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철학이라는 척박한 길
“우리가 악의 전선에 놓이게 될 때, 역사는 항상 답을 던져주고는 했습니다. 정의를 갈구하는 노력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교훈을 남겼습니다. 이러기 위해서 쉼 없이 성찰하라는 요청인 거죠. 자신이 어떠한 위치에서건 사유하라는 겁니다. 그럼, 무엇에 대한 사유인가요?”
학생들 사이에서 뭐든 짤막한 답이라도 나올 수 있도록 생각거리를 던졌다. 아니나 다를까, 몇 명의 학생들에게서 간단한 답이 터져 나왔다. 애석하게도 강사가 원하는 답은 들리지 않았다. 겉으로만 빛나는 간헐적인 답변이 허공을 맥없이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아쉽지만 여러분들에게서 제가 원하는 답은 들리지 않는군요. 여기에서 사유란, 적어도 제가 분별하는 바에 의하면 세상과 연계되는 모든 현상에 대한 부단한 접근이나 몰입을 위해 꾸준하게 질문을 던지라는 겁니다.” 말을 하면서 칠판에 ‘세상-관계’를 큼직하게 써 보았다. 그러자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강사와 눈이 마주치자 한 마디 의견을 던졌다.
“그게 모호할 수도 있지 않던가요. 자신마다 놓인 자리가 세계로 인식되는 경향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단적인 예로 내가 만일 나치의 일원이 되었다면 거기가 세계의 전부이고 그로부터 관계를 사유하게 된다는 거, 이게 도식처럼 늘 따라붙지 않을까 싶은데요.”
강사는 학생의 말이 끝나자, 교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살피지도 않은 채 반박과도 같은 견해를 거침없이 날렸다.
“여기에서 말하는 세계란, 단순히 철학적 사유의 영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존재와 본질을 규정하며,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모든 현실의 범주를 아우르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들만이 세계의 전부는 아닙니다. 오히려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것들을 의심하고, 그 의심을 되돌아보는 작업, ‘이것이 전부일 수 없다’라는 강렬한 확신이야말로 진정한 세계를 향한 성찰의 시작이겠지요.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세계와는 다르면서, 아직 존재하지 않는, 어쩌면 애초에 없었던 세계를 상상하고 구현하려는 시도입니다. 즉, 우리는 본질적으로 기존의 세계에 도전하며, 동시에 그 너머에 숨겨진 가능성을 찾으려는 모색의 과정에 있습니다.
이로써 인간과 세계의 관계는 고정된 게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로운 척도를 궁리하는 질문이 되어야 합니다. 세계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끝없는 물음이자, 자신을 새롭게 규정해 나가는 인간 존재의 중심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기존의 틀을 깨고,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과 만날 수 있게 됩니다”
강사는 자신의 목소리가 제법 딱딱하다고 느끼고 있었으나 쉽사리 평정되질 않았다.
“그런 걸 누구도 만든 적이 없지 않았나요.”
맨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조금은 난해하다고 여기는지 고분고분한 말투는 아니었다. 철학은 그렇게 실행된 적이 없고 밝혀지지 않은 영역을 끊임없이 파헤치는 일이라는 걸, 어쩌면 그런 지점을 놓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학생이었다. 다른 학생이 뒷자리 학생의 말이 엉뚱하다 싶었는지 의견을 내비쳤다.
“그 철학자가 나치의 겁박에 못 이겨 협력했다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왜 그랬는가, 최고의 사상가인데….”
정리가 되질 않았는지 엉성하게 말을 끝냈다. 애매한 분위기가 잠시 이어지더니 창가 쪽에서 한 여학생의 답변이 들렸다. 고심의 흔적이 역력하거니와, 그래서 책의 한 페이지를 완성하도록 만든 구절처럼 다가왔다.
“강사님이 말씀하시는 세계와 관계를 존재와 시간으로 연결해서 읽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 철학자는 자신의 사유적 열정을 국가라는 틀에 적용하고자 했던 게 아니었을까요. 결국 역사나 인간의 본연성에 대한 사유는 늘 해박했을지언정, 뭔가의 결여? 이러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표상에 집착한 결과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네요.”
강사는 흐뭇한 표정으로 여학생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근접한 생각을 보여준 학생이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철학이 자기 본연으로 질주하지 못한 채 현실의 구체적인 사안에 몰입된다면 어떤 비극을 초래하게 되는지 간명하게 보여준 사례라는 게 저의 정리된 생각입니다. 또한 전쟁 이후에 그를 구명하기 위해 애쓴 학자들에 대한 추가적인 의문이 생성되기도 합니다.”
아까 여학생이 뭔가 말을 하려다 말고 수줍게 웃고 말았다.
“우리가 폭력을 폭력으로 사유하지 못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논조와 정당성을 취득하는 순간, 가해의 공범자라는 굴레를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가 통과한 역사는 이렇게 극단의 사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시 여학생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 철학자에게는 그의 사상 못지않은 정치가이자 연인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둘의 관계가 평탄하지 않았던 만큼 공유했던 사유는 궁극적인 결과를 추구하지 못한 꼴이 되어버렸잖아요. 누구든, 아니 오로지 철학자만큼은 철학으로, 현실에 덧대지 않는 열정으로 사멸하는 게 옳지 않았을까요.”
그 답변 내용이 결국 강사 안에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니힐리즘을 건드리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저 여학생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 동기나 지적인 연애 심리가 발동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학생을 잠시 곁눈으로 쳐다보았다. 표정이 시무룩했다. 강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잠시 숙이고 있었다. 오늘의 수업 내용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