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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ica n Dec 27. 2020

[서평] 삶과 일에서 번아웃이 올 것 같다면

대충은 아니고, 꾸준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이 책을 어떻게 읽게 되었냐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를 처음 손에 잡은 건,  올해 7월 한여름이었다. 어딘지 익숙한 서평화 작가의 그림과 낯설지 않은 제목이  도서관에서 나의 걸음을 붙들었던 것이다.  


원래 도서관에서 빌리러 갔던 책은 <내가 원하는 걸 나도 모를 때>와 몇 권의 다른 작품들이었는데,  사실 '무리하지 않는다'는 행동은 살면서 해보지 않았던 터라  나에게는 '적당히 하는 것'으로 들렸다.(그것도 좋지 못한 방향로)


그런 내가 이 책을 고른 것은 심경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사실 다른 책도 마찬가지였고..



그동안 내 삶은  자신의 온갖 에너지와 노력을 부어가면서 모든 것에 헌신했던 시간들이었다.  요즘 '영끌모'라고 표현하는 그런 방식.   일이 그랬고, 팀 프로젝트와 동료, 지역에도 마찬가지였고, 사랑하는 사람들, 아껴마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그랬었다.



그렇게 달려왔던 시간들이 문제였는지, 아니 그것보다 몇 가지 부작용들이 나타난 것처럼  올해 많은 일들이 생겼다.  열심히 노력했던 행동이 실제로도 좋은 성과를 거둬서 함께 고생한 사람들과 잘 나눴고, 다음 단계를 고민하고 준비하기도 했는데,  자의였든 아니든 일을 하면서 틀어졌던 사람들, 시기하는 사람들로부터 갖은 공격이 들어왔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 없다'는 말에 가기도 전에, '문제는 문제라고 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식으로 궁지에 몰렸고, 열심히 노력했다고 생각한 행동들에 대한 악의적인 공격이 동시 다발적으로 생기니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올해는 특히 누구나 다 그랬던 것처럼 다사다난한 고비를 하나씩 넘기고, 정리해가던 사이에 이 책을 만났다.  사실, 이 책을 처음 만났던 시점에만 해도, 한 숨 돌렸다고 생각했고, 금방 다음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다음, 무언가 하나를 집중해서 매듭을 짓기 전에 또 다른 일을 벌이러 서둘렀고, 결과적으로는 (일단) 실패했다.  제 풀에 고꾸라진 것도 번아웃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여하튼 그렇게 털썩 주저앉은 채, 무방비 상태로 7년 만의 차가운 겨울을 느끼며 이 책을 다시 펴게 되었다.





책의 계절적 시점은 봄


 이 책의 느낌을 한 계절로 비유하자면 사실 가을보다도 봄에 가까운데, (여름은 결코 아니고) 저자는 마치 가을과 겨울 사이 어디 즈음의 시점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만큼 겪었던 일들도, 떠오르고 정리한 생각들도 많아서 일까.  한데, 저자는 '오래오래 좋아하기 위해' 꾸준히 걷고, 글을 쓴다.


 그래서 이 책은 참 차분하지만,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자포자기나 현실안주와는 거리가 먼 셈이다.  그래서 더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이 책의 내용과 의도가 여느 농담기 없을 것 같은 위로거나,  괜찮아 다 잘될 거야 식의 대책 없는 긍정은 아니겠거니 했지만, 생각보다 예상하지 못한 곳들에서(심지어 몇몇 글은 제목에서부터) 피식하거나 빵 터지게 만다는 포인트들은 덤.  이것도 이 책을 오래오래 잘 읽으라는 작가의 의도려나.  이 말도 농담이다.


 작가가 여느 작품보다 힘을 빼고 썼다는 이 책처럼, 꼭 계획된 게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도 그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작가 스스로도 작 중에서 온갖 '흑역사'들을 꺼내 보이며,  조언을 하는 것도 어렵고 그것을 고집할 생각도 없음을 밝힌다. 그게 어찌나 술술 읽기던지.



 그렇다.  이 책의 수식어는 "오래오래 좋아하기 위해"다.


책을 찬찬히 읽으면서 나의 삶과 행동들이 참 강약 조절이 없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자신의 삶에 충실하는 것, 마중물을 잘 관리하는 것, 재충전하는 것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책의 수식어처럼 무언가를 오랫동안 하기 위한 꾸준한 노력, 은근한 노력에 대한 이야기들도 주를 이룬다.



 그동안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무언가를 관철시키고 더 잘해보려고 하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았었다.  물론 드문드문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다 서로 잘 살아보자는 걸 텐데', 평생 안 볼 사이처럼 싸우고, 악담을 하고, 아등바등 살려고 했을까,  그런 생각도 들기는 했지만 자주는 아니었다.




봄에 산책하며 떠올리는 생각,  

그 봄은 바로 한 차례 사계와 겨울을 나고 난 다음의 그것


 이 책은 다섯 개의 길을 걸으며 산책과 어우러지는 사색 같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 60이 되어서도 장화를 신어야지   /   내일도 별일 없기를   /   중요하지 않지만 필요한 시간  /   걷다 보니 그렇게 된 것뿐   /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


 이야기는 마치 걸으면서 정리하는 생각, 출발하기 전에, 어딘가 앉아 쉬면서, 집으로 돌아와서 하는 생각처럼 이어진다.  실제로 산책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한 번의 산책처럼 나누어 읽기에도 좋은 분량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딱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마흔 번이 넘는 계절을 지내온 작가가 당신과, 당신이 앞으로 지향하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덤덤히 꺼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책에서 저자는 과거 속 기억, 자기 자신, 가족과 지인, 현재의 삶에 대한 에피소드를 화두 삼아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간다.  <맥시ㅇㅇ의 신세계>(54p)  <스웨터 철학>(102p)같이 안과 밖으로 입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실제로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오고>(46p)처럼 기간을 겪으면서 든 생각들도 있다.


 유독 작년 말과 올해 금전적인 문제에 치이면서 비로소 다시 생각하게 된 현실적인 고민을, 작가는 <나에게 100만 원이 생긴다면>(65p)나 <더 나은 코트>(28p)처럼 생각했다는 점도 와 닿았다.




 작가는 무엇을 위해, 우리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꾸준히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한다.


 이는 책 속의 한 단락의 소제목이기도 하지만, 이 책의 전체를 아우르는 제목이기도 하다.  해당 에피소드는 저자 부부가 딸의 진학을 위해 시험을 준비하면서 생기는 일을 다루면서 시작한다.   각자의 속도가 다르고 숨의 길이도 다른데(그리고 다리 길이도), 스스로에게 맞는 방식으로 꾸준히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리고 그것은 허투루 대충 한다는 식의 무책임한 행동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위해, 주변 사람을 위해 가능한 것부터 차근차근 오래오래 노력하는 꾸준한 활동이다.  간단한 스튜나 찌개를 끓이는 것처럼, 날마다 운동을 가는 것, 새벽에 산책을 나서는 것처럼.  일상에서부터 성장과 변화를 위해 삶을 충실하게 실천하는 의식이자, 다짐이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좋아하는 만큼 더 잘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조급하게 서두르지도 않고,

지치지 않도록 천천히 오래 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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