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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다은은 Nov 12. 2024

[소설] 티시포네 프로젝트 15화

15화. 강사의 유대인 강의


강사는 4월의 마지막 주가 일 년 중 가장 산뜻하다며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 강의실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이, 한층 더 마음을 가볍게 했다. 며칠 동안은 미세먼지가 온 세상을 흐리게 덮었지만, 오늘만큼은 하늘이 깨끗이 씻겨 내려 맑고 화사했다. 이제 다가오는 5월은 이보다 더 청명한 푸른빛이기에, 새롭게 움트는 싹처럼 그의 가슴과 심장을 채워주었다.


4월의 은은한 생명력이 5월의 선명한 빛깔로 점점 바뀌어 가며, 몸과 마음 모두가 맑은 바람에 스치는 듯 건강하게 나풀거렸다. 자연이 품은 순백의 에너지가 그의 살갗을 간질이며, 햇살 받은 그의 입 안 혀에도 생기를 더해 주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로마에서 기독교가 공인된 역사 이래로 유대인에 대한 탄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죠. 기독교에서 신봉하는 예수를 부정했거니와 처형하도록 부추긴 자들이기에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강사는 수업 내용을 근대와 현대에서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유대인의 굴곡진 역사가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압박을 행사했던 그들은 이후 고난의 삶이었다고 할 수 있겠죠. 이런저런 통치와 유럽 전체를 다스렸던 기독교 영향 아래에서, 그야말로 핍박받았던 게 그들의 역사라 하겠죠. 그렇게 버텨온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형제애로, 고난 뒤에 구원이 도래하리라는 확신 하에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형성시켜 왔던 것이죠.”

학생 중에는 열성적인 기독교인도 있을 것이었다. 우리나라 국민 중에서 열에 둘은 기독교 신자였다. 강사는 강의를 준비하면서 기독교를 어떻게 언급하는 게 효율적일지 항상 고심했다.


“유대인이 유럽에서 혐오와 증오의 대상이었던 사례는 여러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말엽 프랑스에서 있었던 드레퓌스 사건을 아시는지요. 필체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진범이 따로 있다는 증언이 있었는데도 그에게 간첩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했던 사건입니다.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 유명하죠. 드레퓌스를 변론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프랑스 여론은 거의 반반으로 나뉘며 극심한 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드레퓌스는 유대인이었던 겁니다. 의도된 정황이 있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유대인이 예수를 사형하도록 앞장섰기로서니 전 유럽에서 박해받아야 했을까요.”

강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학생이 답변을 내지른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죽인 거잖아요. 죄 많은 인간을 구원하고자 왔는데, 그걸 부정하고 죄를 저질렀으니, 박해는 당연하지 않을까요.” 강사는 아, 그래 너로구나. 이런 생각이 물씬 끼쳐왔다. 어디선가 들을 수 있는 특유의 톤이었다. 암송이라도 하는 것처럼 들렸다.


“여기서 짚어보려는 것은 유대인의 실제 삶이 어떠했는가, 바로 그겁니다. 기독교로부터 배척받으면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죠. 그들은 자신들을 위한 울타리를 견고하게 만들어 척박한 세상에서 살아가려는 삶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좀 전에 주 예수를 두둔했던 학생의 표정이 남달랐다. 무언가 신을 거역하는 말이 나오면 곧바로 치고 들어오겠다는 태세로까지 보였다.


“유대인들은 생업으로 상업과 고리대금업에 종사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는 당시 유럽인들이 꺼리던 업종이었죠. 왜냐면, 성경 구절에도 나오는데, 남의 재산을 탐하지 말라, 이자 놀이를 하지 말라. 그러니까 기독교는 고리대금을 금지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재밌는 게 있어요. 구약에는 형제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취하는 고리대금업을 금하게 되어 있는데, 여기서 형제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규정할 것인가?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는지요.”

강사는 이 질문에서 반응이 어떻게 갈릴지 궁금했다. 그리고 어디에든 깊숙이 관여하는 자가 항상 존재하기에 더욱 그랬다.


“기독교 의미에서 형제가 맞는 거지요. 우리는 모두 형제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 살아가는 인간 모두를 포함하거든요.” 그렇게 특정의 누군가가 할 수 있는 당연한 대답이 들렸다.

“그럴까? 다른 의견 있는 사람.” 살짝 미소 지으면서 학생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혹시… 자기들로만 한정하지 않았을까요. 그게 왜냐면, 기독교만이 유일한 형제요 자매다. 이렇게 해석 할 수도 있으니까요.” 강사는 들으면서 고개를 살짝살짝 끄덕였다.



“여러분들 중에 읽어봤을지 모르겠는데,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 유대인이 등장하는 것과 결부해서 이 주제를 논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거 같고요.”

학생들 사이에 수군거리는 음성이 강의실을 잠깐 맴돌았다. 아마도 어떤 작품인지 선뜻 알아채지 못하는 눈치임이 틀림없었다. 사실 그 소설을 읽었다 해도 그 작품에서 유대인이 누구인지까지 살피거나 유념하지는 않았으리라. 누구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다행인지, 수군거림은 금방 멎고 대답이 깔끔하게 나왔다. 강사는 맞장구를 치며 설명을 보태주었다.


“그래요. <베니스의 상인>이죠, 방금 대답이 나온 것처럼. ‘피 한 방울도 없이 살점을 떼라.’ 이 판결로 유명하죠. 물론 픽션 속에서 이루어진 내용입니다만. 그런데 그 작품에서 누가 유대인으로 나오던가요. 기억나요?” 강사는 질문을 던졌다. 강의실이 아까보다 더 어수선해졌다.


“누구니?”라며 학생들은 좀 전에 답변했던 이에게 시선을 던지면서 물었다. 이런 장면이 한편으로는 초등학생들 교실처럼 우스꽝스럽다는 느낌에 강사는 멋쩍게 웃었다. 분위기가 잠시 산만하더니 조금 전 답했던 학생이 슬그머니 말했다.


“그게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지만, 워낙 오래전에… 아기였을 때 읽어서요.” 이 말이 터지자, 학생들은 웃음바다를 헤엄치듯 팔까지 휘둘렀다.

“이름이 뭐였더라?” 학생은 기억을 되살리지 못하면서 우물거렸다. 강사는 ‘샤일록, 안토니오’라고 입술을 움직거렸다. 읽었다고 하니 기억해 낼 수 있으리라 보았다.


“아 그래요. 안토니오가 채무자, 샤일록이 채권자였죠. 둘 사이를 기독교인과 유대인이라는 갈등으로 대립시킨 게, 지금 생각해 보니 셰익스피어의 구상이 원래 있었던 게 아닌가… 예, 그런 생각이 드네요.” 그러자 주위에 앉은 학생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아마도 읽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며 뽐내기 위해서인지도 몰랐다. 태반은 미처 읽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요. 특정 인종이나 종교를 대립각으로 구성한 작품이 분명하지요. 이 작품을 집필한 게 17세기 직전일 텐데, 이미 그 시대에도 유대인에 의한 고리대금업이 성행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그로 인한 일련의 갈등, 더하여 유대인에 대한 증오나 배척이 완연하지 않았을까, 그걸 간파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학생들의 얼굴이 싱싱해지고 있다는 게 읽혔다. 강사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문학이 어우러지면서 이해를 돕고 재미까지 더해지는 것이 자연스레 호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요소가 조화롭게 연결되니, 흥미가 더욱 커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짚어보았다.


“그렇게 가도록 만든 결정적 사상이 바로 선민의식입니다. 무슨 뜻인지 알죠? 선민의식. 오로지 자신만이 구원의 대상이 되리라는 확신입니다. 이게 유대인이 홀대받았던, 디아스포라의 결정적 요인이랄 수 있고요.” 암송하듯 발언했던 학생의 얼굴이 더욱 환해졌다. 강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길목에 서 있다는 생각으로 강의를 지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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