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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다은은 Nov 17. 2024

[소설] 티시포네 프로젝트 20화

20화. 점점 커지는 결정


시혼은 티시포네가 네 차례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서, 자신감이 상당히 붙은 것을 느꼈다. 프로젝트 요청에 곧바로 대응했거니와 상황마다 역할을 적재적소에 맞추어 수행하는 모습에서 그들은 이미 일종의 체계를 갖추었다. 사실 이러한 집결과 파괴력은 불과 두 번의 프로젝트 만에 안정적으로 만들어냈다. 이런 움직임과 규합력이 새삼 놀라웠다.


그러나 동시에 불안감도 엄습해 왔다. 오프라인 모임이 잦아지면서 보안성은 점차 희미해지고, 도를 넘는 과감한 요구들도 점점 겁 없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어쩌면 자신들이 설정한 한계를 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혼은 문득, 이렇게 가다간 터질 수밖에 없는 장난감을 조작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박동치고는 했다.


“사실 고액의 보험금 수령을 위해 의도된 살인 행위도 더러 있잖아요. 우리도 그런 걸 응용해 보면 어떨까요?” 곡절이 상당히 조심스러운 뉘앙스로 얘기를 꺼냈다. 앉은 자리에서 흐느적거리던 사람들은 순간 당황하면서 주변 시선을 의식했다. 모두는 온몸이 바짝 움츠러들었다. 혹시라도 주변 테이블 사람들이 흘려듣기라도 할까 봐 지레 긴장했다. 그러자 세운이 즉각 대화를 중단시키며 나섰다.


“그런 문제는 자리를 봐가면서 해야 하겠지요. 어떠신가요. 얘기를 더 진행하는 것에 동의한다면 지금 바로 장소를 옮기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나가자는 신호나 진배없었다. 시혼은 주춤했다. 범죄 조직이 업종을 확장하는 거와 같다는 판단이 온 가슴을 내리눌렀다. 그런데도 나머지 회원들은 아무 죄의식도 없이 따라서 일어났다. 도대체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겁이 덜컥 몰려왔다. 시혼은 생각을 이렇게 하면서도 주저 없이 의자를 밀어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혼은 곡절의 한 마디에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감각을 느꼈었다. ‘고액의 보험금 수령을 위해 의도된 살인’이라니, 방금까지 웃고 떠들던 사람들이 이렇게 무서운 말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저 장난처럼 시작한 모임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 끝이 보이지 않아 두려웠다.


시혼의 내면은 복잡한 감정들로 소용돌이쳤다. 자리를 옮기자는 세운의 제안이 떨어지자마자,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혼은 그들의 태연한 모습에 더욱 큰 공포를 느꼈다. 이들은 정말로 아무런 죄의식 없이 이 길을 쭉 이어갈 태세인가.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범죄 조직이 갈 길을 넓히듯, 티시포네가 본래의 의도를 벗어나 더 어두운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확신이 가슴을 짓눌렀다. 그는 문득 자신이 그들의 계획 속에서 하나의 부속품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마저 훅 끼쳐왔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의자를 밀고 일어났지만, 내면에서는 두려움과 혼란이 얽히며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버거웠다. 시혼은 주위의 모든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자신만 이 현실에 붙잡혀 있는 것처럼, 무거운 불안이 그를 짓눌렀다.


“응용한다면, 타깃으로 삼은 자동차에 우리 중 하나를 의도적으로 추돌 되게끔 만든다는 거잖아요.”

새로운 장소에서 주문한 음식이 세팅되고 서빙 직원이 물러가자, 세운이 기다렸다는 듯이 포문을 열었다. 처음 화제를 던졌던 곡절이 술잔 안의 술을 지그시 바라보며 부드러운 촉감에 젖어 있었다. 시혼은 곡절의 표정을 살폈다. 긍정적인 결론이 나오기를 남모르게 염원하고 있을 그의 눈빛이 두려웠다.


“물론, 우리 팀워크라면 충분히 그 정도의 추돌사고를 유도하면서 깔끔하게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상당한 위험부담을 감내해야 하거든요. 자 봅시다. 그렇게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다음 절차는 어떻게 진행될까요. 보험사만의 조사로 간단히 마무리된다면 좋겠지만, 때에 따라서는 경찰까지 개입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는 거죠. 여차하면 우리 중 한 명으로 시작해서 팀 전체가 드러나거나 발각될 여지가 크다는 겁니다.”



세운이 가장 현실적인 지점들을 짚어주었다. 모두의 침묵이 길어졌다. 시혼은 자신이 예상했던 말이 아니자, 오히려 섬뜩해진 기분이 일렁였다. 잽싸게 세운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실현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몰두인지, 왜 이런 위험한 상황까지 벌여야 하는지에 대한 의심인지, 구별되지 않았다. 어정쩡하면서도 묵직한 고요가 흐르고 있었다.


“자, 민주적인 절차로 우리의 선택을 확인하면 어떻겠습니까?”

세운은 주목을 이끌기 위해서 시작하는 말에 손뼉으로 탁자를 살짝 내리쳤다. 그렇게 팀원의 시선을 모으고는 활기찬 목소리로 말을 덧붙여나갔다.


“처음에 우리가 모였던 날, 기억하시죠. 우리 중에서 제시되는 계획이나 의견이면 적극적으로 수용하자, 우리 모두 하나의 몸처럼 배제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였습니다. 기억들 하시죠.”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걸로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지 뻔히 알면서도 이견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계획만큼은 우리가 애초에 동의했던 수위에서 사뭇 다르지 않나요. 우리의 행동이 직접적인 보복이되 우리가 그 사고와 직접 관여되지 않도록 하자는 게 있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거였지요. 그러나 곡절 님이 제안하는 것은 거기에서 나아가 어떤 금전적인 이익까지 취하자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이게 세운 님의 말씀대로 위험한 부분도 있거니와, 이게 단 한 차례로 그칠 것인가? 이것도 문제로 보이고, 더군다나 다른 방식으로 확대되어 버린다면 걷잡을 수 없게 될 겁니다. 이건 엄연히 범죄이고 게다가 누적되면, 꼬리가 길면 적발되는 겁니다.”


시혼은 있는 힘을 쥐어짜듯 조목조목 짚어 나갔다. 사리에 맞는 설명을 하니 모두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아까의 침묵보다도 더 침울하게 깊어져 갔다. 그도 그럴 것이, 보험금 청구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신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일이었다.


토끼몰이에서는 주변에 배치된 차량이 우연히 주행하는 것처럼 가장하여 아슬아슬하게 알리바이를 생성할 수 있었다. 반면 보험금을 수령하기 위한 차량은 주행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추적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인접했던 차량의 주행도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사고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다면, 이런 내용쯤은 모두가 헤아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쉽사리 멈출 기세가 아니었거니와, 이미 시혼의 말은 빈 술잔에 잠겨 숨도 못 쉬고 있었다. 이런 틈에 세운은 집요하게 논의가 지속되도록 부추기고 있었다.


“일명 보험 프로젝트라고, 줄여서 보프라고 해봅시다. 이걸 우리 팀이 결행하는 것에 대해 완벽하게 반대한다면 더 이상의 논의는 필요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적발될 위험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주저한다면, 이에 대한 적절한 대비책을 완비하면 되지 않겠는가, 이게 제 견해입니다.”


시혼은 들어보나 마나 한 상황이라는 걸 직감 했다. 실행을 담보로 논의가 진행되는 꼴이었다. 그러니 대비책을 마련하자고 물꼬를 터준 것과 다름없었다. 실행 자체를 거부했던 것이 아니라, 혹여 있게 될 불상사에 대한 두려움, 이걸 해결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5명이다.


집단이라고 하기에는 적은 숫자일지도 모르지만, 의견이 통일된다면 뭐든 할 수 있는 막강한 조직이었다. 충분한 동기가 부여되고 전원의 합의가 마련되면 어떤 프로젝트마저 가능한 조력자들이었다. 보프를 실행하지 말자며 반대하는 이가 없었다. 그러자 논의는 급물살을 타며 신속하게 내달렸다.


이번 프로젝트는 타깃 차량의 견적을 우선 산출하며, 우리 중에서 피치 못한 상황 때문에 보험금을 수령하려는 자의 자원을 받는 절차를 수립했다. 또한 실행을 결정하되, 상당히 제한적으로 전개한다는 것을 전제로 했다. 우리의 신분이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회원이 입원했다고 병문안은 진행하지 않는다며 못을 박았다. 규약을 수립하듯 세운이 주도하고 있었다. 자금이 급박하게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시도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하자는 걸 그가 새삼 강조했다.


“이렇게 하면 그야말로 명료하고 깔끔하게 정리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확신으로 가득한 그의 결정이 테이블을 굳건하게 디뎌냈다.


시혼은 더는 어찌 해볼 수 없다는 걸 자각하면서, 이 지점에서 어떻게 대응하거나 합류를 거부할 것인지 보편타당한 사유를 찾기 위해 궁리에 매달렸다. 우선 극도의 혼란에서 벗어나야 했다. 생각만이라도 그러해야만 했다. 이들은 점점 더 치밀하게, 그러나 위험하게 조직을 구축하는 중이었다.


보험금 수령이라는 명목 아래 진행되는 이 계획은 이미 단순한 복수를 넘어섰다. 시혼은 더는 발을 뺄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그의 마음에는 뚜렷한 두려움이 자리 굳건해질 뿐이었다. 어느새 그는 이 판에 깊숙이 끌려 들어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테이블에 편하게 자리 잡은 다른 이들과 달리, 시혼의 마음은 조각조각 흩어지고 있었다. 세운이 규약을 확립하고 철칙을 강조할 때마다, 시혼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이 결정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다시 보편타당한 이유를 찾으려 애썼다. 그렇지만, 그 어떤 생각도 불안감을 덜어주지 못했다.


“보프 요청자와 타깃 차량만 사고가 나도록 진행할 겁니다. 이왕이면 경미 한 사고보다는 블랙박스가 파손될 정도로 만들어야 합니다. 보프 운전자는 사고에 대한 여러 시뮬레이션을 여러모로 구상하면서 사고 경위를 예측하셔야 할 겁니다. 아무리 고가의 보험금을 노린다지만, 적당히 잘 다쳐야 할 테니까요.”


세운의 말이 끝났다. 모두는 표정을 감추었다. 오히려 처음에 제안했던 곡절이 심드렁해져 있었다. 일부러 저러는 게 틀림없다고 시혼은 생각했다. 세운은 도대체 무슨 꿍꿍이로 저러는 건지 헤아려지지 않았다. 위험성이 높다는 걸 누구보다 세밀하게 파악하고 있을 텐데, 저 여유로운 표정이 해석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의심이 파고들어 왔다. 곡절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 중에서 이런 유사한 요청이 없으리라 자신하는 태도인가. 아니면 누구의 어떤 요청이든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일까. 시혼은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 하면서, 세운의 결정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혼자만의 아비규환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러더니 순간적으로 허탈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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