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 질문이 먼저 나갈 수 있기를
2025년, 한국 장편영화는 칸영화제에서 단 한 편도 초청받지 못했다.
이 조용한 탈락은 단지 초청장 한 장이 오가지 않은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한국 영화가 축적해온 상상력과 내적 역량의 균열을 드러낸다.
<기생충>의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수상이 정점이라면,
그 이후 우리는 스스로를 어떻게 갱신하고 있었는가.
연상호, 김미조, 김병우는 외면받았고, 박찬욱과 나홍진의 신작은 완성되지 못했다.
새로운 세대는 여전히 진입 장벽 앞에서 맴돌고 있다.
칸의 무응답은 우리 영화가 더 이상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지 않다는,
침묵 속 비평이기도 하다.
CGV의 ‘Next CGV’ 프로젝트는 AI, 몰입형 콘텐츠, 공연 중계 등
영화관을 다기능 복합 공간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하지만 우리는 물어야 한다. 기술은 감정을 대체할 수 있는가?
스크린은 단지 큰 화면이 아니라, 감정의 공간이었다.
야구와 콘서트가 자리를 채우고, AI가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이야기와 감동은 점차 밀려나고 있다.
영화관이 기술을 품되, 본질을 잊지 않을 때만 진화는 의미를 지닌다.
더불어민주당은 K-컬처를 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세액공제를 확대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콘텐츠는 수출품이 아니라 감정과 윤리의 집합이다.
정책은 성장만을 말하지만, 예술은 방향과 질문을 요구한다.
봉준호와 홍상수는 정책이 아닌 주변에서 시작했다.
K-컬처가 진정한 소프트파워가 되기 위해선
다른 목소리, 실험적 시선, 실패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투자보다 신뢰가 먼저다.
2024년 여성 감독들의 영화가 흥행 성과를 거두었다.
벡델 테스트 통과율은 역대 최고였다.
그러나 여전히 촬영감독 중 여성은 없다. OTT에선 더욱 후퇴했다.
카메라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말하는지의 문제다.
한국 영화가 진정한 다양성과 평형을 추구한다면,
누구의 이야기가 중심에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지금 한국 영화는 산업·정치·기술·젠더의 겹겹 위기 속에 놓여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다시 상상할 수 있는가’이다.
자본보다 감정이 앞서고, 기술보다 질문이 먼저 오는 세계.
그곳에서 우리는 영화라는 예술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