한다.
최근 기후변화를 ‘도덕적 이슈'로 규정하는 것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수많은 다른 유의 호소가 기후변화와 관련한 행동을 끌어내는 데 먹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제적 기후변화 관료주의가 기후변화 이슈에 부과해온 경제적 언어 ‘비용, 이익'을 단호히 배격하고 개인적으로 선택한 생활 방식을 지적하는 프레임으로 ‘진정성’과 ‘희생’ 같은 것이 기후변화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진짜 책임져야 할 집단은 가려지고 있다. 기후변화의 규모는 더없이 방대하므로 집단적 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행동화하지 않으면 개인의 선택은 거의 무용지물이다.
최근 기후 위기 해결방안으로서 '탄소 경제 권력의 재분배'를 말한다. 하지만 권력 집단에게는 이데올로기를 유지하는 것, 즉 현상 유지가 생명의 보존보다 중요하다. 그들에게 기후변화 자체가 위험이라기보다 기존의 분열을 더욱 심화하고 수많은 갈등을 부추기는 ‘위협 승수'로서 모습을 띠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탄소 감축 조치의 최대 걸림돌이다.
2015년 5월에 발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는 기후변화의 원인은 인간이며, 성찰적 관점에서 ‘재앙' ‘재난' ‘빈곤' ‘정의'가 키워드로 쓰여졌다. 회칙은 ‘제한 없는 성장'을 비판하며 탄소 경제 이전 시대의 전통에서 지혜를 구한다. 빈곤과 정의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분리된 상태로 관리하거나 개선할 수 없다.
같은해 12월에 나온 <기후변화에 관한 파리 협정문(Paris Agreement)>는 기후변화는 인류 공통의 관심사이며, 기술 발전을 통해 기후위기가 해결될 것이라 믿고 있다. ‘부작용' ‘악영향'이 키워드이며,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유 무역 협정으로부터 빌려온 ‘가속화하는, 유망한, 권능을 부여하는 혁신, 이해 당사자, 예방적 해법, 기술 발전' 등의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또한 ‘기후 정의' 개념이 일부 사람들에게는 중요하다고 표현돼있다.
그는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대중 운동의 추동력으로서 종교적 세계관, 즉 ‘신앙'을 말한다. 종교적 세계관은 기후변화를 현존하는 통치 기관의 제약을 받지 않고 그러한 세계관은 국민 국가를 초월한다. 어찌보면 터무니없게 느껴지지만 기후 위기를 해결할 방법으로서 ‘기술'이라는 신앙을 믿고 있는 집단이 존재하고 있는 걸 보면, 현재로서는 ‘종교적 세계관'이 정말 약간의 희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후위기 앞 도서관
이미 도착한 기후위기의 시대, 기후위기에 함께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독서와 실천적 책 읽기를 모색합니다.
글쓴이 : 신영은 _ 문화연대 기후위기운동모임 ‘Still A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