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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다은은 Nov 16. 2024

[소설] 티시포네 프로젝트 19화

19화. 중동에서 세계를 만나는 거


강사는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중동 문제를 깊이 파고들며 강의에 몰두하고 있었다. 유대인의 역사와 그들이 겪어온 오랜 갈등을 차근차근 짚어 나가고 있었다. 그는 이 사안이 국제정세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지를 누누이 강조했다.


강의실을 둘러보며 그는, 학생들이 단순히 사건과 숫자로 기록된 역사를 넘어서서 그 이면에 담긴 갈등의 뿌리와 복잡한 배경을 이해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특히, 학생들이 선입견 없이 문제의 본질을 바라보며, 미디어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를 희망했다


 그에게 이 수업은 단순한 역사 강의가 아니었다. 학생들이 현시대의 갈등을 이해하고 각자의 목소리로 균형 잡힌 관점을 만들어가도록 진심 어린 소망을 담았다.


“유대인의 유랑 생활은 기원전 고대 로마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삶의 신조, 그중 하나를 <탈무드>의 일화에서 확인할 수 있기도 한데요. 뜨거운 물을 마시게 된 어린아이가 깨달은 바가 무엇이었는지 아나요.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이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황제의 흉상이 새겨진 화폐마저 우상숭배라며, 이걸 두고 유일신 하느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매도했던 그들입니다.”


강의가 다소 지루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 확 끼쳐왔다. 학생들의 눈동자는 흐린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듯, 생기가 사라진 채로 떠돌고 있었다. 강사는 그들의 흩어진 시선을 붙잡기 위해, 잠시 방향을 틀어 약간의 곁가지 이야기를 던져보기로 했다.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맑아지길 기대하며, 조심스레 화제를 바꾸어버렸다.


“그들 중 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유대인 내에서는 이들을 마라노(marrano), 그러니까 ‘돼지 새끼’ 혹은 ‘더러운 사람’이라고 부른다더군요. 박해를 피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종교를 버렸다며 매도하는 거죠. 그러나 여전히 유대교 의식을 남모르게 지켜나갔다고도 합니다.”

강사는 이제 다시 현재의 시점으로 넘어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미국이 공식 인정해 주었던 게 2017년, 기억하시죠. 20세기에 중동에서 아랍인과 이스라엘인의 첨예한 대립을 조장했던 연유로는 영국의 이면 합의가 있었고요. 이후 유엔의 수장 격이었던 미국에 의해서 고착되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그 영향력이 이스라엘 국가 건설에서부터 현재까지 닿아 있는 거죠. 이렇게 한쪽으로 쏠리게끔 미국을 움직이는 동력은 뭐일까요? 미국과 이스라엘, 둘 사이에 합일되는 그거. 어쩌면 적어도 중동을 둘러싼 현대의 역관계를 확정하는 것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확실히 반응이 바로 느껴졌다. 아무래도 미국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서일 것이다.


“여러분, ‘유대인이 미국을 움직인다.’ 이 말을 상당히 많이 들어봤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명칭 들어보셨는지요.” 강사는 학생 모두를 휘둘러보더니 스펠링 하나하나를 힘주어 말했다.


A I P A C


학생들은 모르겠다며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누군가가 알겠다는 것처럼 대답했다.


“아, 미국과 이스라엘 공공위원회인가 뭔가, 그거 아닌가요?”


“예, 맞습니다.” 강사는 맞장구치듯 응대했다. 학생들은 그제야 알겠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참, 엄청난 단체라고 하던데요.” 창가 쪽에 있던 학생이 거들었다.


“강력한 로비 집단으로 발전해 왔는데, 유대인이 이것을 설립한 시기는 2차 세계대전 직후입니다. 그때 미국이 조금이라도 빨리 전쟁에 참여했다면 홀로코스트로 인한 사상자를 줄일 수 있었다는 뼈아픈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랍니다.”


강사는 지금의 중동 사태를 미국과 이스라엘이 확고한 공조가 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단정했다. 국제사회도 이런 사실을 인지한다지만 어찌해볼 방도가 없기도 했다. 강사는 이런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는 게 유효할지를 오래도록 고심해 왔던 터였다.


“실로 막강한 집단이 아닐 수 없죠. 미국이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정책을 유지하고 확장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겁니다. 이들은 미국 의원들의 활동을 데이터에 기반해서 점수를 매기기도 하니까요. 자기들에게 얼마큼 우호적으로 활동했는지에 따른 점수인 거죠.

이게 가능한 힘은 뭐겠습니까. 예, 바로 재정입니다. 회원들을 통해 엄청난 금액의 기부금이 안정적으로 확보되고 있으니까요. 이게 제가 알기로는 미국 정부를 움직이도록 만드는 로비자금일 겁니다.”



이런 내용쯤이야, 어쩌면 두루뭉술하게라도 들어 봤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통속적인 진단이라고 보는지, 싱거운 표정을 던지는 학생이 많았다.


“중동의 사태에서 가장 표면적인 원인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배 권력의 정치적 패권 때문입니다. 그들마다 공고한 지배력과 장기 집권이라는 욕구 때문에, 전쟁을 지속하는 기저의 힘이랄 수 있답니다. 이런 가운데 상호 간에 보복과 증오는 상승 작동을 벌이고 있는데, 여기에서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도록 중심을 견지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라 하겠지요.”


국가 사이에 벌어지는 여러 격전을 티브이 뉴스로만 해석해서는 오산이었다. 그렇기에 강사는 자신의 수업이 객관적인 분석과 논조를 갖추는 데 보탬이 되어야겠고, 또한 확신도 있었다.


강사는 학생들의 싱거운 반응을 가만히 지켜보며, 역사가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는 점을 환기해 주어야겠다는 판단이 더 묵직하게 와닿았다. 그에게 역사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해서 미래에 투영되는 과정이며, 인간의 욕망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힘의 흐름을 읽어내는 일이었다.


지금도 이어지는 중동 분쟁을 그저 권력 다툼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여러 민족의 기억과 상처가 고스란히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 고통과 긴장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각국의 역사적 선택과 각 민족의 고유한 상처들이 겹겹이 얽혀 있는 문제였다. 강사는 이 사실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강사는 오랜 세월 쌓인 중동의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빈번한 사태들이 단순히 강대국의 이해관계나 외교정책의 산물에 그치는 게 아님을, 더욱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중동의 사태는 그의 눈에 전통적인 역사적 갈등이 현대의 권력과 금융 자본에 의해 다시금 재구성되며, 시공을 초월한 긴장의 연속으로 보일 뿐이었다.


강대국들은 각자의 이익을 위해 중동의 민족적 갈등을 조장해 왔다. 그렇게 해서 얻는 경제와 정치적 이익은 겉으로는 현대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는 고대부터 이어져 온 패권주의의 연장선에 불과했다. 그는 학생들이 종합적인 역사적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기를 바랐다. 자국의 이익에 눈이 멀어 타국의 고통을 도구화하지 않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추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역사가 단순히 과거가 아니라, 이 순간에도 살아 숨 쉬며 우리의 현실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확신했다. 강사는 자신의 수업만큼은 그저 지식을 전달하는 시간이 아니어야 했다. 학생들이 역사 속에서 인간의 고통과 희망을 배우거니와 그 과정에서 자신의 위치를 고민해서 제대로 터득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가 자신의 역사관을 학생들과 공유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것은 우리가 현재의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고, 인간과 세상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인류의 책임을 깨닫도록 돕는 일이었다. 이러한 확고한 신념이 그의 수업에 녹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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