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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다은은 Nov 13. 2024

[소설] 티시포네 프로젝트 16화

16화. 거듭 실행되는 프로젝트


첫날 모였을 때, 누구보다도 강변의 말이 가장 드셌었다. 불만이 많았고, 건배가 몇 차례 진행되자 심하게 흥분한 상태로 변했다. 사건 당시 자신의 감정이 절제될 수 없을 정도로 솟구쳤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에 못지않게 얌체 운전자를 더더욱 괘씸하게 몰아붙였다. 티시포네의 다른 누구보다 더 극성스러웠다.


시혼은 그냥 그런 성격의 소유자라고 치부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에게 뜻밖의 사정이 있을 줄이야 나머지 회원들은 짐작하지 못했다. 그의 비관적인 신변이나 벼랑 끝과도 같은 인생의 굴곡은 오로지 세운을 독대하는 자리에서만, 얘기를 했을 뿐이란다. 회원들의 속사정은 완벽할 정도로 함구 되었다. 비밀이 유지되어야 하는 조직일수록 더욱 그러했다.


강변은 고금리 대출을 이용하고 있었다. 무리한 사업 확장이 화근이었다. 더군다나 동종 업종의 경쟁이 과열되면서 출혈만 심해지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영업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원래의 투자금이나 권리금마저 손해를 보면서 겨우 버티고 있었단 얘기다.


주춤세는 멎지 않고 희망이라는 기세는 날로 문드러져 갔다. 그에게는 최악의 상황이었던 셈이다. 어떤 때는 기본 생계비조차 뽑을 수 없는 매출일 때도 다반사였다. 문제는 빚 독촉까지 시달리면서 거의 폐인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 채권자를 처단하는 극단의 생각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방법은 딱 하나 있었다. 그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면 빚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으리라는, 절박할수록 외곬 같은 판단에 매몰되었다는 것이다. 세운한테 이런 처지를 고백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의도적인 프로젝트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세운은 그에게 다른 회원이 알지 못하도록 입단속을 강요하면서 단단히 으름장을 놓았단다. 둘만의 철칙으로 만들었다.


그날 이후 강변은 생계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다. 누군가를 추적하며 온 시간을 매달렸다. 바로 채권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프로젝트를 발동했다. 강변은 국도를 한창 달리는 중이었다. 확인한 결과, 나머지 회원들이 목적지까지 적절한 시간에 당도하기에는 거리가 제법 멀었다. 딱 세 명만 결합해도 프로젝트가 가동될 수 있다는 게 세운의 계획이었다.


결합할 회원이 어렵게나마 확보되었다. 드론은 이미 강변의 차량 상공을 순회하고 있었다. 저수지가 인접한 곳에서 실행되는 것이었다. 일명 저수지 프로젝트, ‘저프’였다. 우리 차 한 대가 반대 차선에서 달려오도록 했다. 그리고 시버 차량의 좌측에서 주행하다가, 그러니까 역주행이었다. 충돌하기 직전 시버 차량 앞으로 급하게 피해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때, 상대 차량이 급하게 우측으로 회전하리라는 걸 노린 거였다. 그곳이 바로 저수지였다. 관건은 차량을 압박하며 속도를 얼마만큼 끌어 올리느냐에 달렸다. 이를 위해 후방에서 강하게 압박하고, 좌측에서 줄기차게 붙어서 주행해야만 했다. 타깃이 우리보다 빠르게 달린다면, 일은 망치는 거였다. 차량 통행이 드문드문한 늦은 밤이었다.


국도에서 이보다 더 좋은 계획은 없을 거였다. 강변은 타깃의 차량을 줄기차게 압박하며 거리를 적정하게 유지한 채 달리는 중이었다. 어느새 목적지 부근에 다다랐다. 전방에서 달려오던 차량의 라이트가 번쩍였다. 거리가 점점 좁혀지면서 드세지는 경적만이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었다. 찰나일 수밖에 없었다. 좌측에서 달리던 차량이 우회전으로 꺾으며 차선을 넘어갔다.


현재 시버 차량의 속도는 최적이었다. 후방에서 달리던 강변은 그의 익사를, 평소와 다르게 하느님 아버지를 불러가며 통렬할 정도로 애원하고 있었다. 굉음에 이어 급제동하는 타이어의 마찰음이 사방을 뒤덮었다. 어느새 국도는 밤의 정적을 다시 찾았다. 나머지 회원은 2차 프로젝트, 저프의 성공을 흡족해했다.     




시혼은 저녁을 간단히 해치우고 잠시 쉬고 있던 참이었다. 벨이 울렸다. 이 소리는, 몸이 반사적으로 빠르게 전화기를 찾았다. 그룹 통화가 작동하고 있었다. 곡절이었다. 그가 상황을 알렸다. 차분함을 잃지 않으려고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지만 거센 숨소리는 감춰지지 않았다.


목표가 된 차량의 운전 행태를 간략하게 얘기하면서 현재 위치와 대략의 경로를 알려주었다. 누구보다도 세운의 결정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곡절은 실행 여부를 애타게 물었다. 세운은 정상적인 드론 비행이 가능한 구역이라고 답했다. 프로젝트 발동을 알리는 신호와 마찬가지였다.


그러더니 모든 상황을 재취합한 후 구체적인 실현 프로그램을 빠르게 기획하겠다며, 그동안 차량을 놓치지 말고 상황 보고를 수시로 할 것을 당부했다. 시혼은 지인들과 술자리에 와 있다며 거짓으로 답해버렸다.

나머지 회원들이 모두 참석할 수 있다고 밝혔기에 문제 될 것도 없었다. 이렇게 제3의 프로젝트가 구동되는가 싶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프로젝트는 중단되고 말았다. 이 사실을 오프라인 모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앞 전 프로젝트가 다소 난처한 결과를 초래할 뻔했습니다. 매번 성공하라는 법은 없다지만 이런 일 저런 일이 발생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미리 방지하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운이 상황 보고와 더불어 자기 생각을 전하고 있었다.


“근데, 지금도 궁금한 게…? 동생이랑 같은 집에 살더라도 차 번호까지 기억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어떻게 바로 알았는지…?” 곡절이 조심스러운 눈초리로 혼자 말하듯이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그 시선이 부각에 닿았다. 뭔가 의심이라도 하는 것인지, 서로 마주하는 눈빛이 곱지 않았다.

시혼은 아직 사태 파악이 되지 않은 채로 모든 얘기가 서둘러 나와 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부각이 난처한 기색을 버리려는 듯 억지웃음을 지으면서 답했다.


“저라고 그런 것까지 세세하게 기억하고 다니겠습니까. 불과 얼마 전에 동생이 새 차를 뽑은 데다, 보셨다시피 번호가 머리에 들어오기도 쉽잖아요. 그래서 그날 프로젝트에서 한참을 따라가다 보니, 익숙한 번호와 차종이더라고요. 야, 이거 혹시. 그래서 바로 전화를 했던 거죠.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확인이 된 겁니다.”


시혼은 여기까지 얘기를 듣고는 어떤 상황이 전개되었는지 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다. 그런데, 번호를 전혀 몰랐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까. 아마도 모두는 시혼처럼 비슷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저는 그 현장으로 막 달려가면서 여자라고 하기에, 야, 이거 간단하게 해치울 수 있겠는걸. 뭐,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강변은 무언가 아쉬움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리송한 말투와 표정을 온종일 굴려 보려고 작심한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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