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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다은은 Nov 14. 2024

[소설] 티시포네 프로젝트 17화

17화. 어리석은 폭력 유발


강사는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들을 다루면서 단순히 표면만 스치고 지나가는 강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진정으로 가르치고자 한다면 사안의 외피를 벗겨내, 감춰진 본질을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특히 중동의 복잡한 갈등과 그 이면에 얽힌 역사적이며 정치적인 맥락을 학생들이 스스로 궁금해하고 질문을 펼쳐나가며 이해의 폭이 넓어지기를 바랐다.


학생들이 단순히 강의를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발언과 토론을 통해 감춰진 흑막을 하나씩 들춰내기를 기대했다. 그러면서도 강사는, 미학적 접근으로 이 사태를 더욱 생동감 있게 전달하고자 준비했다. 사태의 본질을 파헤치는 동시에 내면에 깃든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 아픔을 예술적으로 조명함으로써 학생들이 사안을 더욱 체감할 수 있기를 원했다.


이렇게 다각적인 접근이 과연 학생들에게 효과가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는 강의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닌, 본질을 탐구하는 장이 되기를 희망했다.


“인류사 예술의 영역에서는 미와 추가 어느 하나로 완수되거나 귀결되지 않고 늘 마주하며 진행됐습니다. 마주했다는 것은 대립이거나 보완이겠죠. 그렇듯이 우리 삶의 영역은 선과 악이 상충하며 갈등을 유발하고 증폭과 일정 정도의 해소를 제공하며 굽이굽이 살아왔던 겁니다.

이것은 우리 인류의 태동 이래, 항상 유지되어 온 철칙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미와 추를 어디가 먼저인가, 또는 어디가 인류에게 이로웠는지를 장단으로 선명하게 재단할 수 없을 겁니다.

이처럼 선과 악도 미묘하게 분자로 나뉘며, 이 낱낱의 분자를 누가 조합하고 취득하느냐에 따라, 또한 체제와 지배력이 어디에 주안점을 두느냐에 맞춰 선이 악으로, 악이 선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강사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수업을 이었다.


“독일의 현대 지성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철학자가 나치에 복역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그걸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갑론을박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이는 또한 신나치즘의 득세와도 무관할 수 없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니체의 철학과 바그너의 음악이 나치 하에서 어떻게 유용되었는지도, 이게 여전히 논란 속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봐야 할 겁니다.”


둘 다 실존 인물이었다고는 하지만 학생들이 온전히 알기에는 부족할 수도 있었다. 나중에 따로 찾아보면서 적당하게 이해하기를 희망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니체의 철학과 바그너의 음악까지 들어가기에는 시간의 제약을 무시할 수 없었다. 욕심을 부릴수록 아쉬움은 서글픔으로 전환된다.


“유대인이 이스라엘 국가를 세우는 과정에서, 그리고 그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 벌인 인접 중동 국가들과의 전쟁, 또한 여전히 전개되고 있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탄압. 가자지구. 이런 모든 사례를 열거하노라면, 그토록 오랜 역사의 흐름에서 자신이 겪었던 상흔을 다른 인종에게 고스란히 전가하고 있다는 불우한 사실을 체념하게 됩니다.

오로지 멸망한 국가를 재건하고 자신의 안위를 추구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데, 신으로부터 구원받으리라는 그들의 선민의식은 오히려 그들만의 세상과 삶을 추구하면서 배타심만을 키우는 것은 아닌지, 씁쓸하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하다고 여겨집니다.”

강사의 톤에 감정의 곡선이 그려지고 있었다. 강의에 집중시키기 위한 나름의 복안이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쉽게 지치기도 했다. 그러나 능숙한 자제력으로 다시 평정의 톤으로 회복하게 되었다.


“이런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살핀다면, 현시대에 동의하고 있는 나치즘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단죄, 이것만이 과연 최선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물론 나치즘에 대한 동정과 이해를 구해야 한다는 견해는 절대 아닙니다. 잘 새겨주기를 바랍니다.”

유대인이 벌이고 있는 학살을 본격적으로 다룰 단계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나치의 범죄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못 박고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족 같은 말을 덧붙여 준 것이었다.




“질문 하나를 해보겠습니다. 우리의 일제 강점기를 비롯한 한국의 근현대사를 논할 때, 흔히 상충하는 견해가 있고, 이 대립점을 간단하게 명료화시켰을 때 제시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만. 경제 강국으로 가기 위한 인프라를 구축했다는 성과로 일제의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는 경향입니다. 이 논조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요?”

강사에게도 중동은 사실 먼 나라였다. 그는 현실과 맞닿아 있는 지점을 찾아내어 이를 수업과 연동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사유와 판단을 요청하는 데 훨씬 수월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면서 더욱 핵심을 건드리는 강의를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런 인프라를 얘기하자면, 식민지 시절에 건설된 철도는 일본 제국주의가 중국을 비롯한 중원으로 확장하려는 방식의 일환이었겠죠. 그리고 유신시대의 수출산업 육성이나 경제 성장은 군사독재 체제를 연장하려는 발판으로 사용된 거고요.”

한 학생이 간명하게 답변했다. 간혹 이렇게 명료한 답을 술술 풀어놓는 학생이 있기도 했다. 강사는 자신의 강의에서 얻을 수 있는 소득 중에 하나라고 인정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도식적으로 평가하면 여전히 닭과 달걀을 두고 어느 게 먼저인가를 따지는 세기의 논쟁에 머무를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제국주의의 확장과 경제 성장이 함축하는 인류의 현대사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단 겁니다. 수많은 전쟁을 거쳐 현재의 시스템이 구축된 거잖아요. 또한 당시 남한의 경제도 그런 과정을 통과한 건데, 인접 국가들과 더불어 고도성장이 가능했던 시기였던 겁니다.”

강의가 우리의 현대사로 자꾸 들어가는 게 스스로 못마땅했지만, 거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사는 구태여 이런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면서,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왔다.


“약간 샛길로 빠졌는데, 주제로 들어가겠습니다. 가장 최상위 표면으로 드러났던 사태만을 악으로 규정하고 처벌한다고 했을 때 내면에 잠재된 악행들은 자연스레 망각하거나 합리성을 확보하게 됩니다. 게다가 그 행위들은 지금의 체제에 안주하거나 상보성을 유지하면서 발전한다는 겁니다. 그들에게 정당성을 제공하는 것이죠.

수구적인 사상이나 정치는 성공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무기로 삼아 사상적 발판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각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심리적 기반은 오만이라는 것도 함께 말입니다.” 강사는 칠판에 단어를 꾹꾹 눌러썼다.


D U M M H E I T


“나치에 복역했던 그 철학자는 훗날, 자신을 둠 하이트, 어리석었다고 술회했습니다. 여기서 주체는 누구일 것이며, 과연 무엇을 고백하는 것일까요? 참여했던 개별자로서의 자신, 아니면 나치즘이라는 전체? 우리는 이런 모호함 속에서 하나의 결말이나 단언으로부터 전부를 판단하는 우를 범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사람은 저마다의 범죄 앞에서 슬기롭게 도주할 수 있는 웅변, 당당한 자기 변론을 마련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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