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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Mar 27. 2017

총 없이 살떨리게 만드는 직업, 로비스트

영화 <미스 슬로운>

LA가 영화산업, 뉴욕이 금융산업을 상징한다면, 워싱턴은 단연 미국의 정치를 상징하는 도시이다. 영화 <미스슬로운>은 워싱턴에서도 가장 뜨거운 직업 중 하나인 로비스트에 관한 이야기이다.


로비스트란 의회에서 특정 법안을 제정 혹은 제정되지 않도록 저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로비활동은 미국 수정헌법 1조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의 보호 하에 이루어진다.



의회는 종교를 만들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그리고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 수 없다.

- 미국 수정 헌법 제1조(The First Amendment)



주인공 엘리자베스 슬로운은 미국의 수많은 로비스트 중에서도 유능한 것으로 손꼽히는 사람이다. 미국에서 가장 돈을 많이 쓰는 것으로 알려져있는 총기협회의 실권자마저 총기 규제를 막기 위해 슬로운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놀랍게도 총기를 휴대할 권리는 무려 미국 헌법 2조에 보장되어 있다.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State)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

- 미국 헌법 수정 제2조(Second Amendment)


그러나, 왠일인지 슬로운은 총기협회라는 거대세력을 신랄하게 비난하며 그들과 함께할 것을 거부하고, 결국 워싱턴에서 가장 큰 로비회사를 떠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단순하게 권선징악을 권장하는 호락호락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선, 영화는 먼치킨 슬로운의 능력이 어느만큼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입법에 관여하는 국회의원들을 구워 삶는 로비스트들의 회유 및 협박 능력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환호성을 지르고 싶게 만든다. 종이를 벨 듯한 칼정장을 입고 자선행사이든 카메라 앞이든 종횡무진하며 자신의 목표를 관철시키는 그녀의 모습은 여성이 볼 때에도 섹시하게 느껴질 정고이다. 때로는 의원 개인에게 직접적인 의견개진을 통해 , 때로는 여론에 기댄 의원의 지지율을 쥐락펴락하게 만들기도 한다. 의원들이 여론을 두려워하며, 자신의 입장을 변경하거나 변경하지 못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의 모습과 닮아있다. 전대통령을 탄핵시키기 위해 매주 토요일 백만여명이 나가 촛불을 들고 일어서는 국민들의 모습에 유보적 입장을 취하던 국회 의원들이 탄핵 의결로 돌아섰던 겨울의 대한민국 말이다.  로비활동이 없을 지언정 정치인의 힘은 국민의 지지율에서 나오며, 그들은 결코 여론에 반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영화는 정치가 High-context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정치는 A라고 말하면 그 속에 숨은 Z라는 뜻을 찾아내야 우위에 설수 있다. 팜유에 과세되는 세금을 팜유가 함유된  '누텔라' 세금이라 이름을 붙이자, 팜유 세금은 달콤하게 빵을 먹을 수 있는 서민의 소소한 행복에 감히 세금을 매기는 것이 되어버린다. 누텔라 택스는 실제 프랑스에서 팜유에 300%의 세금을 매기려다 실패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애국과 전혀 관련없는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나와, 본인들의 집회명에 태극기를 붙이는 것을 context의 예로 들 수 있다. 다행히 실패한 context이지만 말이다.



슬로운은 목표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수단도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 수단이라는 것이, 그녀를 좋아하고 존경했던 사람들마저 그에게 등을 돌리고 싶게 만들만큼 잔인하다는 것이 이 영화의 포인트이다. 슬로운은 무서울만큼 승리라는 결과에 집착한다.


주인공 슬로운의 입장에서 영화를 바라보며 통쾌해하던 관객들도 어느 순간 선을 넘어버리는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한점한점 점수를 만회하며 역전을 기다리는 스포츠 같았던 정치판은 한순간, 배신과 이용의 사기판으로 부패하고 만다.


완벽해보였던 슬로운이 가지고 있는 약점들이 결국 그녀의 발목을 붙잡는다. 상대방의 비논리적이고 감정에 선동하는 방식에 쉽게 흥분해버리고 비난을 퍼붓는 기질. 이 때문에 슬로운은 국정조사 자리에서 수정헌법 5조에 따른 자신의 묵비권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데에 실패하고 만다.


누구라도 대배심의 고발이나 공소 제기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나 중죄에 대하여 심문당해서는 아니된다.

- 미국 수정 헌법 제5조(The Fifth Amendment) 중



성공을 좇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기에 그녀에게 남겨진 것들(수면을 없애기 위한 약, 비밀스런 사생활)이 슬로운에게 위협을 주는 모습은 관객들이 슬로운에게 연민을 일으키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그녀의 결말이 해피엔딩일지, 파멸일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영화 전체가 주는 메시지는 결국 그녀가 영화에서 가장 처음 하는 말과 관계가 있다. 첫 씬에선 무슨 얘기를 하는건지 알듯말듯했던 그 문장의 핵심은 엔딩크레딧이 올라오고 나서야 진정한 의미를 깨닫도게 된다.



그래서 영화 <미스 슬로운>은 빠른 템포로 관객들의 멱살을 잡고 결말 앞까지 끌고간 후, 엔딩 앞에서 천천히 진한 여운을 생각하도록 만들고야 마는 로비스트 엘리자베스 슬로운의 능력과 꼭 닮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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