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원 Jan 30. 2022

지독한 세상에 태어난 선한 영화

영화 <퍼스트 카우>


*퍼스트 카우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야흐로 생존을 위한 갈등의 시대이다.

뉴스를 틀어놓으면 끔찍한 이야기들이 머리에 울려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비단 현실만 그런 것은 아니다.

영화관에서부터 스마트폰 속 유튜브 영상까지 자극적인 것들이 넘쳐난다.


눈쌀 찌푸를 만큼 어지러운 세상에서 

<퍼스트 카우>는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따뜻한 영화이다. 

앞으로 내가 이야기를 만든다면,

이런 이야기를 만들겠다 다짐하고 싶을만큼.


사실 영화의 배경인 서부시대는 갈등을 만들기엔 너무나 손쉬운 시기이다.

누구나 총을 들고 상대를 쏴죽여도 납득이 가는 배경이었으니까.



하지만 주인공 중 하나인 쿠키는 전투력이 약해 

생존을 위해 남들에게 요리를 해주는 것을 업으로 삼은 이이다.

그러던 중 옷조차 걸치지 못한 채 자신의 앞에 나타난 

킹 루이의 부탁에 자신의 텐트에 숨겨주기까지 한다.

보통의 영화라면 금화든 보물이 그려진 지도든 하나 넘겨줄 것을 약속할 법도 한데

쿠키가 그런 호의를 베푼 것에는 이유가 없다.

그저 그가 선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영화를 마음놓고 보았던 것 같다. 

쿠키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남을 해칠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에

배신이나 뒤통수를 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내려놓아도 되었으니까 말이다. 


헤어졌던 둘은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우연히 만나게 된다.

서로에게 돌보아야 할 가족이 없다는 것을 알게된 둘은

함께하기 시작하는데, 그 우정 역시 담백하다.

굳이 갈등을 쌓아올린 후 화해하면서 인위적인 캐릭터나 서사를 꾸며내지 않는다.


유대인과 이주 중국인으로서 세상에 정착하지 못하고

조용히 부유하는 둘은 오리건 주에서 돈을 벌어 

함께 샌프란시스코에 가자는 약속을 한다.


둘의 약속은 쿠키가 만들어낸 비스킷이 기대 이상으로 인기를 끌게 되면서 이루어질 듯 보이다가 

결국 비스킷을 위한 훔친 젖소의 원유 때문에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쿠키와 킹루가 결코 실패했다고 생각치 않는다. 

둘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원했던 삶은 

이기적으로 닥치는대로 남을 죽이지 않고

조용히 서로의 자리를 지켜주며 살아가는 것이었을 테다.

그리고 원하던 미래 자체가 그동안 쿠키와 킹루가 살아온 날들의 궤적이기도 하다.

 

총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를 위해 차마 두려움을 말하지 못해 강물을 사이에 두고 멀어졌다가도

서로를 위한 마음 하나로 다시 만나고야 마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피를 흘리는 쿠키와 힘에 겨운 킹루가 어느 나무 한그루 아래 누워 휴식을 취할 때

그것이 차마 그들의 마지막 안식이라고 할 지라도

세상 그 어떤 죽음도 둘처럼 따뜻하게 맞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자극과 반전으로 피로감이 넘쳐나는 이야기 전쟁 속에서

부드럽지만 강하게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이끌고 마쳐가는 두 친구의 모습을 보며

내가 이야기를 만들어낼 지점이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이 곳이라고 생각했다.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선의로 넘쳐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끝까지 함께한 후에 따뜻한 마음을 품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