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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다은은 Nov 19. 2024

[소설] 티시포네 프로젝트 22화

22화. 시혼의 무기력한 이중성


우리는 정말로 취해 있었다. 화끈하게 성공한 프로젝트였다. 단순한 성취감이 아니었다. 매너 없는 운전자가 득실거리는 현실을 언젠가는 일소시키리라는 확신마저 심어지기에 충분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경험했던 보복 운전으로 벌어진 살인이나 신체 강탈로 인한 티끌만큼의 죄의식은 소멸하거나 심지어 배상받는다고 느꼈다.


이런 기분에 취한 채 며칠이 지나고 있었다. 타깃 차량의 운행 경로를 경찰에서 세밀하게 수사했다고 한다. 결론은 운전미숙이었다. 이번에도 우리의 프로젝트는 준비에서부터 결과까지 완벽했다. 모든 게 각본처럼 착착 진행되고 있으니, 회원들은 새 삶을 얻은 것처럼 견실해지고 있었다.


허세가 커지는 것처럼 매일 매일 자신감이 부풀어 올랐다. 그냥 넘어갈 수 없었기에 누가 먼저 말할 필요도 없이 오프라인 모임이 성사되었다. 한창 기분 좋은 대화만이 넘실대고 있었다.


회원들이 들뜬 표정으로 성취감을 나누고 있을 때, 시혼은 홀로 깊은 고립감을 느꼈다. 그들 사이에 넘치는 자부심과 자신감은 점점 더 그의 내면을 어둡게 물들이고 있었다. 연거푸 이어지는 축하와 자화자찬이 그에게는 점차 멀게만 들렸다.


이번 프로젝트가 완벽히 마무리되었다는 자랑이 나올 때마다, 그의 마음속 불안은 더욱 짙어졌다. 한때는 자신도 함께 들떴던 순간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낯설고 괴롭게만 느껴졌다. 더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들 앞에서 쉽게 말을 꺼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강변이 상당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제 우리 그만 접어도 되지 않을까요.”

어눌한 말투에 긴장이 바짝 들어가 있었다. 그러자 세운이 무지막지하게 내쏘았다.


“무얼 접는단 말입니까. 이걸 왜 우리가 해야만 하는지 통렬하게 되새겨보기를 바랍니다. 단지 억울해서, 그런 겁니까? 당하기만 하고 그냥 넘어가자니 허전해서, 그런 겁니까? 이게 다였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모이지도, 모일 필요도 없었겠지요. 그냥 혼자서 분이 풀릴 때까지, 그렇게 야구방망이 휘두르면 되니까요. 그런데 그게 더는 안 되니까, 그랬다간 사회적으로 매장되니까. 다른 방법을 찾고자 모인 게 맞겠지요.

그리고 잘 모인 겁니다. 우리는 방법을 찾았고 공유할 수 있게 되었고, 곧바로 실행도 했습니다. 고도의 술책과 장비도 확보하면서 말입니다. 혼자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단 5명이 모여서 매번 성공했다는 겁니다. 참으로 뿌듯하지 않습니까. 성인이 된 이후로 대학에 합격하거나 취업에 성공하거나, 그와는 확실히 다르게 와 닿는 뿌듯한 경지에 올랐다는 걸 모르십니까? 맞지 않습니까!”


단 한마디도 끊이지 않으며 혀가 꼬이거나 새는 발음도 없이 정제되고 결기가 담긴 그의 능변은 선동의 기운으로 단단했다. 좌중을 하나로 묶는데, 특히 강변의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는 데 충분하다 못해 넘쳐 흘렀다. 말을 마친 세운은 시혼의 판단과는 달랐던 모양이다. 강변을 따로 데리고 나갔다.


분위기가 침착하게 어두워졌다. 시혼은 강변이 프로젝트를 그만두자는 발언을 꺼냈을 때, 내심 동조하면서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못한 채 침묵을 지켰다. 그 순간마다 속에서는 불안과 동요가 꿈틀댔지만, 그저 묵묵히 입을 닫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그들의 대화 결과를 예측하기보다는,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는 수동적인 존재로 남아 있었다.


얼마 후 세운과 강변이 환한 웃음으로 들어왔을 때, 시혼은 그 웃음의 의미를 해석하지 못한 채, 오히려 움츠러드는 자신을 느꼈다. 그들의 다짐과 결의가 웃음 속에 담긴 것이라면, 자신은 그 결의로부터 한참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걸 짐작할 뿐이었다.


시혼은 다시금 흐릿해진 판단력 속에서 허접한 웃음만이 공간을 메우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세운이 무슨 말로 다독였을지 알 수 없었다. 강변이 동화된 것인지, 아무튼 둘은 엄청 환하게 웃으면서 들어왔다.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고 기다리던 모두는 덩달아 웃음 속에 빨려 들어갔다.


“우리 티시포네도 조직을 확장해야지 않을까요?”

강변의 느닷없는 의견이었다. 좀 전과 완전히 다른 반응인지라 세운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당황스럽고도 움찔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반사 신경이 빠른 곡절이, 상황 파악도 빠른지 적절한 타임에 맞불을 놓듯 말했다.


“그래야죠. 충분히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 같던데요. 우리 온라인 카페 말입니다. 이제 적극적으로 물색해 봐야겠지요.”

그의 말이 끝나자, 세운은 손을 저으며 제지하고 나섰다.


“카페는 아직 이르다고 판단합니다. 그보다는 집단이 있으니까요.”

이렇게 단언했다. 분명히 집단이라고. 한두 명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모두의 얼굴은 의아한 눈빛을 숨기지 못하면서 지레 흥분하거나 우려스러운 기운으로 범벅이 되어버렸다.


“수입 자동차나 스포츠카를 개조해서 굉음으로 질주하는 사람들, 왜 가끔 언론에서 다뤄주고 있잖아요. 그들을 포섭해 보려 합니다. 전투기의 소음처럼 세상을 쪼갤 것 같은 광란과 분노가 담겨 달려가는 질주. 아, 곧바로 우리의 계획에 합류시키는 건 아닙니다.

그들은 뭔가 과시적이고 소모적인 행동에 머물러 있지 않던가요. 우리의 유익한 프로젝트에 동참하게끔 설득해 보려고 합니다. 리더와 접촉하려고 합니다. 적당한 인맥이 있으니 이른 시일 안에 미팅이 성사될 겁니다. 그렇게 만나서 대화가 이루어지면 충분히 동조하리라 확신합니다. 그러면 조만간 합류하는 게 가능할 테고요.”


세운이 정제된 화법으로 뜻을 전하자, 회원들은 이미 확약이 되었다는 반응으로 기대감을 드러냈다.


시혼은 지금의 분위기에서 가슴 한구석이 무겁게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굉음을 내며 도로를 질주하는 무리가 티시포네에 합류한다는 상상만으로도 불안감이 고조되었다. 과연 그들은 한순간의 쾌락을 좇는 데 그칠까? 절대 그럴 사람들로만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가진 광기와 분노가 조직에 들어오는 순간, 댐이 무너질 때 밀려오는 물결처럼 통제 불가능한 파괴가 일어나리라는 염려가 너무도 컸다. 세운은 그들의 잠재적 에너지를 ‘유익한 프로젝트’에 합류시킬 수 있다고 말했지만, 시혼은 그 에너지가 언제든 티시포네의 취지를 넘어서며, 조직을 아예 삼켜버릴 수 있다는 생각만이 머리에 가득했다.




시혼은 티시포네의 출발이 그저 복수에 불과했던 행동에서 점차 다른 욕망과 뒤얽혀 폭주하는 기계가 되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자기 판단력과 이성이 오히려 무뎌지고 있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프로젝트 일정이 거듭되고 게다가 몸집이 커지면, 적발되고 말 일이었다. 시혼의 불안감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균열처럼 그의 내면에서 점차 확고하게 자랐다.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과연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끝까지 함께 갈 수 있을까?’ 시혼은 이런 생각에 몰두하며 분위기를 잠시 벗어나게 되었다. 세운이 그를 두 차례 불렀을 때야 상황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가 시혼의 눈빛을 살피더니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급작스럽게 답변하게 되었지만, 전혀 준비했다거나 생각하지 않았던 말이 튀어나왔다.


“우리의 계획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서 인적 자원의 수를 확장하는 거에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모든 프로젝트는 의미도 상당하기에 개인 일정을 포기하더라도 합류했던 건데, 이게 매번 가능할지 자신할 수 없었거든요. 모두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프로젝트 실행을 위해서는 최소 규모의 필요 인력이 정해져 있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 5명이 거의 참가해야 했던 거죠. 우리 조직원이 많을수록 이에 대한 부담은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겠습니까.”

시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곡절도 질세라 한마디 거들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 보는데, 즉각적인 합류가 우리 프로젝트의 생명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시혼 님 지적대로 항상 제시간에 달려와야겠죠. 이왕이면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프리하게 생활하는 자유로운 사람에게는 훨씬 유리하겠죠.

방금 세운 님이 계획하는 그 사람들, 대다수가 그런 성향이라고 미루어 짐작됩니다. 우리 티시포네에 아주 딱 맞는 사람들이라고 보이네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혹시라도 우리의 프로젝트가 어떤 식으로든 범죄화 된다고 했을 때, 그들처럼 막강한 재력이 방어막 역할을 해준다면 강력한 처벌조차도…….”

곡절의 말이 급하게 끊겨버렸다. 나머지 회원들의 표정이 더러워진 것을 눈치챈 것이었다. 역정이라도 내기 일보 직전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러자 세운이 즉각 제지하고 나섰다.


“우리의 행동은 범죄가 아닌데, 왜 그런 뉘앙스로 표현하시는지…? 생각하는 게 아직 우리의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했나 봅니다. 우리는 절대로 잡히지 않습니다. 이번처럼 확실한 루트와 협업이 동반된다면 모든 감시카메라와 블랙박스로도 포착할 수 없는 완전히 독립적인 주행이 되기 때문입니다.

곡절 님은 뭔가 두려운 거라도 있나 본데, 재고 해주기를 바랍니다. 혹시, 불안하다거나 동참의 의사가 변한 거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사실대로 밝히십시오. 우리에게는 합당한 처단이 항시 준비되어 있다는 걸 잊지 마시고요.”


분위기가 삽시간에 냉기로 가득 찼다. 곡절은 듣는 내내 온몸이 쪼그라들고 있을 정도로 위축되었다. 그러고는 자신감을 완전히 잃은 사람처럼 혼자만 알아들을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뭐라고 웅얼거리는 것이었다. 사람들 얼굴에 한심하다는 표정이 짙어졌다. 강변이 큰 소리로 말하라고 다그쳤다.


“아, 제 생각이 틀렸다고 실토합니다. 괜히 쓸데없이,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다가 엉뚱한 쪽으로 틀어진 겁니다. 조심하겠습니다.”

자아비판의 시간이 따로 없는 격이었다. 시혼은 점점 뼈가 굳어지는 불길함이 쑥쑥 자라는 걸 확연하게 느낄 뿐이었다. 이것이 단지 자신의 감정이 아니라, 모두에게 깃든 솔직한 반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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