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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ica n Dec 15. 2020

[서평] 저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나는 어땠을까?

<내가 힘들었다는 너에게>를 읽으며 돌아보는 '나'




책 <내가 힘들었다는 너에게>에서 신소영 작가는 그동안 자신의 직업(일)비즈니스 관계, 친구 관계, 가족 등 자신과 주변에 얽힌 일들을 회고합니다. 얼핏 제목을 보면 힐링에세이이거나 심리학 서적 같은 느낌이지만, 단순하게 요약해보면 작가의 작은 자서전처럼도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냥 작가 '개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작가가 다른 사람과 맺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 관계가 생기고 변화하는 과정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작가는 자신이 그 관계 속에서 겪었던 일들과 그 당시의 생각, 행동을 돌아보죠. 드문드문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대부분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책은 그렇게 1) 돌아보는 마음  /  2) 하루를 망치지 않도록  /  3) 인생의 더하고 빼기  /  4) 오래오래 정성껏, 네 장으로 나뉘며, 각 장은 다시 3~4페이지 분량의 이야기와 생각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실, 자신이 살면서 마주해온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때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제대로 돌아보는 것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더러는 자신이 옳았다고만 믿고 넘기거나, 아니면 무언가 잘못된 줄은 알지만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차마 열어보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작가 역시 서문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 속 관계'를 돌아보게 되었는지 밝히면서 시작합니다.


쓰지만 좋은 약이었다. 그런 일을 겪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도 '나는 100점'이라고 김칫국을 사발로 마시며 살았을 테니까.



 그리고 상당 부분은 당시 본인 생각에는 최선이었고, 적절했다고, 그럴만했다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어딘가 부족했거나 솔직하지 못한, 또는 비겁하기까지 한 것들이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정도에 따라 이불킥을 할 수준부터, 정말 용기를 내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기 어려운 일까지도 있죠.


 자신이 잘 대해줬다고 생각했던 일, 어쩌다 보니 다른 사람의 행복과 성공을 질투했던 일, 다른 사람에게 핑계를 전가한 일 등등..




"언니가 그만둔다고 하니까 솔직히 해방감이 느껴졌어요" 그녀의 말은 날카로운 칼이 되어 내 마음을 서늘하게 베었다. (중략) 당시 내 딴에는 많이 배려하는 좋은 상사라고 자부했는데, 그 '내 딴에는'이라는 말이 얼마나 일방적 배려의 생색인지, 그 시절의 나는 몰랐다.
 



"부장님 하고 출연자 하고 아직까지 수다 중이야.
왜 저러신다니 매번. 짜증나. 빨리 가야 하는데  정말 너무하네."
그런데 그 순간, 보낸 카톡 메시지 앞에 숫자 '2'가 눈에 들어왔다. 후배와의 카톡이므로 분명 '1'이어야 하는데.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그렇게 작가는 자신의 삶과 관계 속에서 스스로 느꼈던 일들을 덤덤하게 적어 내려 갑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렇게 해야 한다, 무엇은 틀린 것이다. 충고하거나 가르치려는 말,  심리학적 분석, 지켜야 하는 규칙,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상대방에게 했던 행동과 자신이 상대방으로부터 겪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도, 양쪽의 입장에서 각자의 행동을 어떻게 느꼈을지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가장 힘든 건 '심기 관리'였다. 나는 사장님에게 한 소리 듣거나 회의에서 깨지고 오면 '나 지금 화났어'라는 분위기를 뿜어냈다.  다른 직원들이 속으로 '왜 저래?' 하고 넘길 때 그녀는 나와 친하다는 이유로 그럴 수 없었다. 결국 내 심기 관리의 부담까지 지면서 감정 노동을 했던 것이다.


 위 상황은 각자 행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이 다릅니다.  첫 번째 문단은 작가가 동료에게 했던 일에 대해 스스로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내용이고,  두 번째는 자신을 비롯해서 여전히 감정적으로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제3의 인물에 대한 글입니다.



 ... 사실, 저 역시도 동료들을 잘 대하고, 감정 조절을 해내고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었고요.  물론 다른 좋은 방법이 있을지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은 했지만, 새롭게 찾아내지는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저 두 가지 상황을 읽었을 때, 저 역시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해졌고, 뒤늦게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꼭 저 상황에 대해서 뿐 아니라, 책의 여러 부분에서 그렇게 반성하는 일이 많았어요.



생각해보면, 나도 2,30대 때에는 비슷한 모습이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우울하거나 화가 나면 '나한테 말 걸지 마', '나 건들지 마'하는 기운을 온몸으로 드러내곤 했다. 내 감정과 기분에 빠져서 나의 감정 받이를 해야 하는 다른 사람이 어떤 기분일지는 헤아리지 못했다.



 작가 역시 풀리지 않은 감정이 잘못 응축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은 동료일 때도 있고, 가족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응어리를 가능한 원만하게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해서 관계를 이어가는지 몇 가지 이야기가 등장하는데요. 그렇게 한 번씩 솔직한 대화(표현)를 나눈 사람들과는 그 이후에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발전하거나 계속 관계를 이어나가는 모습들이 자주 보입니다.




돌아보면 그때는 후배도, 나도 서툴렀다. 내 입장에서는 워킹맘인 그녀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내가 얼마나 그녀의 일을 떠맡고, 또 그녀의 승진을 위해 얼마나 사장님께 어필했는지 (그녀는) 알 턱이 없었다. 후배 입장에서도 내가 알아채지 못하거나 차마 말하지 못한, 억울한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1년 뒤, 나는 어학연수에서 돌아왔고, 우리는 다시 만났다.
 



  생각해보면, 그의 진심을 믿으면서도 나는 늘 도망갈 준비를 했다. 매일 당하는 구박 루틴에 무뎌지지 못한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 표현에 솔직하지 못했다. (중략)
 어쩌면 나는 관계가 불편해지거나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솔직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을까. (중략) 한 번은 그 PD가 나에게 머리가 안 돌아간다고 한 적이 있다. 그 표현이 너무 굴욕적이었던 데다가 그동안 당한 게 쌓여 그 한마디에 폭발해버렸다.
 PD는 움찔하더니 그날 처음으로 나에게 사과를 했다.  

"그래. 나는 남들보다 반걸음 빠른 사람이고, 너는 반걸음 느린 사람인데 이런 우리가 만났으니 서로 힘들지."

 나는 그 말이 그 어느 때보다 위로가 되고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피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는 걸 보여 주었다기엔 너무 감정적이어서 밤새 "아놔"하면서 이불킥을 했다.



 그리고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통해 실제로 느낀 것들에 대해 다루다 보니, 작가의 자서전 같은 느낌도 있다고 했는데요.  비전공자로서 (방송)작가로 업계에 입문하면서 겪었던 일들, 만났던 사람들, 관계, 자신의 생각과 그 변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서도 우리에게 친숙한 이야기, 겪어봤을 만한 이야기를 다루기도 하니, 개인의 삶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금세 빠져들었네요.




(하루아침에 방송 프로그램 폐지를 통보받은) 김숙의 이야기를 들은 송은이는 너무 화가 나서 자기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고 한다.   "우리가 잘리지 않는 방송을 만들자."  그게 바로 팟캐스트 <비밀보장>이었다.



"방송연예대상을 보다가 너 생각이 났어. 울 소영이 내년엔 상 받는 거 봤으면 좋겠네. 그런 소원 하나 빌어봅니다."... 나조차 더 이상 꾸지 않는 꿈. 그래서 입 밖으로 내는 것조차 민망스러운 일을 꿈꾸다니. 너무 오랜만에 들어보는 판타지 같은 격려에 순간 멍해지더니 원인 모를 눈물이 났다.
 



"섭외가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다 알잖아요. 아는 처지끼리 도와야죠."
이심전심. 그분은 똥줄 타는 그 마음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후반에 접어들면서는 '중고' 신인으로서 새로운 일, 프로젝트, 새로운 영역과 분야에 대한 공부, 도전에 대한 이야기, 삶에 대한 태도와 생각의 전환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아무래도 삶에 대해 다루는 작가로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민하고 생각했던 것들이 차곡차곡 잘 쌓였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네요.




 바쁜 와중에도 성실하게 답변하고, 약속한 바를 지키려 애쓰는 모습이 보이는 사람. 그리고 제작진이 미안할 정도로 성심껏 준비해주는 사람은 두고두고 고맙고, 그 마음이 오래간다.
 



실력만큼 중요한 것이 태도다. 아니, 태도도 실력이다. 정말 많은 말을 한다. 그 사람의 글보다, 말보다 훨씬 더 많은 메시지를 전하고 그에 대한 인상을 만든다.



 작가는 그렇게 미안한 마음으로 괴로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하고 보다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한 도전도 멈추지 않습니다. 그리고 보다 성장한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놓쳤던 것들을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잘못되었던 관계와 과정을 다시 건강하게 풀어가는 이야기들도 등장합니다. 작가의 경우, 아빠와의 관계가 유독 그랬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엄마와의 관계는 작중에서 또 다른 의미로 변화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때 아빠는 몹시 서툴렀다. 그리고 아빠의 서투름을 이해하기엔 난 너무 어렸다.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 아빠도 서툴다.
... '나는 왜 덕선이처럼 아빠한테 내 마음과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화라도 내볼걸.'   만약 그랬다면, 아빠도 덕선이 아빠처럼 "미안해. 우리 딸이 좀 봐줘"라고 말했을지도 모를 일이었고, 나도 당연히 봐드리지 않았을까. 아빠도 잘 몰랐던 것뿐이라는 걸, 어른도 서툴러서 실수할 수 있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 책의 다른 한축은 단순히 작가로서의 삶뿐 아니라, 오랜 친구, 지인과의 관계, 부모님과의 관계, 음지와 양지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 프리랜서 작가라는 위치와 삶 속에서 갈고닦은 생각입니다.  여기에는 작가의 전작 <혼자 살면 어때요? 좋으면 그만이지>(2019, 출판사 놀)에 나오는 것처럼 미혼비혼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읽어볼 수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자신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리고 당시의 행동에 대한 회고라는 게 자칫 잘못 쓰면 무슨 변명이나 반성문이 되어버리거나, 부치지 못한 편지도 무엇도 아닌 수취인 불명의, 누구도 읽고 싶어 하지 않는 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내용이 상대방은 물론, (책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특히 제삼자가 읽었을 때 말이죠.



 소설이 아닌데 누군가에게 자연스럽게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생각을, 그것도 자신의 삶에서 추려 전달한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느껴서 그런 모양입니다.  요새 소위 '라때(는 말이야)'라고 치부되는 대다수의 이야기들이, 본래 의도와 다르게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까닭에 더욱 대단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 공감하기 어려운 이유이거나 직업의 특수성, 의식의 흐름으로 인한 점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매 관계마다, 다루는 이야기마다 독자가 생각하지 못했거나 놓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을 일깨워줘서, 제가 한 잘못을 알게 돼서 부끄러워지는 때도 있었고,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웠던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러면서 함께 잘 풀어내고 다음 과정으로 나아가는 이야기에 감탄을 하기도 했고요.



 저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되는 말, 용기를 내서 다시 사람들에게 사과를 구하고 관계를 이어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해 주는 글들, 삶에 대한 생각이 잔뜩 담긴 책이었습니다.  네, 이 책은 표지에 적혀있는 조그마한 문장처럼 '돌아보는 태도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런데 참, 사람 사이라는 게 쉽지가 않죠. 저도 막상 이후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막막합니다.


 그래서 작가는 무턱대고 상대방에게 모종의 강요를 하는 게 아니라, 차분히 다시 생각하고, 자신을 반성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넘겨짚지 않고 대화를 해보려고 노력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잘못한 것들, 그래서 나로 인해 힘들었다는 상대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서요.




 익숙하지 않은 낯선 일들을 하거나 낯선 세계에 발을 디딜 때, 우리의 생각은 환기가 된다. 빡빡하게 조여진 마음이 풀어진다.
 내 시야를 덮고 있던 것들이 걷히면 내가 머물던 세계 너머를 보는 시야를 갖게 된다. 내 삶의 지경이 넓어지는 건 당연하다.
 그럴 때마다 무기징역수의 표정도 한 꺼풀씩 벗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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