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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ica n Nov 28. 2020

싸이월드라는 블랙박스의 기록

흑역사도 우리의 소중한 기억이니까


생각해보니 나이대별로 온라인 채널을 다르게 사용했었다.


초등학생 때엔 PC통신으로 모임을 했었고(그렇게 깊진 않았지만) 그다음 중학생 때에는 인터넷 게시판과 세이클럽, 고등학생 때엔 친구 따라 개인 블로그를 시작했다가, 대학생 새내기 때 과대표의 추진력에, 좀 버티다 결국 싸이월드를 가입했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불특정 다수와, 또는 정말 몇 안 되는 친한 동창들 (그것도 거의 날마다 보다시피 하는)과 취미에 가까운 의사소통을 했었는데 대학생에 들어서부터는 지금 SNS에 버금갈 정도로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할 것 없이 많은 이들이 서로 일상과 과시를 주고받는 용도로 싸이월드를 썼었다.


나는 그곳에서 아직도 철이 들지 않은 반 중2병 상태로...

혼자만의 세계에 틀어박혀있으면서 또 한 편으로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모순된 중간지점에 있었다. 숨기고 싶어 하는 것 같으면서 또 온갖 이야기와 생각에 대해 혼자만의 문법으로 글을 남겨놓았다.


2005년부터 2006년의 기록은, 초기 미니홈피 글이기도 하고, 더 상태가 오락가락했던? 시기여서 그랬는지 대부분 글이 없었고(아마도 비공개로 해놓은 모양), 블로그 형식으로 개편된 2007년부터 2011년까지는 온갖 기록들이 남겨져 있었다.



 사실 싸이월드 서버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접속을 했는데. 역시나 로그인은 되지 않았고(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추리해내는데만 한두 시간을 쓴 것 같다). 전체 공개로 작성된 글과 사진들을 추렸다.  몇 개 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그리고 그냥 추억을 되짚어볼 요량으로 잠깐 들렀던 거였는데,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남겨놓았다.


 얼마나 사회와 체계에 대한, 그리고 사람에 대한 불만이 많았는지,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나는 글도 있었고... 휴학하고 나서 일을 배우러 다녔던 이야기,  어떤 작가님의 강연을 듣고 적은 말,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올려놓은 음악(당시 싸이월드에서는 유통되지 않던 외국/인디), 관심 있는 사람은 잘 찾아보거나 맞춰보라는 식의 반쯤 수수께끼 같은 글도 있었다.


 정말... 어차피 시한부지만 이제는 지울 수도 고칠 수도 없는 흑역사, 중2병에 찌든 글들이었지만, 그때 당시 어떤 일이 있었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을 떠올리는 소중한 기록이었다.

그리고, 그런 뒤틀리고 일그러진 사람의 채널에 어렵게 어렵게 게시판을 찾아 안부를 물어본 사람들의 연락이 있었다. 그런 소식들에 답변이라고 내가 달아놓은 글을 보고 있자니, 참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더라.  그때 나는 대체 왜 그랬을까



 비공개 글들은 지금의 나는 읽을 수 없고, 소실되어버릴 기록들이 되었다. 아마 정말 유치뽕짝이거나, 중2병을 아득히 초월해버린 기록들이겠지만, 그럼에도 그 모습들을 다시 열어보지 못한다는 게 아쉬움이 크네.  혼자만의 기록도 있겠지만, 그 당시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던 사람들과의 기억이 없어지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 사람들을 좀 더 소중히 대하고 그 기억들을 잘 간직하는 거였는데... 뭐 마냥 미화시키기만 해선 안 되겠지만, 지나고 나면 어쨌든 추억이지 않나.

찾을 수 있던 기록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단순한 추억을 넘어서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과거여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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